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뒤에 오는 것들
결과확인 후 20일이 지났습니다.
아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데, 저는 매일 하던 루틴이 사라지니 헛헛함이 밀려왔습니다. 아침마다 도시락 싸서 학원 데려다주고, 저녁시간 놓칠세라 알람 맞춰놓고 배달시키고, 아이들 재워놓고 연필 깎고 물감 짜던 일과가 사라지니 약간의 무기력함이 오더라고요. 인간의 적응력이란… 널뛰기하던 마음을 다잡고, 아이와는 다음 단계를 위해 정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았거든요.
끝나고 보니 엄마로서의 후회를 몇 가지 남겨봅니다.
1. 어차피 시킬 거였으면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해 볼걸 그랬어요.
사실, 저도 주변에서 하도 미대 나오면 돈못번다, 예술하면 뭐 먹고살아 이런 말들을 들어왔어서 편견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중자체를 선택지에 넣어보지를 않았던 것 같아요. 5학년 2학기 되어서야 이제 중학교 갈 생각 하니 해보자,라는 마음을 먹은 건데요. 물론, 1년이라는 시간도 짧지는 않았지만 제 아이에게 소묘의 구력은 좀 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 아이라서 그 정도만 해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과신도 있었을 수도요. 그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입시라는 건 어쨌든 감각적인 부분+규격에 맞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맞더라고요. 감각은 타고난 걸로 커버가 되지만 후자는 트레이닝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합격한 친구들은 4학년때부터도 많이들 시작했더군요. 그래서 고민하고 남의 말 듣지 말고, 아이가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면 시작해도 괜찮다…6개월이라도 빨리 시작했으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까요? 이런저런 부질없는 생각에 마음이 널뛰기를 했나 봅니다.
2. 1일 차 학과시험 당일, 학과 선생님과의 통화를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학과학원에서는 기출문제를 받아야 하니 시험 끝나자마자 아이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저의 불찰이었어요. 필요했다면, 3일 차 실기까지 끝내고 통화를 했어야 해요. (아이들의 기억력에 기대야 하니 그러셨겠죠) 시험난이도가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는 평과 달리 실수로 틀린 문제가 있어 보였는데… 확인사살을 받으니 아이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였습니다. 다음날 시험 준비를 위해 미술학원 가는 동안 눈물을 한바탕 쏟고 갔어요. 잊으라 했지만 초6아이에게 그게 쉽게 될 리 가요. 전형이 다 끝나고도 학과점수를 걱정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비단 저희 아이 학원뿐만 아니고, 시험 보자마자 교문을 나오는 아이들을 붙잡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어요. 중요한 건 이미 보고 나온 시험문제가 아니라 이틀이나 남은 실기였습니다.
불합이라는 결과는 어찌 됐건 후회만을 남깁니다. 미술학원 원장님 조차도 합격을 못 시켰다 하시며 너무 죄송해하는데 그조차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가 1년 동안 그림 그리는 생활을 누구보다 즐겁게 했던 걸 지켜본 엄마로서 이 실패를 어떻게 자양분으로 만들어야 할까를 많이 고민하게 했습니다. 앞으로 고입, 대입… 더 큰 산들을 넘어야 하는 예방주사를 제대로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는 여전히 그림 그리는 게 좋다고 해요.(예중편입은 기회가 있어도 안 하고 싶답니다…?) 미술학원도 다니던 곳에 계속 다니고 싶어 해서 그러자고 했어요. 살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있다는 것은 축복이겠지요… 이제 또 다른 문을 향해 걸어가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