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거나 읽다가 환멸감이 느껴질 때 바이블처럼 꺼내보는 책들이 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단카집이라든지, 송현규의 <혐규 만화> 같은 책들. 특히 <혐규 만화>는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하든 춤을 추든 소위 예술한다는 사람들 책장에 한 권씩 꽂아주고 싶은 책이다. 어설픈 희망과 위로, 또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몹시 고마운 책이랄까.
<혐규 만화>는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작업한 흔출판사를 통해 2019년에 나온 책이다. 흔출판사는 백세희 작가의 책으로 돈도 좀 벌었을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2021년 이후로는 새 책이 나오질 않고 있다. 출판사 대표가 이제 책 만드는 일에 흥미를 잃은 것인지, 자세한 사정은 내가 알 수 있는 도리가 없지만.
여하튼 며칠 전에는 새로이 쿨타임이 차서 책장에서 <혐규 만화>를 꺼내보았다. 여전히 공감이 가고 폐부 깊숙이 찔러주는 네 컷의 만화들. 특히 이번 재독에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이에 대한 페이지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다.
몇 년 전 내가 쓴 글에 누군가 따지듯이 댓글을 단 적이 있다. 댓글을 단 사람은 만화를 그리는 창작자였는데, 당장 내가 쓴 어느 문장에 꼭지가 돌아버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조금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쓴 글의 일부에서 자신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아서 따지기 시작했다고. 그 후로 그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해(?)를 풀고 소셜미디어에서 친구를 맺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가끔씩 그가 소셜미디어에 만화를 올릴 때면 조용히 응원의 마음을 보내기도 하고.
가끔 글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는 이들을 보게 된다. 내 눈에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길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들은 혹시라도 진짜 독자가 되어줄지도 모를 예비 독자들에게 살살 살살 꼬리를 흔들어 보이기도 하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살갑게 굴듯이 대한다. 여기에도 붙어보고, 저기에도 붙어보고. 글쓰기가 아닌 친목도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 그런데 글을 쓰려는 사람이 그렇게 주객이 전도된 채로 살면 스스로 너무 힘들고 지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가며 내 글을 읽어주십사 하는 헛된 희망을 품고살아가는 게.
글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혹은 그게 사람이 되었든. 세상 그 무엇도 모두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는 것 따위는 없다,라는 비교적 명확한 명제를 깨우친다면 그렇게 애쓰며 살아가지 않아도 될 텐데. 세상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으려는 태도가 얼마나 창작자를 갉아먹는 행위인지,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