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어느 정도 살았다고 생각하다가도, 아 나는 아직 너무 모른다, 모르는 게 많다, 알 수가 없다 싶을 때가 있다. 가령, 40년을 넘게 마셔온 우유가 몸에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고, 아 물론 우유는 맛있으니까 누군가 저에게 우유를 사주신다고 하면 저는 배가 아프지 않은 이상 언제라도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왕이면 초코 우유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네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토마토다. 토마토는 과일인지 채소인지. 어릴 적 토마토는 무조건 과일이지 생각해 오다가 방송 등에서, 아닌데 토마토는 채소인데 해서, 아 그치그치 토마토는 여느 과일과 달리 샐러드 등에 쓰이기도 하니까 아무래도 채소이겠지 생각하다가, 이제는 또 누군가가 아니야 토마토는 과일이야 말하면 아 그런가 싶어지는 것이다.
아메리카인지 어느 나라에서도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 분쟁이 일어나 대법관이 판단을 해주었던 일이 있었다고 하니, 그럼 그렇지, 양인들도 헷갈려하는 것을 내가 알 도리가 있나 싶다가, 요즘엔 과일도 채소도 아닌 '과채류'라는 단어로 퉁쳐버리면 그만 아닌가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우유나 토마토를 먹고 있으면 나는 뭘 모르는 채 이렇게 먹을 줄만 아는구나 싶다.
어릴 때는 엄마가 토마토를 쓱쓱 썰어다가 설탕을 솔솔 뿌려주어 먹으면 그게 참 맛있었다. 토마토를 다 먹고 모이는 토마토물이랄까 설탕물은 마치 양송이버섯에 고이는 물처럼 이렇다 할 과학적 근거가 없이도 꼭 먹어야만 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여하튼 최근 몇 년간은 한 입에 넣어 우걱우걱 먹을 수 있는 방토만 먹다가, 최근 들어 오랜만에 큰토(마토)를 사다 먹고 있다. 방토만 먹어오다가 오랜만에 큰토를 먹으니 이게 또 개꿀맛이다. 하루에 일곱 개씩 먹는다. 방토가 아니라 큰토를. 물론 한 번에 일곱을 먹진 않고, 삼둘둘 그런 식으로 먹는다.
큰토를 먹는 데에는 나름의 루틴이 있는데, 처음에는 큰 토마토를 한입 앙, 베어 먹는다. 그러고선 그 베어 먹은 부분을 쪽쪽 빨며, 토마토의 과즙... 과즙 맞나요, 이게 육즙은 아니고, 채즙이라고 해야 하나, 채즙이란 단어는 없는 것 같은데, 아니면 과채즙... 모르겠다 암튼 이걸 쪽쪽 빨아 토마토가 쭈글쭈글해져 더 이상 즙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정도로 먹는다.
그렇게 탱탱하던 토마토가 쪼글쪼글 쪼그라들면 그제야 다른 부위를 또 아앙, 베어 먹는 건데 "힝, 속았징." 하는 듯 토마토의 즙이 마치 사무라이의 칼처럼 세차고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 즙은 순식간에 여기저기 뿜어져 가끔은 입고 있는 옷을 적시고... 이불을 적시고... 혼자 먹다 그러면 주섬주섬 휴지를 꺼내 여기저기 닦아가며 먹으면 그만인데, 행여나 옆에 와이프라도 있으면 와이프의 차디찬 눈초리에 내 마음도 젖어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