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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Feb 05. 2023

양송이를 먹으며



새러데이, 종일 먹고 자고 마시고 하다가, 밤에는 소설이나 한 편 읽어볼까 싶어 핫식스를 까고야 말았다. 요즘에는 눈이 몹시 침침하여 책이라도 읽을라치믄 에너지드링크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명백한 노화.


인터넷에 '노안'을 쳐보니 사십 대 초중반에 시작된다고 하여 나이로는 의심 충분한 상황이지만, 노안의 주요 증상으로 가까이 있는 게 안 보인다고 하는 것에 반해 비루한 내 두 눈알 가까이는 아직 그럭저럭이고 멀리 있는 게 희미해지기 시작하니 노안은 아닌 것 같아 며칠 전부터는 루테인을 먹기 시작하였다.


여하튼 밤에 책을 읽기 위하여 핫식스를 까야하는 신세 몹시 처량하다. 처량한 신세를 조금 이겨내 보고자 냉장고에 며칠 더 두었다가는 썩을 것만 같은 양송이를 꺼내 구웠다. 실은 핑계고 밤에 입이 심심한데 밥을 먹긴 좀 그래가지고 양송이를 구워본 것이다.


나이 마흔을 넘고도 새로운 사실을 알았을 때, 지금껏 세상을 헛살았구나 싶을 때가 있다. 특히나 그것이 먹을 것과 관련이 있을 때는 더욱 더. 양송이든 새송이든 마트에서 버섯을 사서 구울 때는 물에 한 번씩 씻어서 굽곤 했는데, 버섯은 물에 씻을 필요 없이 흙이나 먼지 같은 게 있으면 키친타월 같은 것으로 조금 닦아내고 먹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된 것이다.


길에 눈이 밝은 이들이 길치를 이해 못 하듯,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요리고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에겐 당연할지도 모를 이 사실을 나는 며칠 전에야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야 오늘 밤에 구운 양송이버섯은 그간의 샤워 후에 구운 버섯과는 달리 키친타월로 툴툴 털어낸 후 구워낸 양송이라는 말씀. 그냥 구우면 맛이 조금 심심하려나 싶어 소금도 소금소금 뿌려주고 후추도 후추후추 뿌려보았다.


양송이 구울 때 고이는 물이 정력에 좋네, 뭐에 좋네, 어쩌네, 그러니 흘리지 말고 반드시 먹어야 하네, 했던 말이 모두 구라였다는 것을 몇 년 전에 알게 되었듯이. 처묵처묵할 줄만 알고서 여전히 모르는 게 이렇게나 많다.


참고로 양송이 굽기에는 5분이 걸렸는데, 먹는 데에는 1분이 걸렸다. 배거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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