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 앞에 앉은 커플을 보며

by 이경



지난 연휴, 하루는 아들 1호 하고만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들렀다. 아들 1호와 일본식 튀김덮밥을 먹고서는 탕진잼을 느끼기 위해 인형 뽑기를 하였다. 상하좌우 위치를 맞추어 열쇠구멍으로 열쇠를 밀어 넣으면 아주 커다란 인형이 나오는 기계 앞에서 나는 좌절하였다. 그 커다란 인형 중에 하나가 춘식이만 아니었더라면... 춘식아... 춘식이 이 망할 놈의 생키 춘식아!!! (그날 춘식이는 한 젊은 남성의 손에 붙잡혀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결국 탕진잼만 느끼고자 했던 나는 탕진탕진대탕진잼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으으으으 이 어리석은 인간들이여...를 읊조리고서는, 곧바로 두 개층 아래에 위치한 교보문고에 들르게 된 것이다. 탕진으로 쓰라린 나의 마음 책이라는 연고를 발라 살아나보리라.


아들아, 아빠 책 좀 볼 테니까능, 너도 네 책 좀 구경하다가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들고 오렴.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보면 독서와 소설 읽기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오는데, 젊은 시절의 내가 분명 그러했다. 책이라면 아무렴 소설이지. 그러다가 정작 내 글을 쓰고서 에세이를 출간하게 되면서는 평소 읽지 않던 에세이를 읽게 되었고, 이전만큼 소설을 읽어내진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는 다시 소설을 좀 읽어볼까 어쩔까 저쩔까 싶기도 하거니와, 요즘 들어 SNS에서 친구를 맺은 소설가 선생님들도 좀 계시고 하여, 소설 신간 매대 둘러보고, 소설 베스트 매대 둘러보고서는, 소설 쪽 서가에까지 들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뿔싸, 교보문고 영등포점의 로맨스 - 한국 - 일본 - 외국 - 고전 - 작가별 여하튼 하여튼 아무튼 뼈튼튼 소설 쪽 이런저런 서가마다 사람들이 양반다리를 하고서는 책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아, 이 양반 선생님들... 그렇다고 바닥에 자리 잡고 책을 보고 있는 이들 때문에 서가 구경을 놓치고 싶진 않아서 나는 소설 서가 이곳저곳 앞에서 방황하였다.


이게 말로 하기가 좀 그렇지만,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이와 서있는 이가 마주하게 되면 각자의 신체적 위치와 시선이 몹시 좀 애매하고도 모호하게 되어버린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어쩐지 수치심도 들고, 파렴치한이 되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릉가, 앉아있는 이들 앞에서 주춤주춤 멈칫멈칫 책 구경을 하고 있노라면 대부분의 이들은 역시나 주춤주춤 하면서도 자리를 비켜주기 마련인데, 그날 유독 한 커플만이 국내소설 서가 앞에서 자리를 비켜주니 아니하고, 심지어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양쪽 옆으로는 물기가 흐르는 음료를 놓고서 느긋하게 책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몇 번을 그들 앞에서 왔다리갔다리 하였는데도 그들은 그곳이 마치 제집인양 비켜나지 아니하였다. 아, 탕진잼으로 내 마음 지금 몹시 쓰라린데, 나 지금 국내소설 서가 보고 싶은데... 이 젊은 사람들이... 이 찬란하고 젊은 날, 방이나 잡고서 놀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무슨 서점에 들러 소설 따위를 읽고 있는가...... 아, 왜 자꾸 나 열받는 마음이 생기는 거지...


결국 나는 젊은 청춘을 책 따위에 허비해 가며 서점 서가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커플로 인해 국내소설 서가의 책들을 구경하지 못하고, 시무룩한 채로 서점을 나와야만 했다.

주말, 서점에서 책을 보며 데이트하는 아름답기가 그지없는 커플... 나는 서점을 나오며 그 아름다운 청춘의 커플이 곧 깨져버리길 바라며... 헤헷, 아 이건 아닌가, 헤헤헤헷.


튀김.jpg


사진은 아들과 먹은 매운 닭고기 튀김덮밥인가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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