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파괴되던 순간

by 이경



"책에 '병신'이라는 단어를 써도 될까요?"


몇 년 전 한 소설가의 sns 계정에 올라온 질문이었다. 질문을 던진 이는 아마도 출간을 준비하는 작가 지망생이었던 모양인데, 질문을 받은 소설가는 '절대 안 됩니다.' 하는 단호한 대답을 하였다. 그런가. 그런 단어는 쓰질 않는 게 좋은가. '병신'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질문과 답을 보고 나는 조금의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오래전 인터뷰 자리에서 만났던 한 뮤지션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이야 몇 종의 출간 덕인지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이들도 생겼지만, 오랜 시간 나에게 글쓰기란 혼자서 즐기는 놀이에 불과했다. 출간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좋아서 하는 놀이. 그러다가 서른 즈음에서부터 음악 웹진 리드머의 필진으로 참여하며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리드머에선 3년 정도 열심히 글을 썼다.


다른 이들이 주로 앨범 리뷰를 다루던 것과 달리 이런저런 기획기사나 지금 쓰고 있는 음악 에세이와 비슷한 결의 글을 썼다. 당시의 편집장도 내 글을 읽고서는 “네 글은 음악 에세이이다.”라고 말해주었으니까. 뭐,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음악 웹진 매체의 주된 직무 중 하나는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뮤지션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 당시에도 될 수 있으면 그런 활동을 하고자 노력했다.


웹진 활동을 하면서 직접 뮤지션을 만나는 일 없이 글만 써오던 내가, 꼭 소개하고픈 마음에 직접 뮤지션을 섭외하고 질문지를 짜고 인터뷰를 진행한 일이 딱 한번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선우정아였다. 지금이야 선우정아는 뮤지션의 뮤지션 같은 수식어로 불리며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지만, 리드머에서 인터뷰를 할 때만 하더라도 대중적으로는 그리 크게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이었다.


리드머와 선우정아와의 인터뷰는 2013년 7월쯤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선우정아는 7년 만에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상황이었다. 그전부터 선우정아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뮤지션으로서 그에게 궁금증이 증폭되었던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정규 2집 앨범 발매에 앞서 선공개한 트랙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을 듣고 나서였다. 보컬을 따라 흐르는 쓸쓸한 관악 파트와 가스펠 스타일의 코러스, 피아노가 메인으로 쓰인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의 주제는 한마디로 ‘헤어지자’이다. 전체적인 가사는 보편적인 언어로 쓰인 듯했지만, 딱 한 줄이 유독 튀었었다.


‘병신 같은 얼굴 치워’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의 화자는 처음부터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이 떠났음을, 또 변했음을 노래한다. 이제는 네가 싫고, 귀찮다고. 상대방의 감정을 가지고 듣고 있노라면 정말 처참하게 버림받고, 파괴되는 기분이 들어 금세 울적해져 버리는 곡이랄까. 한마디로 좋은 곡이었다.


정규 2집 발매에 앞서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이 공개되고 SNS를 통해 선우정아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비록 곡 속의 화자는 먼저 헤어짐을 말하지만,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을 만들게 된 과정은 오히려 반대의 입장에서 시작되었던 듯하다. 선우정아는 그때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었으니까.


‘ㅂㅅ같은... ㅎㅎㅎ 어릴 때 차일 때 상대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스물에 알게 된 J와 연인이 된 이후로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그 어린 시절 따로 돈을 벌었던 것도 아니고 부모님에게 용돈을 타 쓰는 철부지였을 텐데, 무슨 수로 그렇게 매일 만날 수 있었을까. 정말 그 어릴 때는 돈이 아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했던 걸까. J와 소원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벌면서부터였다.


대부분의 젊은 연인들이 그러하듯, 20대 초반 나에겐 군대 문제가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몸뚱아리는 현역으로 군생활을 하기에는 그리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나 보다. 신체검사에서 현역이 아닌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것이다.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을 해도 괜찮았을 텐데, IMF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라 이왕이면 월급을 받으며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싶어서 방위산업체 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흔히 '공장'이라고 말하는 곳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나는 공장이 그렇게 바쁜 곳인 줄 몰랐지. 지금처럼 주 5일 근무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공장의 일손은 늘 부족했다. 잔업과 야근을 하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고, 주말은 사라졌다. 당시 J와 내가 살던 동네 사이를 이제는 20분 만에 이어주는 지하철 9호선도 그때는 부재했다. 결국 공장을 다니며 주머니는 조금씩 두둑해졌지만,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주었던 시간은 점차 줄어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공기가 달라졌다는 표현을 그때 처음 실감하게 된 걸까.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버스 뒷자리에 앉아 J를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시간은 희미해져 가고, 서로의 말과 행동이 하나둘씩 영향력을 잃어가던 그때, 눈치도 없이 코피가 흘렀다.


"어, 휴지 있으면 좀 줄래?"


창밖을 보던 J는 나를 보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없어."


"나... 코피가 나는데..."


그제서야 J는 자신의 가방을 주섬주섬 열어 휴지를 찾아 건네주었다. 생각하면, 그날 J가 나에게 주지 않았던 것은 단 몇 장의 휴지가 아니었다. J는 내가 던진 말과 행동들을 파괴시키며 관심을 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J에게 따지지 않았고, J는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2013년, 선우정아가 노래한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을 들으며 그날의 차갑던 공기와 해가 진 어둑한 하늘, 창밖을 바라보던 J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우정아가 노래한 '병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코피를 흘리고 휴지를 구걸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나온 연애사에서 가장 비참했던 순간은 그렇게 선우정아의 곡을 통해 되살아났다.


일상생활에서든 글에서든 음악에서든 '병신'이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심심찮게 이뤄지고 있다. 다만, 첫사랑과 이별을 직감하게 되었던 그날의 나에게서 병신 같은 모습이 그려졌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선우정아 역시 비슷한 마음으로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을 써내려 갔을 테고. 기승전결을 따라 흐르는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의 마지막 가사는 온전하게 헤어짐을 말하는 '그만하자'이다.


눈치 없이 코피가 흐르던 그날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J 역시 우리 인연의 '그만'을 꺼내었다.

첫사랑이 실패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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