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심리학에서는 전이를 ‘앞에서 행한 학습이 나중 학습 효과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풀이한다. 여기에서 이전 학습이 나중 학습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양(陽)의 전이’, 부정적으로 방해하게 되면 ‘음(陰)의 전이’라 한다. 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육상부에서 달리기를 해왔던 사람이 후에 축구로 종목을 바꿨다고 하자. 축구 경기의 상당 비중이 뛰는 것인 만큼 많은 경우 이 사람에게는 ‘양(陽)의 전이’가 일어날 것이다. 육상에서의 달리기와 축구에서의 달리기가 똑같지는 않지만 육상을 하며 단련한 하체 근력과 심폐지구력 등이 축구의 달리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의 예도 들 수 있다. 씨름을 위해 몸을 크게 불린 사람이 갑자기 승마로 종목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말도 동물이라 무거움을 느낀다. 기존에 해오던 운동이 바뀐 운동에 방해가 되는 ‘음(陰)의 전이’가 생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창의력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바로 이 ‘양(陽)의 전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이전에 행한 어떠한 경험과 학습이 나의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2011년 중국 촬영에서 있었던 일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원 사업에 선정돼 <미래산업, 스토리텔링>이라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나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실경 뮤지컬 ‘인상서호(印象西湖)’와 ‘인상대홍포(大紅袍)’를 촬영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 실제 자연인 호수와 산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스케일의 두 공연은 내가 이때까지 봤던 공연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이감을 안겨주었다.
이 공연을 선두 지휘했던 총감독은 바로 중국의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공연연출가 ‘장이모우’였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함께 ‘철(鐵)의 삼각’이라 불리는 ‘왕차오거’와 ‘판웨’와 함께 7개 도시에서 7개의 ‘인상(印象) 시리즈’를 만들어 중국 국내외에서 커다란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내려오던 민담(民譚)을 실제 호수(湖水) 위에서 환상적인 장면으로 펼치는 ‘인상서호’와 지역의 특산물인 차(茶)에 얽힌 설화를 실제 산(山)에 세워진 360도 이동 무대에서 펼쳐 보이는 ‘인상대홍포’.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두 공연을 촬영한 카메라감독과 나는 압도적인 스케일과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해야 저런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할 수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인상 시리즈’의 가장 우두머리인 ‘장이모우’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워낙 세계적인 인물이라 인터뷰를 직접 할 수는 없다고 들었다. 대신 그와 함께 모든 ‘인상 시리즈’를 총감독한 ‘철(鐵)의 삼각’ 중 하나인 ‘판웨’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 인상 시리즈의 탄생에서부터 그것이 각 지역에 미친 다양한 효과들에 대한 답변을 들은 후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개인적으로 궁금한 질문을 건넸다.
“언젠가 나도 당신처럼 멋진 공연을 만들어 보고 싶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내 단순하지만 명료했다.
“한 분야에서만 일을 했던 사람들보다 어떤 일을 하다가 다른 분야로 이전한 사람들에게서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나도 처음부터 공연 쪽의 일을 한 건 아니다. 나는 원래 미술을 공부했는데, 어떠한 계기로 이 분야에 들어오게 됐다. 이전에 다른 분야를 공부하던 게 이 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당신은 지금 방송 일을 하지 않나? 그 쪽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공연 연출 쪽으로 진로를 바꾸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 연출가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얘기를 기대했던 나의 예상과는 다른 답변이었다. 솔직히 말을 듣는 순간에는 그 뜻의 정확한 의미도 몰랐다. 한국에 오고 나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고 나서야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판웨 말의 요지는 이렇다.
‘지금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라. 그러다가 혹시 어떠한 이유로 다른 분야의 일을 하게 된다면 그 때의 경험으로 새로운 창의적인 안목을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