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다

by 이경




누군가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기면, 저기요, 익스큐즈미, 왜 저를 좋아하시는 거죠, 묻고 싶은 것처럼, 누군가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이가 있다면, 나는 똑같이 묻고 싶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작가를 지망하던 그 시절에는 늘 글쓰기에 자신이 없고, 텅 빈 눈빛으로 덤벼보라는 듯하는 백지는 자주 공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런 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가 이런 글을 좋아해 줄까, 하며 쓴 글은 용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여차저차 어기여차 책을 세 권 내어보니, 이제는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최소 열 명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투고를 받아주었던 두 명의 담당 편집자, 또 다음 책을 함께 하게 될 또 다른 두 명의 편집자, 그리고 지금껏 냈던 책 3종을 모두 읽어주신 독자분까지 더해보면, 최소 10명 정도는, 아 이경, 그래, 이경이 쓰는 글은 대체로 재밌게 읽히지, 생각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내 글을 좋아해 주는 게 확실하다 싶은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연인 사이에서 자꾸만 사랑의 크기를 확인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처럼, 자기야 나 사랑해? 얼만큼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이따시만한 우주만큼 사랑해? 우주는 태초의 빅뱅 이후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팽창해나간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렇담 자기도 날 향한 사랑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앞으로도 쭉쭉 늘어나기만 할 거야? 하는 다소 오그라드는 사랑의 확인법처럼, 나는, 아니, 저기요, 대체, 저의, 헤헤헤, 아이, 이것 참, 숨길 수가 없네, 근데, 저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좋으세요, 아니, 그러니까, 저 말고, 제 글 말입니다, 하고서 묻고 싶은 것이다. SNS의 팔로워, 브런치의 구독자 수, 그런 걸 나는 믿지 않는다. 대부분은 허수에 가까울 뿐, 그저, 나는 너에게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뭐랄까, 쥐똥 정도? 혹은 쥐젖 정도, 그 정도로 관심이 있을 뿐, 너의 글을 엄청 막 좋아하진 않아, 하는 숫자일 뿐. 누군가는 구독자가 10만이라면, 자신이 책을 내었을 때, 아아 십만 구독자, 나의 열성적인 구독자 10만이 모두 책을 사주겠지, 하는 착각에 빠져있지만, 책이란 결코 그리, 쉽게, 팔리는 물건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절대적 진리. 웹에서 만난 누군가, 아아, 이경이경, 나는 너의 글이 재밌다, 좋아좋아, 보고 있으면 유쾌하고, 즐겁고, 감동적이고, 재밌고, 기쁘고, 슬프고, 아무튼 여하튼 하여튼 너는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글을 많이 써다오, 하는 독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책을 사주는 것은 전연 다른 별개의 일이다. 그만큼 책이란 물건의 '구매' 앞에서는 커다랗고도 높다란 장벽이 세워져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껏 낸 책을 읽어주고, 웹에서 쓰는 이런 멍텅구리 어쭈구리 같은 글도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겐 묻고 싶은 것이다. 제 글의 어떤 부분이 좋은 겁니까. 이런 궁금증이 도질 때, 반대로 나는 과연 어떤 이들의 글을 좋아하는가 되묻곤 한다. 나는 주로, 뭐랄까, 그러니까, 이제, 글의 내용은,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캠핑을 하든, 낚시를 하든, 상관 무, 없을 무,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문체, 그러니까, 어떠한 스타일로 글이 쓰여졌는가, 다른 말로 하면 술술 잘 읽히는 글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말인즉슨 거꾸로 돌려 말하면,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역시, 잘 읽히는가, 문체가 나만의 서타일로 쓰여졌는가. 헤어 서타일, 패션 서타일은 엉망이지만, 왜냐면, 어째서냐면, 헤어와 패션의 완성은 결국 얼굴이니까, 그런데 나는 얼굴은 영 아니올시다, 이니까 그쪽으로는 아주 글러버린 일이고, 그렇지만 문체 서타일에는 얼굴이 관여할 일이 없으니, 문체 서타일만큼은 나만의 고유한 서타서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누가 보더라도, 어, 음, 이건 글이 희한하게 읽히는 걸 보니, 분명, 이경의 글이 틀림없군요, 할 수 있을 정도의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상 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 글을 좋아하는 분들도, 그런 나의, 문체를, 좋게 봐주는 것이 아닐까, 묻고 싶은 것이다. 이건 분명하게도, 과잉이다. 자의식의 과잉이다. 자의식 과잉의 글을 대하는 평가는 보통은 두 가지, 첫째론 - 뭐야, 재수 없어, 웃기고 있네, 둘째론 - 아아, 이 사람은 영락없는 예술가, 아티스트. 이런 자의식 과잉이 분명한 글이라 해도, 즐겁게 읽어주는 이가 분명, 열 명은 되지 않겠는가, 이경의 글을 예술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열 명은 되지 않겠는가, 그런 분들에게, 대체 이경의 글에서 어느 부분이 좋으신 겁니까, 하고서 나는 묻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묻지 않겠다. 물어서 누군가 답을 한다 한들, 서로가 부끄러운 것은 피차 마찬가지이며, 물어서 답이 없다면, 그 또한 부끄럽고, 민망한 것은, 마찬가지이니까. 그러니 나는 내 글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손 하여도, 저기요, 선생님, 익스큐즈미, 저가 쓰는 글의, 어느 부분이 좋으신 겁니까, 하고서, 묻지 않고서, 이 질문을 묻어 두겠다. 묻지 않고서 묻어둔다니, 역시나 별 재미가 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뿐, 이상은 다소 늦은 점심으로 제일제면소의 신메뉴 돼지구이비빔국수를 씹어 삼키고서는, 졸려서 횡설수설 떠들어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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