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초조하고 불안한 작업이다. 글을 쓰려면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를 견딜 수밖에 없지만, 보통 다른 사람들은 큰돈을 들여가며 이런 일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셜리 해저드-
책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와 책쓰기에 뛰어들고 있다. 자비출판이나 POD 출판으로 책을 내는 것과 출판사 기획출판으로 책을 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 출간의 방법에 대해서는 차치하도록 하자.
어쨌든 글을 쓰려는 또 책을 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욕망을 이용하여 돈벌이에 나서는 사람들도 함께 늘어난 듯하다. 그들은 글쓰기와 책쓰기의 장점만을 떠들어대며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쓰도록 종용한다. 글쓰기의 단점은 철저하게 숨겨놓은 채.
나도 언젠가는 글쓰기든 책쓰기든 클래스를 열어서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을 할 수 있는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취미가 넘어서는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들에겐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거란 말을 전하는 편이다. 어째서? 현실이 그러하니까.
많은 글쓰기 강사들이 모두가 책을 낼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떠들어대지만, 그건 하얀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몹쓸 희망고문이며 개소리에 가까운 발언이다. 나는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책을 낼 수 있는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크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을 내지 못하게 될 때의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말해둔다. 어쩌면 평생을 '작가 지망생'이라는 딱지를 떼어내지 못하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써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다시금 키보드 앞에 앉게 되겠지만.
글쓰기란 작업은 미래의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글을 쓰는 일은 대체로 기다림의 연속이며 이 기다림은 사람은 곧잘 초조하게 만든다. 그러니 성격이 급하고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초조함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글쓰기를 밀어내는 편이 훨씬 낫다.
글을 써서 남들에게 보이는 모든 과정이 그렇지 않은가. 영감을 기다리고, 글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편집자의 반응을 기다리고, 독자의 반응을 기다리는 일. 혹여나 원고가 출판사와 계약을 하였어도 책이 언제 나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100일 후에 나올 수도 있겠지만, 1년이나 2년 후에 나올 수도 있다. 정말 운이 나쁘다면 계약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다.
이런 기다림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글을 쓴 이는 초조함에 다리를 떨며 손톱을 물어뜯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혹시나 내가 쓴 내용과 비슷한 책이 먼저 나와버리면 어쩌지. 혹시나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제목의 책이 나와버리면 어쩌지. 글만 쓰기에도 바쁜 현실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기에 이르러 결국은 신경쇠약이나 우울증 같은 병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셜리 해저드가 말했듯 보통의 다른 사람들은 큰돈을 들여 이런 일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이들은 벗어나기는커녕 이런 초조함의 세상으로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전히, 아마 앞으로도.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세상 속으로.
한편으로 이런 병적인 상황을 글감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백세희 작가의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책이 그런 결과물이 아니던가. 정신과 전문의와의 대화를 엮은 심리 치유 에세이.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자신의 우울증이나 다른 병들을 글감으로 삼아 글로 쓰곤 한다. 글에는 '자가치유'의 기능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삶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가지고 있는 병을 글로 쓰는 것과 글을 쓰면서 병이 생기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나는 병든 이들이 글을 쓰는 것에는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만 있다면) 좋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글쓰기의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볼 때에는 다소간의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주변의 누군가가 자꾸만 글쓰기나 책쓰기를 종용하려 든다면 그들은 강의 장사꾼 아니면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들은 당신을 초조함과 불안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니까. 뭐, 훗날 내가 글쓰기나 책쓰가 클래스를 열어 강의를 하게 된다면 나 역시 그런 몹쓸 악마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출처 -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다른출판사 / 엮은이 존 위너커, 옮긴이 한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