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는 전이를 통해 전파되고 발전한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佛敎)는 중국으로 넘어와 도교(道敎) 등에도 영향을 미치며 인도와는 다른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또 중국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 불교는 신라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며 중국과는 다른 우리만의 발전을 발전을 이루었다. 불국사와 석굴암, 팔만대장경 같은 우리의 불교 문화재를 보면 발생지인 인도의 것과는 어딘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가 전이를 통해 이동한 다음 그 곳에서 다시 재창조된다는 의미이다.
20세기에 발생한 가장 창조적인 예술 장르 중 하나인 ‘재즈’를 예로 들어보자. 재즈는 1) 아프리카의 리듬적 요소, 2) 미국 흑인 특유의 음악 감각, 3) 유럽의 악기와 하모니 이 세 요소가 어우러져 새롭게 탄생한 음악이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다시 말해 전이(轉移)된 요소들이 현지의 감각과 어우러지며 오리지널인 아프리카의 토속음악이나 유럽의 클래식과는 다른 창의적인 새로운 음악 장르가 나온 것이다. 재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다른 장르의 요소들을 흡수하며 변하고 있다.
재즈의 가장 큰 특색으로는 엇박에서 나오는 스윙 감(感)과 임프로비제이션(즉흥연주)을 들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재즈연주가가 악보대로만 연주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에 따라 다양한 변주(變奏)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즈 곡(曲)을 악보대로만 연주하면 이미 재즈가 아니다.’라는 명언은 이러한 재즈의 철학을 대변한다. ‘재즈’란 곡의 형식이나 곡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연주 스타일 및 연주 그 자체에 대한 호칭이란 것에 그 본질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재즈의 요소는 재즈에만 머물지 않는다. 리듬앤블루스와 힙합과 같은 현대 팝 음악의 각 장르에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창조를 이끈다.
우리가 즐겨 보는 ‘웹툰’과 ‘게임방송’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놀랍게도 웹툰과 게임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곳은 대한민국, 바로 우리나라이다. 미국의 코믹스(comics)와 일본의 만가(まんが) 문화가 오래 전 우리나라에 전해져 이어지다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서비스로 재창조되었던 것이다. 네이버 웹툰 작가들의 평균 연봉이 2018년 기준으로 2억이 훨씬 넘는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서 하나의 문화가 된 웹툰은 이제 미국과 일본에 역수출되어 만화를 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 되는 ‘게임방송’ 또한 그 유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사(社)에서 1998년에 발매한 ‘스타크래프트’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긴 했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히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할 만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당연 화제에 올랐고, 대학교 실험실이나 직장에서 교수님이나 상사들 몰래 이 게임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게임의 놀라운 인기는 단순한 인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산업 창출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방(房)’ 문화가 게임과 만나 ‘PC방’이라는 새로운 IT 문화를 이루었고,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케이블방송은 스타크래프트의 흥행을 반영해 세계 최초로 ‘게임방송’이라는 새로운 방송 장르를 만들어 내었다. 이것은 ‘스타크래프트’를 개발된 미국에서도 없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PC방과 게임방송은 이제 세계적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외국에서 수입된 뭔가가 우리나라의 문화와 어우러지며 새로운 문화산업을 일궈낸 것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