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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봉 Aug 10. 2019

추운 날 바다에 들어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서핑 1주차(1) - 꽃샘추위의 추억

4월의 시작인데

때 아닌 꽃샘추위가 왔다.

가만히 서있으니 바닷바람에 뼛속까지 시리는 봄이었다.


남애리 팔봉서프 앤 하우스


유서방은 서핑을 하는 후배로부터 추천을 받은 세 곳의 서핑샵 중 ‘이름이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골랐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도 갈 수 있고,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을 추천해달라 했다. 흔히 알고 있는 서핑 성지 죽도와 인구해변은 밤이면 젊은이들의 천국이란 말에 유아 동반 4인 가족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닐 것 같았다.


우리가 처음 간 그날의 남애리 바다엔 정말로 우리 밖에 없었다. (월요일인 데다 지금 생각해보면 파도가 좋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이기도했고. 그런데 정말 서핑 강습을 한다고?


서핑샵 사장님이면서 강습도 해주는 팔봉쌤은 추위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겨울용 서핑 슈트와 장갑, 슈즈를 신으면 괜찮다고 안심시켰다.(그렇지만 안 괜찮을 것 같았다)


유서방은 몇 가지 서핑 룰과 파도에 대한 이해를 위한 이론 강습을 받은 뒤 슈트를 갈아입고, 손과 발을 무장한 채 처음으로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향했다.


요 몇 달 지켜본 유서방의 표정 중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좋냐 행복하냐



누구 때문에 하는 이 개고생을 잊지 않겠어!



원래 계획은 아빠가 강습을 받는 바다에서 유남매는 즐겁게 모래놀이를 하는 거였다. 집에서 햇빛과 바람을 피할 원터치 텐트도 야심 차게 준비해 갔다. 그런데 한 겨울 같은 바닷바람과 추위가 복병일 줄은. 오리털 패딩과 마스크로 무장시켜 아빠를 따라 바다로 나갔지만, 10분 만에 철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강제로 퇴장당했다, 바람에 날아간 텐트에서.


이튿날 다시 시도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원터치 텐트는 모래사장에 버려둔 채 유남매와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팔봉서프에 살고 있는 두 마리 강아지 바다와 사랑이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기다림. 꽃샘추위의 바다는 많은 걸 허락하지 않았다.


바닷가이기 때문일거야. 짠내가 폴폴나는 10분의 추억


유남매랑 놀아줘서 고마워...


봄날의 파도는 생각보다 거세 보였다.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에 열심히 빠지는 유서방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내가 겪은 마음고생이 떠올라 살짝 고소하기도 했다.  


유서방은 빠른 성미만큼 배움에 있어서도 짧고 굵게 배우길 좋아한다. 예전에 PT를 할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양양에 머무는 사흘 동안 1:1 강습을 하고 싶다고 했다. 퇴사시킬 생각도 했었는데, 그 정도쯤이야 흔쾌히 동의했다.



업! 원, 투

멀리서 지켜본 서핑 강습은 발목에 리쉬코드(줄여서 리쉬)를 묶고 보드와 함께 바다에 들어간다. 몸도 가누기 힘든데 기다란 보드와 함께 파도를 뚫고 들어가면 자세를 잡고 해변을 향해 눕는다. 그럼 파도가 오는 타이밍에 팔봉쌤이 일어날 타이밍을 외쳐준다.


업! 원, 투
풍덩


하루를 그렇게 죽기살기로 배우더니 이튿날은 제법 잘 일어나는 것 같았다.




원래 서퍼는 멋있지 않나요?


예정된 강습시간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배운 유서방에게 너무 묻고 싶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서핑이라는 걸 배웠는데 어땠을까. 한참을 생각하더니 뜻밖의 대답을 했다.


단순히 재미있다고 하기 어려운 것 같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기분을 같이 느껴보고 싶어


그리고는 한번 더 남은 강습을 나에게 받으라고 했다. 추위라면 질색하는 내가 무슨 서핑이냐며 손사래를 쳤다. 더욱이 낮 기온이 10도도 안되는데 차디찬 바닷물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그런데 어떤 모종의 작당(?)이 있었는지 팔봉쌤은 XS사이즈의 서핑 슈트를 살며시 건네주었다.



이렇게 함께 서핑을 하는 건
처음부터 계획된 건 아니었다




유서방 처음 바다에 들어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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