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짤은 송현규의 <혐규 만화>. 나도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고 싶다.
2. 신춘문예 시즌이다. 디시인사이드 문학갤러리에서는 올해도 신춘문예 시즌을 맞아, 어디어디 신문사에서는 벌써 당선 전화를 돌렸다더라, 야이 새끼야 구라치지마라, 진짜다 내가 전화받았다, 선생님 정말로 전화를 받으셨습니까, 그래 신문 구독료 내라는 독촉 전화받았다, 야이 나쁜 새끼야, 하는 속고 속이는 이야기들이 오갈 예정이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살펴보기에 신춘문예 시즌의 문학갤러리만큼 좋은 곳도 없다.
3. 글쟁이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자화자찬하는 걸 끔찍하게 여긴다. 아이고 작가님 글 잘 쓰시네요, 아이고 과찬의 말씀,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아이고 저 사람들 저거저거... 저들끼리 아주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싶으면서도 저저저 저 사람들 왜 내 글은 칭찬 안 해주는 거야... 하는 못난 생각이 들어서... 여하튼 하여튼 아무튼 뼈튼튼 글쟁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지나친 칭찬의 말을 믿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제 글을 칭찬해주신다면, 그때는 그 칭찬 진심으로 받아들이겠습니...
4. 다른 글쟁이의 칭찬은 못 미더워도, 칭찬은 들어야겠고. 첫 책을 내기 몇 년 전부터 그 후로 몇 년까지, 내 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디시인사이드 문학갤러리 같은 곳에 가서 글을 하나씩 툭툭 던져보았다. 익명이고, 댓글의 대부분이 악플인 곳에서 선플이 달리면 그때는 글이 괜찮다는 이야기겠지, 하는 나름의 테스트였던 셈이다.
두 종의 책을 내고서 세 번째 책을 준비하던 어느 날, 이해관계가 없는 편집자 누군가 이제 더 이상 그런 곳에서 글을 테스트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글에 확신을 가져도 좋을 거라는 편집자의 그 말에 나는 조금 울컥했고, 그 후로는 실제로 디시 문학갤러리에서의 글쓰기를 줄여나갔다.
5. 올해는 신춘문예에 글을 보내지 않았지만 브런치 공모전에 글을 보냈다. 당선 발표일이 21일인데 아직까지 전화가 없는 걸로 보아, 이번에도 물 먹은 게 아니겠는가 싶다. 자꾸만 물을 먹는다 생각하니 배부르고 치욕스럽다. 이 치욕을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고 싶다.
6. 전기장판 숫자 '5'로 세팅해놓고 머리맡에 귤 바구니 두고는 이불 푹 덮고 만화책 보고 TV 보고 귤 까먹고 축구보고 자고 깨고 자고 깨고 그러고 싶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7. 그래도 1년 열두 달 중에 아홉 달은 재미없고, 석 달 정도가 재밌는데 그 석 달이 책 준비하고 책 나오는 기간이다. 아홉 달 동안 죽어있던 자존감을 조금조금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 이 석 달 때문에 글 쓰고 하는 거지 뭐.
8. 앞선 책 세 종은 출판사 투고했고,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책은 출판사 연락으로 작업을 했고, 하고 있다. 투고 인생이었다 보니 투고가 조금 더 나은 점도 있구나 싶어 진다. 투고 원고를 출간하기로 결정한 편집자는 분명 내가 쓴 글을 좋아해 주는 거겠지, 애정이 있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원고를 작성하다 보면 그 믿음이 조금은 약해지는 것이다. 저 편집자, 지금 후회하고 있으면 어쩌지. 나와 계약한 걸 후회하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
9. 그래도 다섯 번째 책 마무리되어가면, 그때는 여섯 번째 책을 준비해야지. 별 수 있나. 이미 치욕으로 덕지덕지 어지러이 되어버린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