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케이트한 사람입니다

by 이경



누군가 쇼핑몰 유리창 등에 붙어 있는 'SALE'이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세일이 아닌 '살래?'로 읽힌다는 글을 접하고 나서부터는 나도 'Sale'이라는 단어를 보면, 살래? 살래? 강요를 받는 느낌이다. 그때마다, 안 사 안 사, 하고서 무시하며 지나치기야 하지만.


비슷한 느낌의 단어로는 'Fragile'이 있다. 뭔가 깨지기 쉬운 물건 따위에 붙어 있는 단어인데 어쩐지 '우라질'하고서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우지끈, 제기랄, 우라질. 어릴 때 공부 못하던 애들이 이런 식으로 영단어를 외우곤 했던 거 같은데, 으이그 유치하기는.


유치해지긴 싫고, 그래서인지 비슷한 뜻의 단어로는 'Delicate'를 더 좋아한다. 뭐 정확히 따진다면 데미안 라이스가 부른 <Delicate> 때문에 이 단어가 좋아진 것이지만. 어떤 음악이 너무 좋아지면 그 음악에 담긴 단어마저도 좋아지는 법이니까.


<Delicate>는 듣고 있으면 퍽 우울한 곡이지만, 사실 곡에서 정확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두루뭉술하다. 첫 가사, 'We Might Kiss When We Are Alone'만 보면 뭔가 처음 시작하는 커플이나 불륜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다음 가사를 보면 종교가 다른 이들의 고달프고 연약한 관계를 다룬 것 같기도 하다.


'Why Do You Sing "Hallelujah"?'


뭐 어느 쪽 가사든 데미안 라이스의 목소리로는 모든 게 다 우울하게 느껴진다. 데미안은 마치 우울함을 전파하기 위해서 태어나 노래하는 사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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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하게 생겨서인지 길을 돌아다니면 높은 확률로, 기를 믿습니까, 도를 아십니까, 조상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람들에게 붙잡힌다. 그럴 때마다 또 높은 확률로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손사래를 한번 치고는 가던 길을 가는 편이다.


가끔 누군가 그런 사람들에게 붙잡혀 따라가 보았네, 환복을 하고 절을 했네, 어쩌네 하는 사람들의 후기를 볼 때면, 저 사람들 참 겁도 없다, 참 어리석다, 호기심이 왕성한 건가, 거기가 어디라고 따라가나 뭐 이런 생각이 드는데, 나도 이십 대 중반에 딱 한 번 따라갈 뻔한 적이 있다.


몇 번의 사랑에 실패하고 외롭게 지내던 어느 날의 주말 종로 바닥을 걷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분명 서점이나 레코드샵 등을 구경하고 정처 없이 걸었을 텐데, 누군가 붙잡아서 이어폰을 빼고 보니 길을 묻는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길을 묻는 방식이 구닥다리인지는 몰라도 당시만 해도 처음 접하는 방식이라 나는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고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그랬는데, 분명 그러했는데. 길을 묻던 상대방의 이어지는 말 한마디에 나는 조금 흔들리고 말았다.


"그런데 남자가 눈에 왜 그렇게 눈물이 많아요?"


당시 내가 이십 대 중반이었으니 상대방은 삼십 대 중반 정도가 아니었을까. 누나, 아무튼 누나였다. 문제는 내가 누나들에게 쉽게 끌리는 인간이었다는 점인데, 더 큰 문제는 그분의 얼굴이 예뻤다는 점이다. 호감도 상승. 초면이라 해도 얼굴 예쁜 누나에게 끌리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눈에 왜 그렇게 눈물이 많아요? 어디 카페에 가서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얘기 좀 할래요?" 할 때만 해도 나는 거의 따라갈 뻔했다. 얼굴 예쁜 누나가 내 눈에 담긴 눈물을 읽어주었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그때 외로웠으니까. 아, 차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요. 그러니까 그분이 '조상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만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조상님'이라는 단어에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이분, 그런 분이시구나. 암만 얼굴 예쁜 누나여도 따라가 차 한 잔 하지 못했던 이유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쫄보이니까. 겁쟁이이니까.


괜히 붙잡혀 따라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혹시나 차에 약이라도 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같은 거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 더 쉽게 빠진다고도 하던데, 나는 똑똑하지 않을뿐더러 겁이 많은 사람이니까, 앞으로도 따라가는 일은 없을 거야. 무척이나 델리케이트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 누나의 멘트는 지금 생각해도 좀 설레는 부분이 있다. 눈에 왜 그렇게 눈물이 많냐니. 정말 문학적인 포교 멘트 아닌가. 조상님 이야기만 꺼내지 않았더라면. 눈물이 많은 사람, 그래요, 그거 바로 저예요, 하면서 쫄래쫄래 따라갔을지도.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처럼, 키스까지는 몰라도 차 한 잔 정도는 함께 할 수 있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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