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연애소설

by 이경




얼마 전 한 출판사 선생님께서, 이경이경, 자네 앞으로 어떤 책을 쓰고 싶은가, 여쭈어서, 아, 제가요, 일단은 다섯 번째 책으로 음악 에세이를 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여섯 번째 책도 이야기는 정해졌고요. 아시죠? 네? 그러고서 일곱 번째 책쯤 되어서는 저도 이제 소설을 다시 써보고 싶은데 말이죠, 하면서 꺼낸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문체를 흉내 낸 글을 책으로 내고 싶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사정없이 중얼중얼중얼중얼 그저 손가락 가는 대로 쉼표와 마침표의 비율은 아마도 9 : 1 정도로 하여 끝없이 중얼중얼중얼중얼.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하지 않았으나, 묘하게도 이 다자이의 문체만큼은 보고 있으면 어쩌자고인지 자꾸만 흉내를 내게 된다. 세 번째 책 <난생처음 내 책>에는 순전히 다자이의 문체를 따라 하여 쓴 글이 있을 정도로... 여하튼 하여튼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런 요설체의 글을 써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주 찌질한 작가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편집자가 A를 이야기하면 B, C, D... X, Y, Z 까지 상상해버리고야 마는 완전 찌질하고, 정신이 나간, 병맛이 터지는, 그런 몹쓸 글쟁이의 이야기, 이거야 뭐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그저 내 이야기를 쓰면 그만이지. 근데 이런 병맛 나는 글쟁이의 이야기는 이미 나보다 수만 배 더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나 나카야마 시리치가 쓴 적이 있으니까 선뜻 엣헴 한번 써볼까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병맛 나는 글쟁이를 다룬 소설이라니, 흔하다 흔해, 경쟁력 부족. 그렇다면 아싸리 이렇게 된 거 병맛 나는 글쟁이를 다룬 에세이를 쓰자,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으나, 그걸 에세이로 쓰기엔 저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가 있는 겁니다. 네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한 것이, 이른바 연애소설인 것이다. 십 대, 이십 대의 푸르뎅뎅한 청춘도 아닌 사십 대 아저씨의 소망이 연애소설이라니, 가당치도 않지. 하지만 언젠가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작가 故최인호의 오래전 소망에도 기인한다. 대하소설 역사소설 상업 소설 순문학 소설 신춘문예 이런 종교 이야기 저런 종교 이야기 온갖 이야기를 써 내려갔던 최인호도 마지막까지 쓰고자 했던 게 연애소설이었다는 이야기. 아, 그렇구나. 저런 노작가도 마지막까지 붙잡고 완성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사랑 이야기이구나, 하는 생각에 그래 그렇담 나도 언젠가는 알콩달콩 달콤 씁쓸한 연애소설, 그런 거 한번 써보고 싶다, 하는 소망을 갖게 된 것이다.


"잘 쓰실 것 같아요."


편집자라는 사람들은 글쟁이를 우쭈쭈 해주기 위해서 생겨났다는 듯이.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제가 연애세포가 다 망가져버려서..."


한참 뒤의 이야기이니까, 당장 다섯 번째 책의 원고도 밀어내야 하니까, 소망은 그저 소망일 뿐, 언제 쓸 수 있을지도 모를, 어쩌면 단 한 글자도 쓸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나누었다.


그러고서는 며칠이 지나 정말 내가 먼 훗날이라도 언젠가는 연애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십 대나 이십 대에 책을 목표로 무언가를 썼다면 그때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사랑이야기를 써 내려갔겠지, 하면서. 저기요, 알랭 드 보통도 스물세 살인가에 연애 소설 썼다면서요, 네?


쇼펜하우어가 사랑은 아무리 미화되어도 성욕이 우선이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했는가 보다. 그런가, 사랑은 성욕인가. 그렇다면 소위 정신적인 사랑을 뜻하는 플라토닉 러브는 개뿔도 아니다, 이겁니까 쇼펜하우어 선생님. 플라토닉 러브와 플라톤은 전연 상관이 없다고 알고 있지만 어쨌거나 플라톤이 알면 좀 섭섭하겠다 싶다. 아무렴 자기 이름을 딴 사랑인데. 성욕이든 정신적인 사랑이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어제는 문득 사랑에 관한 책을 하나 들추어 읽어보았다. 누구의 말인지,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랑이란 범죄는 단독 범행이 불가능한, 늘 공범이 존재한다는, 뭐 그런 문구 위에서 나는 두 눈을 끔뻑끔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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