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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Sep 06. 2023

돈을 내고 6주 만에 작가 되기



소셜미디어에서는 오늘도 광고가 뜬다. 6주 만에 책을 내고 작가가 될 수 있네 어쩌네 하는 광고다. 한 출판사에서 작가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공저 프로그램인데, 이런 광고를 마주하게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을 향해 욕을 퍼붓고 싶다. 알고리즘 너 이생키야, 정신 안 차릴래?


요즘 들어 부쩍 이런 프로그램이 늘어난 거 같다. 출판사부터 글쓰기를 가르치는 개인까지. 대여섯, 혹은 예닐곱의 사람들을 모아 두 세 꼭지의 글을 쓰게 하고 그걸 취합하여 책으로 내준다. 한 책쓰기 협회에서는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아 시리즈로 꾸준히 공저책을 내곤 하는데, 나는 그런 책들을 보고 있으면 어질어질 징그러움을 느낀다. 그 징그러운 결과물은 대개 자비출판이나 POD 출판으로 이뤄지는 듯하다.


공짜 프로그램이냐고? 설마, 그럴 리가. 비용은 일인당 60만 원짜리도 있고, 80만 원짜리도 있고 다양하게 있는 듯하다. 글을 모아 책만 내주는 것은 아니고 그전에 기본적인 글쓰기도 가르쳐주고, 원고 피드백도 해주고, 문우도 소개해 주고, 우정도 주고, 사랑도 주고, 글쓰기 열정도 심어주고 아무튼 이것저것 많이 해주는 거 같아. 사실 나는 안 해봐서 몰라, 알 수가 없어요.


다만, 이런 프로그램으로 첫 책을 낸 사람이 오랫동안 꾸준하게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건 아닐 것 같다. 이런 공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빨리빨리 '작가' 타이틀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모든 이들이 그러진 않겠지만, 이렇게 수십만 원의 돈을 지불하고, 단 몇 주만에 공저책을 낸 이들은, 책이 나오자마자 바로 네이버 같은 포털사이트에 자신의 인물 정보를 등록해 놓는다. 얼마 전 찍은 듯한 프로필 사진과 작가 누구누구 하는 이름 아래로는 문우들과 함께 만든 공저 책이 자리를 잡고 있다. 책 다섯 종을 내고도 얼굴이 못생겨서 인물 정보 등록을 하지 않고 있는 나는, 그들의 이런 부지런함을 보며 혀를 내두르게 된다. 성공하려면 이렇게 부지런하게 굴어야 할 텐데...


나는 이런 공저책 프로그램들이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한 상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저책을 기획하는 출판사(혹은 개인)는 이런저런 달콤한 말들로 공저책을 쓸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금방 작가가 될 수 있다. 종이책을 손에 얻을 수 있다. 글친구를 사귈 수 있다. 전문가의 첨삭과 원고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공저책 참여자들에게 중요한 몇 가지를 말해주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책은 어지간해서는 팔리지 않는다.'

'우리끼리 말고는 그 누구도 너를 작가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돈을 받고 작가 지망생들을 끌어모은 출판사들은 팔리지도 않을 공저책을 꾸준히 내면서, 책에 참여한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한다. 그리고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또 다른 작가 지망생들을 끌어모으며 뻔뻔하게 '작가 배출'이라는 홍보 문구를 사용한다. 공저 책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출판사 홍보 문구의 일환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오늘도 어떤 출판사와 어떤 개인과 어떤 책쓰기 협회에서는 읽히지 않을 수십 명의 작가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나는 사실 진짜로 모르겠어. 수십만 원의 돈을 내고서 공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작가가 되기 위한 길에 앞서 종이책 출간이라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것인지, 글 쓰는 삶이 너무 외로워서 공저책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나 글친구를 사귀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 글쓰기 전문가에게 자신의 글을 보이고 첨삭이나 피드백을 받고 싶은 건지.


그게 무엇이든 나는 이렇게 돈을 내고 공저책을 쓴 사람 중에서 이름난 작가로 발전하는 경우는 거의 못 본 거 같다.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자신의 출간 커리어에서 예의 그 '공저책'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시간이 지나고서는 그런 공저책에 참여한 자신이 부끄러워 것은 아닐까.


몇십만 원의 돈이 부담 없고, 자기만족에 그치는 수준이라면 다섯 명이서 공저책을 내든 수십 명이 공저책을 내든 내가 뭐라고 할 순 없겠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어차피 POD 같은 방식으로 책을 내는 건 무료로 가능한데, 이왕 '작가'가 되고 싶은 거라면 공저보다는 그냥 몇 페이지 더 써서, 단독으로 책을 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책 출간은 무료이고, 팔리지 않을 책이라는 것은 어차피 매한가지일 텐데.


서점의 글쓰기나 책쓰기 서가에 있는 책 중 반드시 걸러야 할 책이 있다. 제목에 시간이나 기간을 적어둔 책들이다. 이런 제목을 달고 있는 책들은 대개 책쓰기 협회나 글쓰기 강사들이 쓴 엉터리 대부분이다.

몇 주 만에 작가 되기, 몇 달 만에 작가 되기, 누구보다 빠르게 작가 되기, 아무튼 빨리빨리 작가 되기, 같은 제목의 책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작가 지망생이라면, 작가란 결코 6주 만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해줄 것이며, 돈을 내고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책을 내는 짓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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