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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빱 수필

by 이경




오늘 점심으로는 국밥을 먹었습니다. 프렌차이즈 국밥집인데요. 원래는 제주도에서 시작한 집이라고요. 몇 해 전 바나 건너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는 먹어보지 못했다가 이렇게 육지로 올라오게 되면서 자주 찾게 된 집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가게 안에는 "안녕! 육지사람"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이곳의 메뉴는 간소합니다. 식사 메뉴로는 해장국과 내장탕이 전부인데 콩나물/우거지/선지/대파는 공통으로 들어갑니다. 차이라면 해장국에는 양지 고기가 내장탕에는 소양이 나옵니다. 식사 외의 안주거리로는 돔베고기와 양무침이 있다는데요. 보통 혼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지 않는 저로서는 그림의 떡입니다.


식사를 시키면 기본 찬으로 청양고추 서너 개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으로 썰은 깍두기가 나옵니다. 조그마한 종지그릇에 다진 마늘도 가득 담겨서 나오는데요. 저는 국밥이 나오면 이 다진 마늘을 쓱쓱 긁어 남김없이 국밥에 넣어 먹습니다. 백일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웅녀처럼, 저도 마늘 좀 먹고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요.


해장국을 시키든 내장탕을 시키든 뻘건 다대기가 들어간 채로 콸콸 끓어 국물이 넘쳐흐르는 뚝배기가 나옵니다. 다진 마늘을 넣고서 이리저리 다대기와 섞으면 한없이 끓기만 할 것 같던 뚝배기도 점차 숨을 죽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릇을 하나 꺼내놓고 이런저런 건더기들을 끄집어내 먹습니다. 일단은 콩나물을 먼저 공격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 후엔 고기를 대파와 우거지와 함께 먹습니다. 중간중간 찬으로 나온 청양고추와 깍두기도 먹는데요. 청양 고추는 칼칼하고 깍두기는 아삭아삭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선지를 꺼내 먹습니다. 저는 먹을 줄만 알지, 식재료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선지를 아무리 먹었어도 내가 먹고 있는 게 소선지인지 돼지선지인지 당최 구분을 할 줄 모릅니다. 소선지 보다 돼지선지가 더 싸고 영양가도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들었는데 사실 여부는 알지 못합니다. 가끔 식당에 앉아 국밥을 먹다 보면, 국밥을 시키면서 선지는 빼달라는 분들을 보는데요. "아니, 그 맛있는 걸 왜 마다합니까, 그럴 거면 그 선지 나 주쇼." 하고픈 심정이 일지만, 저에게도 그런 말을 실제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체면 정도는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건더기를 다 먹고 나면 이제야 밥뚜껑을 열어봅니다. 하얀 쌀밥이 아닌 흑미밥입니다. 뚝배기에 남아있는 국물은 이제 열기가 그닥 남아있지 않아 밥을 술술 말아먹기에 좋습니다. 국밥 말아먹듯, 제 인생도 조금은 말아먹은 듯한 기분이 들지만 이렇게 먹고 나면 배가 불러옵니다. 기어코 오늘도 뚝배기의 바닥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 식당 계산대 앞에는 A4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습니다. 물가상승으로 인하여 메뉴 가격 인상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돈 만원으로 배를 불려주던 해장국은 12,000원으로. 12,000원 하던 내장탕은 13,000원으로. 그 외 먹어보지 못한 돔베고기와 양무침 등도 4월 1일부터 조금씩 오른다고요.


저는 이번주에만 이 국밥집에 세 번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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