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근황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써 내려가는 아무 말 대잔치 아 몰라

by 이경



1. 뭐라도 쓰지 않으면 답답한 지경에 이를 때가 있다. 그럴 땐 아무 말이나 쓴다.


2. 그러니까 글쓰기 근황에 대해서 쓰려고 하는 거다.


3. 지금까지 책을 3권 냈는데, 재밌게도 책이 모두 8개월 텀으로 나왔다.


2019. 11

2020. 07

2021. 03


올 3월에 마지막 책을 내고 8개월이 지나려던 때, 그동안의 관성이 움직인 것인지, 아아아 책을 써야 해 책을, 생각하였으나 써둔 원고도 없고, 그러니 책이 나올리는 만무하고, 해서 쓰게 된 게, 브런치북이다.

뭐 어쨌든 책이네.

브런치북은 브런치 공모전에 제출했다.


결과 발표일이 12월 15일이니까, 아마 당선작들 다 정해지고 수상자들에겐 연락이 갔겠지.

나는 연락을 못 받았으니 떨어진 것이 틀림없으렷다.

하지만 나는 공모전에 제출한 글로 책을 내자고 한 출판사가 있으니 아무 상관없다.

아, 여유가 만만하다.

이건 뭐랄까. 목숨이 두 개라면 이런 기분일까.

한 번 죽어도 괜찮아, 다시 살아가면 돼, 할 수 있는.


브런치북 공모전에 응모한 글은, '엣헴 글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지요.' 하는,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주제의 글이다. 만약 이게 책으로 나온다면, 흐음.

저자의 역량, 그러니까 내 능력을 생각한다면 한 50부 정도 팔리지 않겠는가 싶지만, 패기 넘치는 출판사의 힘을 믿어 보기로 한다.


4. 8개월 안에 책을 못써서 그런지, 힘을 비축해두었다. 두 가지 원고를 같이 작업하고 있다. 하나는 3번의 원고. 관련해서 브런치에 쓴 글이 원고지 300매 정도인데, 출판사와 미팅을 하고서 조금 더 썼더니 530매가 되었다. 아직 더 써야 한다.


나머지 하나는 샘플 원고를 작업 중이다. 책 만들어서 잘 팔고 있는 한 출판사 대표님이 연락을 준 게 인연이 되었다. 나는 이경의 글이 좋아, 이경 나랑 책을 한 번 해보자, 이경은 어떤 글을 쓰고 싶어? 하셔서, 대표님 대표님, 저는 음악 에세이, 그거 쓰고 싶어요, 하였더니 같이 해보자는 제안.


대표님, 책 잘 만들어서 잘 팔고 계시잖아요? 갑자기 음악 에세이라니, 대차게 망하고 싶으신 거예요? 음악 에세이는 출판 시장에서 인기가 아주 개똥망이던 걸요. 저랑 같이 망하실 준비가 되신 거예요?

대놓고 말한 건 아니지만 비슷하게 말씀드렸다.

이경, 네 말처럼 출판 시장에서 음악 에세이는 인기 없다지만, 나는 너의 글이 좋아. 그러니 해보자, 하는 대답.


글쟁이는 자신의 글을 알아봐 주는 이에게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는 존재다. 충성충성.


5. 어디선가, 아마도 브런치일 텐데, 나는 1년 중 한 9개월은 생각하고 3개월 정도 바짝 글을 쓴다, 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니까 3개월 정도 쓴다는 글은 출간을 목표로 하는 글을 말한다. 출간을 목표로 하는 글은 한글 파일에 적는다. 한글 파일이 아닌 브런치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기타 등등에 쓰는 글은 모두 '생각'으로 퉁친다.


3번의 출판사와 미팅을 하였을 때, 편집자님이 "작가님 9개월 생각하고 3개월 글 쓰신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아니, SNS에 흘리듯 써놓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계시다니.


글쟁이는 자신의 글을 알아봐 주는 이에게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는 존재다. 충성충성.


6. 두 가지 원고를 같이 쓰고 있는데, 글의 감정선이 너무 다르다. 하나는 주접을 떨어야 하고, 하나는 담담하게 쓰려고 한다.


그러니 감정 기복이 심하다.

감정에 따라 글이 달라지는 건지,

다른 글을 써서 감정이 달라지는 건지.


몰라요 몰라.


출간 후에 SNS에서는 주로 주접을 떨며 책 홍보를 하다 보니까, 가끔 담담하게 쓴 글을 올리면, 걱정을 하는 분들이 있다. 어제는 한 독자께서 메시지를 주셨다. 요즘 무슨 일 있냐고. 글이 많이 외로워 보인다고.


7. 원고 쓰면서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는데, 요즘 접속이 잘 안되네. 이러면 곤란한데.


8. 앞서 말한 두 출판사 외에 한 출판사에서 기획서를 보내왔다. 죄송하지만 고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출판사 문짝 박살날 정도로 투고를 해대던 이경, 이제 출판사에서 기획안을 보내줄 정도의 글쟁이가 되어버린 것인가! (아님)


9. 앞서 말한 두 출판사의 한 대표님이, 예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외서의 판권을 사서 새로 출간하고 싶은데, 글의 유머 코드가 나와 비슷한 거 같으니 한 번 읽어봐 달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당신께서 가지고 있는 책을 택배로 보내주시겠다고.


외서 판권 사는데 나에게 의견을 물으시다니, 뭔가 대단한 작가가 된 기분이다.(아님)

저는 훌륭한 독서가 타입은 아닙니다만, 미천한 저의 의견이라도 필요하다면 읽어보고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쟁이는 자신의 글을 알아봐 주는 이에게 몸과 마음을... 충성충성.


10. 가끔 SNS에 다른 사람들 책 잘 되면 너무 배 아프다고, 질투 난다고 글을 쓰곤 하는데, 저번에 미팅한 출판사에서 어떤 이가 그렇게 질투 나냐고 물어보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대놓고 훅 물어보셔서 딱히 누구라고 대답은 못했다.


지금에 와서 찬찬히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다 질투 난다. 누군가 "이 책 정말 재밌어요."라는 추천의 글을 썼을 때 '이 책'이 내 책이 아니면 나는 질투가 나는 것이다. 박진영이 노래한 <니가 사는 그 집>의 가사처럼, 으으으 저 책의 인기가 내 것이었어야 해, 하는. ㅋㅋ


연말이다 보니까 이런저런 인터넷 서점 등에서 '올해의 책' 뭐 이런 거 선정하고 하니까, 조금 더 쓸쓸한 거 같고. 물론 내가 쓴 책이 '올해의 책'에 언급될만한 성격의 책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자기들만의 축제에서 한 발짝 물러나 보고 있으면, 으으으으 내 책은 왜 저곳에 자리 잡지 못하는 건가, 으으으으 하게 된달까.


제가 바로 질투의 화신 이경입니다, 엣헴.


11. 몇몇 독자들은 내가 쓰는 글을 가리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제멋대로 쓰인 글을 타이핑하고 나서 순서가 이상하다 느껴지면 고치긴 하는데, 지금 쓰는 글은 정말 의식이 이끄는 대로 타이핑한다. 돌아보면 역시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머릿속이 복잡하다,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12. 첫 책과 두 번째 책을 만들어 준 편집자 K.

세 번째 책을 만들어준 편집자 S.

네 번째 책의 담당자가 되어줄 이는 아마도 편집자 L 아니면, J.

다섯 번째 책을 계약하게 된다면 그때의 편집자는 아마도 E.


나는 앞으로 몇 명의 편집자를 만나게 될까.

몇 권의 책을 더 낼 수 있을까.


13. 써놓고 보니 역시 순서가 엉망인 아무 말이다. 발행 버튼 누를까 말까, 누를까 말까, 누를까 말까.


14. 애들 노래 중에 그런 노래 있잖아.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던졌다!


15. 헛소리라도 이만큼 썼으면 발행 버튼을 눌러야 되지 않을까. 글 올리고 퇴근해야지. 주말이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아 저는 무신론자입니다만.


16. 매일 아침 출근하는데 대방역에서 한 아주머니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딱 두 마디 건넨다.

"안녕하세요. 예수님 믿으세요."


근데 그 목소리가 너무 힘아리가 없고 아픈 사람 같아서, 나는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지매, 아지매, 하따 마, 그렇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해가꼬 사람들이 지쟈스를 우에 믿겠는교,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만 상상하고 무심히 지나친다.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도 하고 지쟈스 믿으라는 말도 해주는데 희한하게 나한테는 그런 게 없다. 내가 생긴 게 너무 악마 같은 건가, 싶기도 하고. 쳇.


17. 뻘소리라도 뭔가 타이핑하니까 속이 좀 풀리는 기분. 이왕 이렇게 된 거 20번까지 써봐야 하겠다.

20번까지 가보자고.


요즘 '가보자고' 드립을 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이거 어디서부터 시작된 드립입니까? 도쿄 올림픽 때 나온 드립인가? 모르겠다. 암튼 '가보자고' 하는 말투 좀 재밌는 거 같아.


18. 쓰다 보니까, 글쓰기 근황은 끝나버린 지 오래고, 그냥 타이핑 연습용으로 키보드 두들기는 거다. 탁탁 타다다다다탁, 키보드를 자신 있게 파다다다닥 두들기면 기분이 좋거든여.


여러분들도 라이터'스 블락. 소위 말하는 '글 막힘'에 다다르면 그냥 아무거나 타이핑 해보셔요들. 손가락에 힘을 빼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4박자 힙합 비트를 탄다고 생각하면서, ㅁㄴㅇ;ㅣㅏㅓㄹ 닝러ㅏㅣㅇ너래ㅓ4ㅂ3-9] 셤엄 ㅓ햐모어냫 ㅓㄹ , 그냥 뭐 아무 글자나 타이핑해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거든여.

그래도 글쓰기 근황을 요약하자면, 네 번째 다섯 번째 책 관련하여 요즘 글을 쓰고 있다 하는 거.

작가 지망생 분들은 부러워하실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도 누군가, 네 번째 다섯 번째 책을 동시에 작업하고 있다고 하면, 아 저 사람 부럽다, 누군가 저 사람의 글을 원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질투가 날 것 같아.


아, 근데 그게 바로 접니다. 그러니 저를 질투하여 주십시오. 그 질투, 받아들이겠습니다.


19. 알라딘이나 그래24에 들어가서 신간 목록을 살피다 보면, 세상에 책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천 부를 팔지 못하고 사라지는 책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책 산업.


책이 이렇게나 많이 나오는데, 나 같은 사람이 책을 하나 더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떤 의미가 있냐면, 좋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충성충성.


20. 딱 두 달만 전업작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졸립다. 퇴근해야지.

혹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있을까? 있어요? 계세요?

20번까지 이어지는 헛소리를 참고서 읽어주시다니, 당신의 인내심에 치얼스, 막이래. 깔깔깔.


20번까지 읽어주신 거 이왕이면 제 책도 좀 읽어주세요. 네?

그럼 오늘은 이만 정말로.


씨야,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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