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불철주야 백지와 맞짱을 뜨며 글을 쓰고 계실 브런치 선생님들 안녕들하십니까, 이경입니다. 직전 글로 브런치 공모전에 제출한 원고를 보시고는 출판사 컨택이 들어왔다, 브런치에서 글 뽑아주면 앗싸 좋아인데, 그렇지 않아도 책 작업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는 글을 쓰고서는 부럽지들 않으십니까, 부러워해주세요, 하였더니 진짜로 부럽다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이 계셔서 몹시 송구하고 민망합니다.
아니, 부러워해달라고 해서 부럽다는 댓글을 달았는데 무명 글쟁이 이경 왜 이제 와서 착한 척을 하는 것이냐 이야기하실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저는 뭐랄까, 이쯤에서 착한 척을 한 번 해야 좋지 않겠는가, 너무 제잘난 척하는 글만 쓰다 보면 부러움을 넘어 재수 없어하실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멍청한 제 전두엽에도 흐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러워하시되 무명 글쟁이 이경이라는 인간은 또 착하게 봐달라는 이야깁니다.
저는 지금까지 투고로만 책을 세 권 내었는데요. 두 분의 편집자 분과 작업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지금껏 제 책을 담당하신 편집자 두 분은 공저든, 단독이든 저보다 앞서, 책을 내신 경험이 있는 편집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편집자 분들은 책을 작업하는 동안 초보 글쟁이인 저를 좀 더 세심하게 봐주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공교로움은 이어져서 저번 주에 미팅을 진행했던 편집자님 역시 책을 내신 경험이 있는 분입니다. 편집자 출신의 작가도 흔히 있고, 편집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글을 쓰는 분들도 흔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연이 닿는 편집자마다 모두 책을 내신 분들이라니 공교롭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 무명 글쟁이 이경이라는 홍보 문구를 쓰고 싶은 지경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미팅을 진행한 편집자분이 아예 모르던 분은 아니었고, 이미 몇 달 전부터 SNS에서 몇 차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던 분이란 말이죠. 심지어 이분은 제가 쓴 책 3종을 모두 사서 읽어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 이분은 대체 어떤 천사와 같은 분이시길래 미천하기 그지없는 무명 글쟁이의 책을 모두 사서 읽어주시는가 싶어서, 저 역시 이분의 책을 사서 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미팅을 앞두고는 기회라고 여긴 것입니다. 기회, 기회, 무슨 기회? 사인받을 기회. 저자 미팅 자리에서 저자가 편집자에게 책을 내밀며, 저, 사인 좀,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 재미나지 않습니까. 그렇게 출판사 편집자와 글쟁이의 입장으로 만난 미팅 자리에서 저는 편집자이면서 작가이기도 한 J 선생님에게 사인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J 선생님이 말이죠. 긴장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사인을 해주시고는 아래에는 그날의 날짜까지 적어주셨는데, 무려 10년이나 지난 날짜를 적어주신 겁니다. 2021년에 2011년의 사인이라니. 집에 와서 뒤늦게 사인을 보고는, 뭘까 이것은. 암호일까, 그게 아니라면 편집자님께서 무명 글쟁이 이경을 10년 전에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소망을 적어주신 건 아닐까, 시간을 거슬러서라도 우리가 서로를 좀 더 일찍 알고 지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에이 뭐 그건 아니겠지, 아니야 그래도 또 몰라, 하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아 왜 글 쓰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뻘 생각도 많이 하고 그렇잖습니까?
여하튼 출판사 투고로 원고가 컨택이 되었을 때 가장 큰 장점이라면, 원고를 검토한 편집자만큼은 최소한 내 글을 싫어하진 않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 점입니다. 투고 원고를 검토한 편집자가 담당 편집자가 되면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든든한 마음이 들고요. 실제로 저는 세 번째 책을 진행할 때에는 담당 편집자님에게 제 책을 출간하기 전까지는 퇴사하지 말아 달라는, 지금 생각하면 다소 무례한 게 아닌가, 싶은 요청을 드리기도 했는데요. 다행히도 편집자님은 약속을 지켜주셨습니다.
이렇게 지금까지는 투고로 편집자 분들과 인연을 맺었다면, 이번에 미팅을 진행한 편집자님은 먼저 연락이 온 것 아니겠습니까. 무명 글쟁이 이경, 내 그동안 너의 글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나는 너의 글이 좋아, 나는 네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 브런치 공모전에 보낸 글로 네가 수상을 한다면 그거만큼 좋은 일도 없을 거야, 그렇게 상금도 받고, 큰 출판사에서 책이 나온다면 응원을 할 테다, 하지만 떨어진다면 우리와 함께 책을 내자, 하는 요지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채찍과 당근을 수시로 접하게 되는데 말이죠. 멘탈이 나약한 무명 글쟁이 이경은 열이면 열, 당근만을 먹으려 듭니다. 어우, 누가 우쭈쭈 해주면 더욱 힘이 나서 으쌰으쌰 할 수 있는 인간이 바로 저 무명 글쟁이 이경인 것입니다.
편집자님은 저에게 이런저런 다양한 우쭈쭈 당근 스킬을 쓰셨는데 그중 기억에 나는 것 하나가 질문을 가장한 칭찬 스킬이었습니다.
"무명 글쟁이 이경, 자네 스스로 글 잘 쓰는 거 아시죠?" 하고서 말꼬리가 올라간, 이게 문장 구조상 질문은 분명한데, 뭐라고 즉답을 하기에는 몹시 애매한, 아, 그러니 이것은 영락없는 칭찬. 깔깔깔깔깔.
저는 이 질문 칭찬을 듣고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아아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하고 부끄럽게 웃으며 속으로는 더해줘 더해줘 우쭈쭈 더해줘, 하였던 것 같습니다. 깔깔깔깔깔.
글이라는 게 말이죠. 정말 독특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같은 글을 보더라도 읽는 이에 따라 좋게 읽히기도 하고, 나쁘게 읽히기도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글을 좋아해 주는 편집자를 만나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은 굉장히 큰 행운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글쟁이는 자신의 글을 좋아해 주는 편집자에게 충성충성, 내 반드시 양질의 원고를 써서 바치겠습니다,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은 투고를 하였고, 원고를 검토해주었던 편집자 분들이 담당 편집자가 되어서 최소한 제 글을 싫어하진 않는 분들과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내 글을 싫어하면서도, 업무 차원에서 억지로 책을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면, 저는 그때는 너무나 비참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내 글을 좋아하는 편집자, 또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독자를 만나는 일은 정말 크나큰 행운입니다.
이번에 미팅을 하였던 J 편집자님도 정말, 다행히 제 글을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J편집자님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거든요.
시간을 거슬러 10년 전에도 저에게 이런 편집자가 있었더라면, 저는 글쓰기의 재미를 훨씬 일찍 깨달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