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거기로 데려가 줘

by 이경



어릴 적 어른이 되면 원하는 시간 언제든지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른만 되면 좋아하는 음악 실컷 들으면서 살아야지 했는데, 그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나이가 필요치 않았다. 특히나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 부쩍 줄어들었다.


이제 온전히 혼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정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자유 시간은 회사 업무를 보면서 생겨난다. 뭔가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맛보는 자유로움이랄까.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면 이런 기분이려나. 혹은 고독한 미식가가 일하다가 맛있는 식사를 하는 기분?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사 업무로 지하철을 타고 왕복 두어 시간을 왔다 갔다 할 일이 있는데, 이때가 가장 오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날이다. 시디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을 때야 단일 앨범을 들었다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해 음악을 들으면서는 셔플 버튼을 켜놓고 랜덤으로 흐르는 음악을 듣기도 한다.


다음에 어떤 곡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위로 들려오는 음악을 맞으며 수시로 기분이 전환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잊힌 옛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곡은 방심하고 있던 마음을 푸욱 찔러주는 비수가 되어 주책도 없이 눈물짓게 만들기도 한다.


글을 쓰고 책을 준비하는 일은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꿈을 좇는 일이었다. 외로움과 좌절감에 마음은 지쳐가고 어디엔가 자꾸만 기대고 싶은 일이었다. 나의 꿈을 이루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글을 쓰다 기대 쉴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직업은 분명 출판사 편집자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작가 지망생 시절을 보냈다. 내 글을 알아봐 주고 이해해줄 편집자 단 한 사람만 만날 수 있다면.


그런 마음으로 지내던 어느 날 회사일로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는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여느 날과 같이 랜덤으로 설정해놓은 수천 곡의 음악들 사이에서 정혜선의 <오, 왠지>가 흘렀고 그 목소리는 이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를 찔러대기 시작했다. 나름 힘겨운 시간들을 잘 견뎌내 왔다고 생각해왔는데, 정혜선의 목소리를 듣는 그 순간 나는 길 위에 한참을 멈춰 서서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정혜선이 노래하는 <오, 왠지>의 가사가 모두 내 이야기 같았으니까.

정혜선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그런 묘하고도 강한 힘이 있었으니까.

정혜선 역시 몹시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서 돌아왔을 테니까.



정혜선은 한국음악사에서 조금은 특이한 뮤지션으로 기억될 듯싶다. 정혜선은 <나의 하늘>로 1989년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은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그때는 대상이 없었고, 조규찬이 <무지개>로 금상을 받았으니 정혜선은 실질적인 2등이었달까. 어쨌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2년 정혜선은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오, 왠지>는 정혜선의 첫 정규앨범 첫 번째 트랙이었다.


89년이든, 92년이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정혜선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내가 정혜선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던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 2000년쯤 <꿈속의 꿈>이라는 곡을 통해서였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혜선은 데뷔 앨범에서 전곡을 작사, 작곡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지만, 안타깝게도 대중적인 인기를 끌진 못했다. 그리고 잠시 휴식기를 가진 후 1995년 2집 앨범을 녹음 작업까지 마쳤지만, 앨범은 여러 사정으로 정식 발매 유통되지 못했다. 발매되지 못한 정혜선의 두 번째 앨범은 일부 홍보용 시디가 관계자들 사이에 풀리며 도시전설처럼 남게 되었다.


그러던 1997년 PC통신 천리안의 음악동호회 '두레마을'이란 곳에서 '우리가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가요 100곡'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그중 한 곡이 바로 정혜선 2집에 수록되었던 <꿈속의 꿈>이었다. 동호회 사람들이 선정한 리스트가 나름 괜찮았는지 이듬해 1998년에는 유희열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가 되기도 했단다.


그리고 2000년쯤 나는 운이 좋게도 누군가로부터 이 리스트의 100곡이 담긴 시디를 선물로 받게 되었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있던 것도 아니고, 원하는 음악을 언제든지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mp3 한 곡을 다운로드하기 위해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던 그런 시대에 훌륭한 가요 100곡이 담긴 시디 선물은 보물과도 같았다.


'우리가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가요 100곡'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의 리스트. 그중에서도 정식 발매도 되지 않았던 앨범 속 트랙 <꿈속의 꿈>을 통해 정혜선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된 셈이다. 당시 정혜선의 목소리를 듣고서 들었던 느낌은 '이상하다'였다. 목소리도 발성도 창법도 발음도 하나같이 모두 이상했는데,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독보적이었다. 이미 데뷔 앨범을 작업할 때부터 주변에서는 10년 이상 앞서간 뮤지션이라고 평을 했다더니, 그 이야기가 자연스레 수긍되었다.


히트하지 못한 1집, 발매되지 못한 2집.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음색의 소유자. 죽기 전에 들어봐야 할 곡을 남기고서 홀연히 사라진 뮤지션. 정혜선은 정말 이런 도시전설 같은 여러 이야기들을 남겨놓고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흘러 정혜선의 1집과 2집 홍보용 시디는 음반 콜렉터들 사이에서 수십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가 되었다.


그렇게 <꿈속의 꿈>, 독특한 음색, 희귀 음반 같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던 정혜선은 2집 작업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2017년 새로운 앨범을 들고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꿈속의 꿈>을 포함하여 발매되지 못했던 2집의 일부 곡을 새로 녹음해서 발표하기도 했고, 1집 전곡을 리마스터링 하여 신곡과 함께 발표했다. 1992년에 발표되었던 그녀의 1집 앨범을 사반세기가 지나서야 온전히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5년이 지난 음악은 여전히 촌스럽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음악을 떠나 있던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정혜선은 음악에 대한 꿈과 열정을 저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꿈과 열정'

나라면 20년이 지나서도 꿈과 열정을 가지고서 다시 도전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까 싶었는데, 재밌게도 정혜선이 가요계로 복귀하던 그즈음부터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자꾸만 혼자라는 느낌도 더불어 생겨나면서.


그날 길 위에 멈춰서 들은 정혜선의 목소리는 여전히 이상하고, 독특하고, 우울했는데 한편으로 아주 조금은 희망적으로 들리기도 했던 거 같다. 누군가는 정혜선의 음악을 20년 동안 기다렸을 듯이, 언젠가는 내 글을 알아봐줄 편집자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 왠지 아주 조금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정말 나를 작가라는 꿈의 자리로 데려다준 몇몇 편집자들을 만나 책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몇 권의 책을 낸 지금도 또 앞으로도 글을 쓰는 시간은 혼자라는 외로움 속에 나를 가둬두는 일이긴 하겠지만, 이제는 20년이 지나서도 무언가 흔쾌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역시 글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는 일이라면 오 왠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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