앞선 글에서 글을 쓰는 이들은 대체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하는 농담 같은 진담을 하였는데요. 아직도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정신을 차리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담이니까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지간히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뭐 다들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아니거든, 하고서 빠져나갈 생각일랑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것참, 의리 없게 말이야.
2020년 겨울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나온 <편집자란 무엇인가>에서는 현직 편집자들에게 선호하는 작가에 대한 앙케트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그중에 한 편집자는 이런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저자. 매우 드물다.'
저는 이 대답을 보고서는 거의 소리 내며 웃었는데요. 그 웃음을 글로 표현하면 뭐랄까. 역시 '낄낄낄'이 가장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아마도 책에서 가장 웃겼던 부분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이 편집자가 그동안 봐왔던 '작가'라 함은 대부분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내 웃음이 멈추어졌고 저는 저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 나의 담당 편집자님들도 나를 이렇게 생각하였겠구나. 내가 담당 편집자님들에게 메일을 보낼 때마다 편집자들은, 아아아 오늘은 이 정서불안 환자께서 어떤 헛소리를 늘어놓을까, 룰루랄라, 하면서 메일을 열어보진 않았을까, 그게 아니라면 아 편집자인 나는 피폐하고 가난한 이 작가의 영혼을 어루만져줘야지, 하면서 남다른 직업의식을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편집자들은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에 글쟁이들이 암만 정서적으로 불안하여도, 우리를 마치 정상인인 것처럼 보살펴줍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특히나 이 글이라는 걸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 같습니다. 글을 쓰지 않던 시절에는 사회성도 그럭저럭 괜찮고 사람 구실 하며 살았을 텐데, 우리는 글이라는 세계에 빠지면서 점점 사회성도 잃어가고 세상 모든 일을 글과 결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전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관종이었다면, 글을 쓰기 시작하며 우리는 슈퍼 관종이 된 달까요. 그렇잖아요? 그러니 매일매일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밖에요. 옛말에 울다 웃으면 똥꼬에 털이 난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게 사실이라면 글을 쓰는 이들은 모두 다 수북할 것입니다. 나는 아니거든, 하고서 빠져나갈 생각일랑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생각을 해봅시다. 글을 쓰는 이들은 왜 정서적으로 불안한가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일, 특히나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일은 대체로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컵라면 물 붓고 온전히 3분 기다리기는커녕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시간도 기다리기 어려워 닫힘 버튼을 꾹꾹 눌러대는 우리네 인생에서 이 한없는 기다림은 글 쓰는 사람들을 병들게 합니다.
일단은 써야 하는 시간부터 기다림의 시작입니다. 머릿속에 뱉어낼 게 많은 이들이라면 상관없는 이야기겠지만, 많은 글쓴이들은 쓸 게 없어 영감이 찾아오길 기다립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감이 오질 않으면 우리는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서서히 불안해지길 시작합니다. 이 불안 증세가 심해지면 결국은 환청이 들리고, 환시가 보이는 등의 환각 증세를 겪다가 결국 정신은 착란에 가닿게 됩니다. 그러니까 글쓴이들은 '글을 쓰겠다.' 하는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이미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 있습니다.
운이 좋게 영감이라는 게 떠올라 글쓰기를 시작하였다고 칩시다. 꾸역꾸역 식음을 전폐하고 개똥망 같은 글을 완성하였으나 이번에는 읽어줄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연찮게 읽어줄 사람은 나타났으나 이번에는 반응을 해줄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다. 반응을 해주는 사람이 나타났으나 그는 안타깝게도 내가 쓴 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악성 댓글을 달아버립니다.
으으, 이 나쁜 사람, 내 글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 하고서 IP를 추적하여 집에 찾아가서는 박박 우겨대고 싶지만, 그러기엔 뭐랄까, 작가의 자존심이랄까 그런 게 나를 붙잡습니다. "어이어이, 겨우 독자 하나의 오독이라고, 진정하라고." 하면서 내면의 침착한 내가 흥분에 가득한 나를 안심시킵니다. 결국 글쓴이는 이 기다림의 시간과 독자의 반응에 따라 매일같이 신나고 불안한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것입니다.
재미난 것은 선플 100개를 받고서 방긋방긋 웃다가 겨우 악플 하나를 받았다고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작가'라는 인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인정 욕구'에 똘똘 뭉쳐져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가 작가의 틈을 파고서 살짝 찔러도 작가가 느끼는 고통은 수천, 수만 배에 달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아픔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대인배인 척하는 글쟁이들도 있지만 그들도 잠들기 전에는 저주 인형을 만들어 내 글을 욕보인 자를 향해 저주를 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는 아니거든, 하고서 빠져나갈 생각일랑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글감은 어떻습니까. 때로 글을 쓰는 이들은 나, 혹은 내 주변에 일어나는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을 글의 소재로 써먹으며, 결국 법이나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글까지 쓰게 되기도 합니다. 내가 어느 부분까지 글로 써야 할까 하는 판단력이 흐려져서는 일단은 다 써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주변의 아픔까지 모두 내 글의 소재로 보이는 것입니다. 한 퀴어 소설가의 지인 아우팅 사건 같은 게 이런 부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죠. 아마도 많은 소설가들이, 아아 나는 어쩌나 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글쓴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운이 좋아서든 실력이 있어서든 글이 출간의 기회가 닿아 편집자를 만났다고 칩시다. 글쓴이들은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내주고 피드백을 받길 또 기다립니다. A4 수십 장 짜리 파일을 보내고 5분 만에 글쓴이는 동공이 흐려지고 입안은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합니다.
수시로 수신확인을 하여 편집자가 메일을 열어보았는지 체크를 합니다. 어떨까, 나의 글은 어떻게 읽힐까. 편집자가 수신확인을 하자마자 글쓴이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피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한두 시간이 지나면 글쓴이는 다시 또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메일함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왜! 왜 피드백이 없는 거지, 왜!!!
사실 당신의 편집자는 당신의 메일을 열어 놓은 채로 읽지도 않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말이죠. 정서가 불안한 당신은 끼니도 잊은 채 그저 메일함만 지켜보며, 편집자가 내 글을 어떻게 읽어줄지, 역시나 또다시 기다리는 겁니다. 글쓰기란 이렇게나 빌어먹을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기다리던 편집자의 답장 메일이 옵니다. 메일에는 별다른 내용도 없이 그저 이렇게만 쓰여있을 뿐이겠죠.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이 기다리실까 봐 빨리 답장을 드렸어야 하는데 업무가 바빠 조금 늦어졌습니다. 보내주신 글은 천천히 읽어보고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즐거운 저녁 보내시고요,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글을 쓰는 이들은 대체로 관심 종자이고, 구조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정서적 안정을 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글을 쓰는 데에도, 사람 관계에도, 여러모로 좋습니다. 당신이 우울증을 앓는다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조울증이라면 역시 그에 해당하는 약을 먹어야 합니다. 정신이 아닌 몸에 병이 있다면 역시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재활을 해야 합니다.
좋은 글은 그럭저럭 괜찮은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아니면 아예 약을 끊고 정신줄을 놓아버리고서는 그러한 정신세계를 그리는 글을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뭐 어떻게 해서든 글을 쓰는 이들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존재들이니까요. 글쓰기 팁이라는 주제 하에 쓰고 있는 글이지만 사실은 저도 불안한 인간이긴 매한가지. 누가 누굴 가르치겠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뭐, 그래도 저는 불안한 정서를 갖고서 책을 세 권이나 써내지 않았습니까. 너무 부러워하진 마시길 바랍니다. 지나친 질투는 정서적으로 좋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