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단편 <빈처>를 읽어보고 싶어서 문지에서 나온 현진건 중단편선을 사놓고서 이번 연휴에서나 읽어보았던 것이야요.
우리 소싯적에는 교과서를 통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배우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시대가 변해서 그릉가, 소설 속에서 마누라를 두고 이년 저년 오지랄년 하는 김첨지 나쁜 생키! 개생키! 하면서 교과서에서도 퇴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집에 중고교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정확한 소문의 실체는 알지 아니하는 것이야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여 교과서에서 오르내리는 것이야 십분 이해가 되지만서도, 시대상을 무시하고서 100년 전의 글을 소급 적용하여 무자비하게 비판하는 것에는 다소 조심스러운 것이야요.
몇 년 전 한 소설가가 반 세기 전에 쓰인 김승옥의 소설을 소급하여 비판하였을 적에도 저는 몹시 유감이었던 것이...(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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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처>를 읽어보고 싶었던 까닭은 소설 속 주인공이 작가 지망생이기 때문.
<빈처> 속 나는 작가를 지망하며 창작과 독서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의 아내는 집안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전당포에 맡겨가며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야요.
그러던 어느 날 장인의 생신 파티를 맞아 나와 아내는 안국동에 위치한 처가에 가게 되는데, 처가의 중문을 지나니 인천 사는 처형이 맞이해 주는 것이라요.
가난에 시달리는 처와 달리, 처형네는 얼마 전 투기에 성공하여 돈을 좀 벌었다고 하요. 그런데 처형의 얼굴을 보니까능 화장으로 가리긴 하였으나 분명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야요...
(이러고 보니까 현진건의 소설에는 가정폭력이 난무하긴 하는듯...)
나는 처형과 아내를 생각하며 장인의 생파에 가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만 진탕 처묵처묵하는 것이야요.
집으로 돌아와 술이 깬 나는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뚜드려 맞은 처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이야요.
푼돈 좀 있으면 저리 되는 거다, 하는 나의 말에 아내는 맞장구를 쳐주고 그렇게 비록 가난하지만 부부애가 있는 자신의 삶을 애써 자위하는 것이야요.
그런데 며칠 후 그 눈탱이 밤탱이 되었던 처형이 아내에게 선물이라며 신발을 하나 사다 주는 것이야요.
오, 비유티풀 슈즈...
물질적인 것에 혹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언젠가 작가로 성공하여 아내에게 비단신 하나 사줄 수 그날을 꿈꾸게 되는 것이야요.
아내 역시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라며 작가를 지망하는 나의 삶을 응원해 주며 이 소설은 끝을 맺게 되는 것이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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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지망생의 찌질하고도 자격지심 넘치며, 물질적인 시대에 예술을 하는 이의 복잡한 마음이 잘 드러난 소설이 아닌가...
이 소설의 주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역시 문학은 인간이 할 짓이 못된다... 가 아니겠는가아아...
특히나 소설 속 나는 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처만 있는데도 이렇게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니... 헤헷 빌어먹을 문학 따위, 문학이 다 뭣이당가... 헤헷, 아 이거 아닌가, 헤헷.
소설 속 나는 16세에 18세의 아내와 결혼을 하여 현재는 22세의 삶을 사는데, 말이 좋아 작가 지망생이지 그냥 날백수 아니었는가 싶기도 하고.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현진건의 자전적 소설이라는데, 재밌는 건 이 소설로 현진건은 소설가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고. 100년 전에 쓰인 글이지만 잘 읽히는 작품이었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