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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자의 메일

구원의 천사를 찾다가...

by 이경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는 출판사 랭킹 정보를 제공한다. 책의 장르별로 출판사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순위는 출판사의 출간 종수와 판매 부수를 따져 알라딘 나름의 방식으로 매길 것이다. 꼭 순위가 높다고 해서 좋은 출판사는 아니겠지만, 나처럼 원고를 투고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랭킹 정보가 도움이 된다.


며칠 전의 일이다.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랭킹에서 소설 장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출판사 편집자에게 메일이 왔다. 장문의 메일이었다. 나는 메일의 글자 수를 헤아려보았다. 첫 메일은 2,600자. 그다음 메일은 7,100자. 단 하루에 일만 자에 가까운 메일이 내게 온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적 없는 생면부지의 투고자에게 편집자는 그렇게 긴 메일을 보내왔다. 그것도 출판사의 계정이 아닌 개인 계정으로 보내온 메일이었다.


일만 자의 글자 수를 헤아려보면서, 일만 자를 타이핑 했을 그 시간과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원고지 이백장을 띄어쓰기 없이 가득 채워도 50장에 달하는 분량. 메일의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그 정성이 보통이 아니다. 편집자가 보내온 메일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 마음은 자꾸만 몰랑몰랑해졌다.


나에게 조금 더 얘기해주었으면, 이 메일의 끝이 보이지 않았으면. 맛있는 걸 먹을 때 음식이 자꾸만 줄어들어 속상하다는 한 개그맨의 말처럼, 나는 편집자가 보낸 긴 메일이 끝을 향해갈수록 아쉬웠다. 그 아쉬움은 출판사의 피드백이 고픈 투고자의 어쩔 수 없는 허기인 것이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속 소설가는 자신의 에이전시와 편집자를 가리켜 '구원의 천사들'이라고 부른다. 한낱 무명의 원고 투고자인 나에겐 에이전시가 없다. 훗날 내 글을 다듬어 줄 편집자가 생긴다면 나는 그를 가리켜 '구원의 천사'라고 부를 것이다. 일만 자의 메일을 보낸 그가 당장 내게 '구원의 천사'가 될리는 없다. 다만 그는 담담한 내 문체가 맘에 든다고 했다. 담담한 문체. 그래. 그렇게 썼고 읽히길 바라던 글이다. 그저 담담하게. 또 무던하게.


글을 쓰고 투고하는 일은 좌절과 희망이 수시로 오가는 일이다. 대부분의 반려 메일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일말의 희망이 담긴 멘트에 다시금 힘을 내는 일이다. 일만 자의 메일에서 내가 방점을 찍어 읽은 단어는 '그럼에도'다. 그는 최근 출판업의 불황과 투고 원고를 출간하는 일의 어려움을 말해주었다. 당장 자신의 출판사에서 내 원고를 채택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원고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원고의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일만 자의 메일을 보내준 편집자가 읽고서 피드백을 주었던 원고는 두 달 전 한 출판사와 계약 논의가 오가던 글이었다. 그곳은 편집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두 사람이 함께 운영하던 출판사였다. 그들은 내게 미팅을 권했고, 합정 교보문고 근처에서 만남을 가졌다. 항상 책에 치여 사는 사람들일 텐데, 어쩜 출판사 사람들은 약속도 꼭 서점 근처에서 잡는 걸까.


출판사 사람들이 미리 장소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합정의 밤거리를 이리저리 헤매 다녀야만 했다. 적당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는 원고 이야기를 나눌 카페를 찾아다녀야만 했다. 그들은 나를 끌고 다녔고, 나는 끌려다녔다. 그 준비 없고 대책 없던 끌림이 나는 싫지 않았다.


지하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다, 마침 눈에 띈 지하 카페 덕에 우리는 에스컬레이터에 내리자마자 다시금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어 원래의 자리로 내려가야 했다. 좁은 에스컬레이터에 한 줄로 서서 뒤통수를 바라보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 모습에서 나는 우리 세 사람이 마치 발리우드의 '세 얼간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출판사 편집자와 마케터. 그리고 원고 투고자. 우리 세 사람은 각자 따듯한 커피 두 잔과 차가운 커피 한 잔을 시키고는 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문학가와 작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미리 프린트해 온 내 원고를 두고 분명 지갑을 열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라 했고, 나는 그렇게 출간의 꿈이 성큼 다가온 것을 기뻐했다.


미팅 막바지에 출판사 편집자가 내게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출판업은 사양 업이며 학교에서 책을 읽으면 왕따가 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책을 다듬는 자신과 책을 파는 마케터는 바보라고 했다. 나를 가리켜 이곳에 발을 들인 작가님도 바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바보라고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사양 업이나 바보라는 단어보다 편집자가 불러준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마음이 더 동했다. 이미 우리는 한 줄로 서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얼간이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바보라도 좋다. 작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바보가 될 수 있노라고, 흔쾌히 바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팅을 마치고 얼마 후 출판사는 내부 회의 끝에 원고의 장르를 확정 짓고 내게 원고 보강을 요했다. 기쁜 마음으로 원고를 보강하고 출판사의 답변과 계약을 기다리길 한 달여. 그 기다림의 시간 사이 불행히도 편집자와 마케터의 동행은 깨져버렸다. 내가 주로 이야기를 나누던 편집자가 출판사를 나가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나는 다시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야만 했다.


그렇게 새로이 문을 두드린 출판사 중 한 곳의 편집자에게 일만 자의 메일이 온 것이다. 한동안 좌절에 빠져있던 내게는 단비와도 같은 장문의 메일. 편집자는 계약되지 않은 원고의 수정 의견을 말하는 것은 예의도 아닐뿐더러, 원고를 수정한다 하여도 자신의 출판사와 계약까지 이루어지리라는 법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 수정 아이디어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의견을 토대로 글을 고쳐보고 싶다고 했다. 글을 고치겠다고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순 없지만 글을 고쳐 그에게 다시 보내겠노라 했다.


그가 내게 썼던 일만 자의 글을 타이핑했던 시간을 다시 헤아려본다. 그저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 맞지 않아 반려한다는 그 흔하디 흔한 단 몇 줄의 메일로도 충분했을 그는, 나를 위해 일만 자의 시간을 할애했다. 나를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었다.


출판사 사람들과 미팅 때 카페 테이블 위에는 따뜻하고 차가운 커피들이 함께 있었다. 비록 반려의 메일이지만 일만 자의 메일을 보내준 편집자의 그 마음은 차가웠기에 반려였을까. 혹은 따뜻했기에 수정 의견을 보낸 걸까. 나는 그 마음의 온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내 원고에서 마음에 와 닿았다던 몇몇 문장을 붙여놓은 그 메일을 보며, 어쩌면 나는 그토록 찾아다닌 '구원의 천사'에 가까운 사람을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정말,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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