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수필선집이다. 소와다리 출판사의 책을 처음으로 샀다. 소와다리 출판사 책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보지 아니했던 까닭은 오로지 세로쓰기의 압박 때문이었다.
독서 집중력이 좋지 않은 나는 가로쓰기 책을 읽을 때조차 줄을 놓치는 경우가 빈번한데 세로쓰기는 도저히 감당 불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유년 시절 집에는 세로쓰기로 된 설화집이 있었는데, 그때 보고 근 30여 년 만에 세로쓰기 책을 보는 것이다.
압박을 뚫고서라도 세로쓰기 책을 보는 까닭은 다자이 오사무의 수필을 모아 놓았다는 점과 놀랍도록 예쁜 굿즈 때문이었다. 초도 300부 한정으로 망토 책갈피를 주었다는데 내게도 망토 책갈피가 온 것이니 신간 구매 300 순 안에 들었나 보다. 지금까지 본 책갈피 중에 단연 최고다. 굿즈는 공장에서 만든 것이 아닌 출판사 대표가 직접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인지라, 읽다 보니 세로쓰기도 뭐, 이 정도면 그냥저냥 읽을만하군 싶다. 출판사 발행인의 편집 후기가 재미있는데 [인간실격]이 제아무리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도, 소설 한 편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에도 유쾌한 순간이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책을 만들었다는데 우울한 책을 하나 더 만든 것 같다는 편집 후기였다.
편집 후기를 보고서는 대체, 뭐 얼마나, 우울하기에 이런 거야, 싶었는데 생각보다 우울하지는 않다. 수필의 문체만 봐서는 [무진기행]의 김승옥이 떠오르기도 했다. 재미있다는 이야기. 그런데 다자이 오사무는, 왜 이렇게, 문장에, 쉼표를 많이, 쓰는 걸까. 다자이 오사무 글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 쉼표를 찍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놓는 글을 요설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읽다 보면 재미있다.
책을 보다 보니 오타도 눈에 보였다. "다행이에요"라고 써야 하는 문장이 "다행이예요"라고 인쇄 되어 있기에 이거 이거 오타군, 생각하다가 출판사 홈페이지 같은 데 보면 오탈자 신고도 받고 하던데. 마침 소와다리 출판사의 대표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었고, 간간히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도 가서 구경하고 있었기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는 알려주어 고맙다며 2쇄 때 반영하겠노라고 했다. 출간한 지 얼마 안 된 책의 오자를 얘기하는 것에 대해 어쩐지 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이 책은 재미있으니까 금방 2쇄를 찍지 않을까?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꼭지는 역시 다자이 오사무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쓴 글이다. 다자이가 가와바타에게 불만을 표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 내용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내게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 다자이 오사무다. 가와바타의 글은 뭐랄까. 일단 아름답지 않나. 서정적이고. 그에 비해 다자이 오사무의 글은 좆같, 아 이건 아니고 암튼 간에 내겐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보다는 가와바타의 글이 더욱 좋은 것이다. 그럼에도 다자이 오사무의 글 역시 그 매력이란 게 충만하여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표했던 불만 같은 것도 십분 이해가 됐다.
최근에서야 안 것인데 다자이 오사무의 태어난 월, 일이 6월 19일이라고 한다. 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그의 시체가 발견된 날도 공교롭게도 6월 19일. 나는 6월 18일 생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매년 내 생일 다음날이면 다자이 오사무가 생각 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쩝.
암튼 [이십 엔, 놓고 껴져]는 추천이다. 글도 시대순으로 정리가 되었고, 중간중간 사진도 은근히 많아서 보는 재미가 있다. 소설 [인간실격]에서 봤던 여러 가지 우울한 사건들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령 동반자살을 시도하고 홀로 죽은 여성의 모습이라던가, 뭐 그런 사진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나 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세로쓰기의 압박은 견뎌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