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서류 정리를 하지 않는 인간이라, 출근하면 맨날 하는 일이 서류 찾는 일이다. 버려도 되는 서류, 한 번 더 봐야 할 서류, 몇 년 간은 계속 보관해야 할 서류들 사이에서, 현진영도 아니면서 엉거주춤한다.
그 많은 서류들 틈 사이에서는 내 개인의 서류, 그러니까 이경이라는 작자의 출판 관련 서류들도 있어서 이참에 함께 정리하기로 했다. 출판 계약서만 하여도 어느새 다섯 부가 모였다. 그간에는 해당 출판사의 서류봉투 안에 계약서를 넣어두었는데, 하나하나 빼서 클리어파일에 정리를 한 것이다. 이러고 있으니 계약서를 작성하던 그 순간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첫 출판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평창동에 있는 출판사에 들러, 편집자님을 마주하며 직접 사인을 하고서 계약서를 들고 왔다. 보라색의 서류봉투를 들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눈물도 조금 흘렸다. 이게 뭐라고, 대체 이게 뭐라고 내 몸과 마음을 상해가며 그토록 원하였던가 싶어서.
그 후로는 코로나로 인해 사전 미팅을 하고는 우편으로 계약서를 받아 처리했다. 편집자님들은 서류나 책 등을 보내올 때 짧은 메모들도 함께 보내주는 경우가 많은데, 계약서를 정리하다 보니 특히나 메모를 자주 보내주신 한 편집자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메모를 모아놓고 보니 편집자님이 보내주신 메모의 시작은 늘 '이경 작가님'이었다. 다정한 부름. 내가 쓴 글을 나 다음으로 많이 보고서는 이해해 주는 직업의 사람들. 그런 편집자님은 늘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셨었구나.
지난 봄 편집자님을 만나, 다음 원고를 쓰게 된다면 함께 하자고 약속했었다. 그럴까요, 편집자님. 그러면 제가 샘플 원고 두 꼭지 정도만 써서 편집자님에게 보내봐 드릴까요. 편집자님이 다시 한번 제 책을 만들어주실래요. 함께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출판사 주변을 거닐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헤어짐의 손짓을 나누기 직전 우리는 그렇게 다음 책에 대한 약속을 나누었다.
그 약속을 지키려면 이제는 새문서를 열고서 키보드를 두드려야 할 텐데.
그 새문서를 여는 데까지가 조금 힘들다.
40 포켓짜리 클리어파일을 사서 다섯 포켓을 채웠다. 첫 출간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글쟁이로 꾸미고자 한 커리어는 두 가지였다. 매년 책 한 권을 낼 것과 공저 책은 쓰지 않겠다는 것. 마치 좀처럼 컴필레이션 앨범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단독 앨범으로만 자신의 색깔을 보이는 뮤지션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