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해 까치발을 들어준다는 것

by 이경




불란서 말은 그렇다던데요. 단어에 남성형이 있고, 여성형이 있다고요. 저는 우리말도 제대로 못할 뿐 아니라 영알못에 불알못(불어를 잘 알지 못하는)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요. 뭐, 불알못이라고 하니 어감이 영 그렇긴 한데 어쨌든 불알못이니까요.


고백하자면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일어와 불어를 택할 수 있었는데 뭔가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불어를 택했거든요. 3년을 공부했는데도 기억나는 문장이라곤 꼬망딸레부, 쥬뗌무 밖에 없네요. 써보라고 하신다면 조금은 곤란하겠습니다. 불알못이거든요.


불어를 배워서 좋았던 건 98년도 고교시절 프랑스 월드컵 때였어요. 프랑스 선수 티에리 앙리(Henry)가 활약할 때 일어반 애들을 바라보며 "니들은 저거 못 읽지? 헨리라고 읽지? 우리는 배운 애들이라 앙리라고 읽는다." 라며 킬킬킬거릴 수 있었거든요. 그거 하나 좋았어요. 그거면 됐죠, 뭐.


여하튼 단어에 남성형, 여성형이 있다는 게 당최 뭔 소리인지 복잡해 보여도 어떤 단어를 말했을 때 다른 무언가가 연상된다는 건 멋진 거 같아요. 저한테는 ‘까치발’이라는 단어가 그렇거든요.


‘까치발’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발뒤꿈치를 든 발'이라고 나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볼 수 있어요. 아이들은 돌쯤 돼서 2족 보행을 하기 시작하거든요. 2족 보행이 완전히 익혀지지 않을 때 아이들은 까치발을 들기 시작합니다. 더 멀리 있는 무언가를 잡으려고. 그렇게 무언가를 잡으면 손을 헤쳐 어지럽히기도 하고 입에 넣기도 하고요. 그렇게 아이들이 까치발 든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게 참 사랑스러워요.


당구장에서도 까치발은 흔하잖아요? 당구장에 가보신 적 없으시다면, 배 나온 숏다리 아저씨들을 상상해보세요. 당구대에 기대서도 당구 큐대가 공에 닿지 않을 때 아저씨들은 영락없이 까치발을 들거든요. 안 그래도 배 나온 숏다리 아저씨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죠. 아저씨들이 까치발 든 모습을 보면 그게 참 안쓰러워요.


이처럼 까치발은 그 단어만 들어도 무언가 기대하고, 기다리고, 갈망하고, 희망하고, 소망하는 그야말로 애틋한 분위기가 연상되곤 합니다. 그래서 좋아해요. 어감도 예쁘잖아요. 까.치.발. 뭔가 욕망적으로 원한다기보다 순수한 느낌이 들어서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총각 시절 키가 작은 아가씨와 연애를 한 적이 있는데요. 어느 날은 사람 많기로 유명한 명동 한복판에서 약속을 잡았거든요. 저는 ‘인파(人波)’라는 단어의 뜻을 그 거리에서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사람들이 물결처럼 밀려들어오는 거리였거든요.


그런 명동 거리에서 키가 작은 그는 저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까치발을 들 수밖에 없었답니다. 키가 작으니 위를 올려다보면 사람들 머리만 이리저리 둥둥 떠 다녔다고요. 그 수많은 머리통 중에 나 한 사람 찾겠다고 말이에요. 살면서 까치발을 들고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을 몇이나 만나볼 수 있을까요. 까치발로 기다렸다는 그의 말에 저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애틋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박혜경이 부른 <서신>에는 까치발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원곡은 가와구치 쿄고의 <Sakura>라는 곡이거든요. 일본에서 박혜경이 이 곡을 듣고 너무 부르고 싶어서 직접 원곡자를 찾아갔다고요. 새삼 리메이크를 허락해준 원곡자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덕분에 맑고 고운 박혜경의 음성으로 '까치발'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박혜경 <서신> 中

달빛이 유난히도 고와 내 님이 보낸 마음 아닐까

까치발로 달빛 품에 안으니 다정한 숨결이 들리네요


키가 작던 그 사람과의 연애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지만, 인파로 출렁거렸던 명동에서 까치발을 들어주었다던 그 마음만큼은 여전히 따듯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치 박혜경이 노래한 고운 달빛처럼 은은하게 오랫동안 남지 않을까요. 누군가를 위해서 까치발을 들어주는 그 마음의 따뜻함 말이에요. 이 마음은 분명 사랑이었던 거겠죠?


아, 그런데 까치발 말이에요. 그 후에 몇 번의 사랑을 하다 보니 이게 꼭 누군가를 기다릴 때에만 쓰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뭐 말씀드리기 쑥스럽긴 합니다만, 제가 만나보았던 누군가는 늘 제 앞에서 까치발을 들어주기도 했거든요. 입맞춤을 위해 까치발을 들어주는 모습이 느껴질 때면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거든요.


아, 그러니까 저처럼 까치발 페티시가 있는 분들은 대략 10cm 정도의 차이가 나는 연애 상대를 만나는 게 좋겠습니다. 사랑할 때 알게 되는 많은 것 중에 하나랄까요. 뭐, 물론 상대방이 저보다 10cm 정도가 크다면 그때는 저 역시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까치발을 들어줄 수 있겠죠. 까치발로 부족하다면, 사다리를 놓고서 오른다 한들, 그게 뭐 대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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