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은 이러하다. 주말 아웃렛 등을 돌아다니다가 예쁘고, 싼 신발이 보이면 일단 사놓는다. 당장에 신지는 않더라도 카드를 긁고 보는 것이다. 신발에도 출시 기간이라는 것이 있어서 눈에 띄게 예쁜 신발이 언제 단종이 될지 모르고, 할인폭이 클 때 사놓는 게 여러모로 득이 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새 신발이 좋았다. 발은 불편하더라도 때 묻지 않은 깨끗함과 발목을 감싸주는 그 짱짱함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헌 신발이 좋다. 아무렇게나 발을 욱여넣어도 착 달라붙는 편안함이 좋은 것이다. 나는 패션피플과는 거리가 먼 사람. 단 한 켤레의 신발 만을 신고 다닌다.
단 한 켤레의 신발을 신다 보니 오래 쓰지는 못한다. 길면 1년. 단화의 생명력은 짧으면 석 달이다. 군대 훈련소 시절 야간 행군 때 장교의 "너 이 개새끼, 발 끌지 마" 하는 소리가 없었다면, 나는 내 걸음걸이의 문제를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몹쓸 걸음걸이로 밑창이 망가지고 빗물이 새어 들어올 정도면 그제야 신고 다니던 신발을 버리고, 미리 사다 놓은 새 신발을 신는 것이다.
작년 여름에는 출판사와 미팅할 기회가 있었다. 출간 계약을 제안받은 것이다. 신고 다니던 신발의 밑창은 닳았고, 가끔은 빗물이 들어오기도 했다. 아내는 출판사와 미팅이라도 하려면 신발이라도 깨끗하게 신고 나가라고 했다. 그렇게 어느 여름날엔 아내와 아웃렛을 돌아다니다가 새 신발을 사곤 했다. 출판사와 미팅을 할 때 꺼내 신으려고.
그렇게 산 새 신발은 오로지 신발의 기능만을 한 채 역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버려졌다. 지난여름 계약을 제안해주었던 출판사와는 계약이 엎어졌고, 새 신발을 산 목적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신발 하나 사는 데도 출판사와의 미팅을 생각하다니. 내 발목을 붙잡고 나를 끌고 다니던 것은 신발이 아니라, '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에 몇몇 출판사와 미팅을 하였지만, 그때 내가 신은 신발이 어떠한 신발인지는 도무지 기억이 없다. 오래된 헌 신발이었는지, 새 신발이었는지.
지난 여름날. 출판사와 미팅할 때 신으려던 새 신발은 버려졌다.
그리고, 보름 전 나는 새 신발을 꺼내 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