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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과 떡볶이

by 이경


외근이 있어 구로동에 다녀왔다. 구로 고대병원을 지나쳤다. 고대 구로병원인지, 구로 고대병원인지는 여전히 헷갈리고 향후 5년간 구분 못 할 예정이지만 현재의 느낌으로는 구로 고대병원이다.


살면서 이런저런 일로 수술대에 누워본 경험이 있는데 태어날 때 빼고는 초딩 2년 여름 방학 때가 처음이다. 목에 혹이 하나 있었더랬는데, 그때는 워낙 어릴 때고 내가 의사를 직접 본 것도 아니라서 엄마 말 만 듣고 수술대에 누웠다. 그 당시 의료기술이 부족해서인지 혹이 나중에 암이 될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지는 꺼내봐야 안다는 얘기였다. 전신 마취도 아니고 부분 마취였기에, 칼이 목을 슥슥 써는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목을 째고 혹을 꺼내보니 '아무것도'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목에는 아직도 칼로 짼 흔적과 실밥 자국이 있다. 유치한 초딩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고 나면 영웅담이라도 되듯 또래에게 자랑삼는다. 나 역시 유치한 초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방학이 끝나고서는 친구들에게 목에 칼자국을 보여주며 자랑삼았다. "이것 봐라. 신기하지?" 하며 깔깔거리면 친구들은 진짜 신기해했다.


그 수술을 했던 곳이 구로 고대병원이다. 역시나 워낙 어릴 때라 기억이 맞는지 확신할 순 없지만, 암튼 간에 구로 고대병원을 다녔던 것만은 분명하다.



구로 고대병원을 지나치니 병원 바로 앞에 떡볶이 집이 있었다. 떡볶이 집의 상호는 <응급실 떡볶이>

병원 간판과 응급실 떡볶이 간판이 나란히 보이는데 조금 뜨악한 느낌이었다. 이거 이거 한밤중에 응급 환자가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하는데, 간판만 보고 떡볶이 가게로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상상을 했다. 의사를 맞닥뜨려야 할 상황에 뻘건 국물이나 보이면 어쩌나 싶은 거다.


"의사! 의사 어딨어요! 응급 환자예요!"라고 아픈이가 외쳐봐야, 떡볶이 가게 사장님은

"손님. 아니, 환자분. 여기는 응급실이 아니고 떡볶이 가게예요." 하는 몹쓸 상상이 일었다.


실제 병원 응급실 환자 가족들은 과연 응급실 떡볶이를 먹을 것인가. 응급실이라는 떡볶이집 상호만 봐도 징그럽지 않을까. 하필이면 병원 바로 앞에 응급실 떡볶이가 있을게 뭐람. 뭐 맛만 있으면야 먹을 수는 있겠지만. 병원 앞 떡볶이 가게에서는 떡볶이만 팔 게 아니라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같이 파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고.


가끔 인천의 한 동네에 가보면 불야성이다. 나이트, 카바레, 음식점 등이 밤새 장사를 하는데 그 곳곳에 자리 잡은 것이 모텔이다. 한마디로 모텔촌의 동네인데 몇 해 전에 이곳에 큰 종합병원이 들어섰다. 모텔촌 사이 병원이라니. 이 동네는 뭔가 생과 사가 함께 하는 동네군. 흠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밤새 사랑을 나누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는 동네. 재미있지 않나.


고작 병원 간판 하나 보고서는 머릿속에서는 이런저런 몹쓸 상상이 떠오른다.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나는 좀 똘아이가 아닌가... 싶을 때 키보드를 잡는 것이다. 상상했던 일을 글로 옮기면 그나마 내가 좀 덜 똘아이 같다. 똘아이에서 글쓴이로 신분 상승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결론은 아무래도 오늘 야식으로는 떡볶이를 먹어야겠다는 생각.


*글을 다 쓰고 검색해보니 정식 명칭은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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