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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Feb 01. 2023

토마토를 먹으며


삶을 어느 정도 살았다고 생각하다가도, 아 나는 아직 너무 모른다, 모르는 게 많다, 알 수가 없다 싶을 때가 있다. 가령, 40년을 넘게 마셔온 우유가 몸에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고, 아 물론 우유는 맛있으니까 누군가 저에게 우유를 사주신다고 하면 저는 배가 아프지 않은 이상 언제라도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왕이면 초코 우유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네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토마토다. 토마토는 과일인지 채소인지. 어릴 적 토마토는 무조건 과일이지 생각해 오다가 방송 등에서, 아닌데 토마토는 채소인데 해서, 아 그치그치 토마토는 여느 과일과 달리 샐러드 등에 쓰이기도 하니까 아무래도 채소이겠지 생각하다가, 이제는 또 누군가가 아니야 토마토는 과일이야 말하면 아 그런가 싶어지는 것이다.


아메리카인지 어느 나라에서도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 분쟁이 일어나 대법관이 판단을 해주었던 일이 있었다고 하니, 그럼 그렇지, 양인들도 헷갈려하는 것을 내가 알 도리가 있나 싶다가, 요즘엔 과일도 채소도 아닌 '과채류'라는 단어로 퉁쳐버리면 그만 아닌가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우유나 토마토를 먹고 있으면 나는 뭘 모르는 채 이렇게 먹을 줄만 아는구나 싶다.


어릴 때는 엄마가 토마토를 쓱쓱 썰어다가 설탕을 솔솔 뿌려주어 먹으면 그게 참 맛있었다. 토마토를 다 먹고 모이는 토마토물이랄까 설탕물은 마치 양송이버섯에 고이는 물처럼 이렇다 할 과학적 근거가 없이도 꼭 먹어야만 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여하튼 최근 몇 년간은 한 입에 넣어 우걱우걱 먹을 수 있는 방토만 먹다가, 최근 들어 오랜만에 큰토(마토)를 사다 먹고 있다. 방토만 먹어오다가 오랜만에 큰토를 먹으니 이게 또 개꿀맛이다. 하루에 일곱 개씩 먹는다. 방토가 아니라 큰토를. 물론 한 번에 일곱을 먹진 않고, 삼둘둘 그런 식으로 먹는다.


큰토를 먹는 데에는 나름의 루틴이 있는데, 처음에는 큰 토마토를 한입 앙, 베어 먹는다. 그러고선 그 베어 먹은 부분을 쪽쪽 빨며, 토마토의 과즙... 과즙 맞나요, 이게 육즙은 아니고, 채즙이라고 해야 하나, 채즙이란 단어는 없는 것 같은데, 아니면 과채즙... 모르겠다 암튼 이걸 쪽쪽 빨아 토마토가 쭈글쭈글해져 더 이상 즙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정도로 먹는다.


그렇게 탱탱하던 토마토가 쪼글쪼글 쪼그라들면 그제야 다른 부위를 또 아앙, 베어 먹는 건데 "힝, 속았징." 하는 듯 토마토의  즙이 마치 사무라이의 칼처럼 세차고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즙은 순식간에 여기저기 뿜어져 가끔은 입고 있는 옷을 적시고... 이불을 적시고... 혼자 먹다 그러면 주섬주섬 휴지를 꺼내 여기저기 닦아가며 먹으면 그만인데, 행여나 옆에 와이프라도 있으면 와이프의 차디찬 눈초리에 내 마음도 젖어들고...


토마토를 먹으며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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