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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과 편집자가 없는 글쓰기 강사

by 이경





어제는 오랜만에 <편집가가 하는 일>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 책 참 재밌는데, 유일한 단점(?)이라면 보편적으로 쓰이는 '편집자'라는 단어 대신 '편집가'라는 단어를 썼다는 점이다. 출판사 열린책들에서는 책날개에 '편집가'라는 단어를 쓴 이유에 대해 밝혔지만, 그러한 타당성의 주장과는 별개로 책을 읽으며 익숙치 않은 단어에서 오는 어색함은 어쩔 수가 없다.


어쨌든 책에서는 베치 러너라는 사람이 쓴 [도대체 사랑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저자와 편집가의 관계)라는 꼭지를 가장 좋아한다. 이 꼭지가 왜 유독 좋으냐고 묻는다면, 글쎄. 이 꼭지를 읽으면 자연스레 나와 함께했던 편집자를 떠올리며 내가 해온 글쓰기, 책 쓰기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내 책은 최소한 한 사람은 설득해 냈다는 생각. 나에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 글을 살펴줄 사람이 있었다는 안도감.


한편 베치 러너는 누군가의 지적처럼 편집가는 실패한 작가가 아닐까 하는 물음을 가지면서, 우디 앨런의 명대사를 소환해내기도 한다.

'자기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법이지. 남을 가르칠 능력조차 안 되는 사람은 체육을 가르치는 법이고.'


편집자는 가끔 (혹은 자주) 글쟁이를 가르치는 직업이긴 하지만, 나는 베치 러너가 편집자라는 직업에 이 멘트를 갖다 붙인 건 지나친 비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우디 앨런의 이 말 자체가 참 개똥망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전국의 체육 선생님들, 캄 다운...)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우디 앨런으로 빙의하여 가르치는 사람을 부정하는 일들을 보곤 한다.


그 대상의 대표로는 평론가들이 있다. 평론가(음악이든 영화든 문학이든)라는 직업을 보고서, 플레이어가 되지 못한 자들이라고 전면 부정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평론가란 즐기려는 이들의 기분을 잡치게 만들기 위해 생겨난 직업이라고 말하면서, 뮤지션이 되지 못한 음악 평론가, 영화감독이 되지 못한 영화 평론가, 작가가 되지 못한 문학 평론가라고 비꼬는 것이다. 물론 일부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하더라도 어릴 때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가, 나이 먹고는 음악 웹진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케이스이니까. 그럼에도 일부를 전체로 매도하며, 평론가라는 직업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은 어딘가 좀 부족해 보인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과 그것에 대한 해석을 하는 것은 전연 다른 영역의 일이니까.


그렇다면 우디 앨런의 이 멘트는 완전히 무시해도 좋을 이야기인가. 베치 러너는 '자기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법이지.' 하는 우디 앨런의 말에 편집자라는 직업을 떠올렸지만, 나는 오히려 이 편집자가 없는 몇몇 이들을 보며 우디 앨런의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슨 이야기냐면, 우디 앨런의 말이 비록 개똥망 같다곤 하더라도 이 멘트에서 생각나는 직업군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일부 글쓰기 강사가 그렇다. 어제는 한 글쓰기 강사의 글을 읽었는데, 글의 전개방식이나 사고의 도출 과정이 몹시도 끔찍했다.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에 관한 글이었는데, 타인의 감정을 전혀 배려치 않은, 순전히 자기중심적이고 몹시 이기적인 글이었다. 그는 몇 권의 책을 내고서 스스로 작가니, 강사니 하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데, 그가 냈다는 몇 권의 책 대부분은 이른바 편집자 없이 낸 POD 방식이나, 자비출판의 결과물이었다.


당연하게도 편집자와 함께 작업하여 책을 내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POD나 자비출판으로 책을 냈던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특히나 그 사람의 글에서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에, 나는 우디 앨런의 멘트가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자기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법이지."


정말이지, 편집자도 없이 POD로 책을 냈던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얼토당토않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끔찍하다. 그래서 그 글쓰기 강사가 누구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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