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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재바이브 Oct 22. 2024

모방 3 - 레퍼런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레퍼런스 :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feat. 서태지와 아이들)


우리가 오늘날 혁신이라고 일컫는 것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국내 가요계의 변혁을 이끈 서태지, 그에게는 어떠한 특별한 점이 있었을까?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출처=나무위키)


내가 고 1이던 1992년 우리 가요계에는 메가톤급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 해 3월말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은 패션과 춤, 랩으로 순식간에 젊은이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 해 2월에 내한한 미국의 보이그룹 ‘New Kids on the Block’의 춤과 노래에 열광했던 청소년들은 4월이 되자 ‘난, 알아요’로 시작하는 우리말로 된 랩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기존 세대와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 젊은이들을 X-세대라 칭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서태지의 출현이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지며 이 용어가 사회적으로 더 크게 회자되었다.


서태지의 음악은 이전의 가요와는 확실히 달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앨범이 ‘랩’을 중심으로 구성됐고, 이에 어울리는 춤과 패션이 패키지처럼 함께 했다. 미디(midi)로 만든 음악에 락(rock)적인 요소가 더해진 사운드는 신선했다. 라디오와 빌보드차트, 그리고 미군방송(AFKN)을 통해 1980년대 말부터 미국의 힙합을 접했던 내게 서태지는 우리들이 열광할 대상이 더 이상 외국의 팝스타가 아니라 국내 아티스트가 될 것임을 보여준 게임체인저(game-changer)였다.


그렇다면 가요계의 판을 완전히 바꿔버린 서태지의 음악은 어디에서 왔을까? 당시 많은 언론에서는 서태지의 음악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혹은 서태지만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능력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묘사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당시 팝송을 즐겨들었던 사람들에게는 서태지의 음악이 대략 어떤 흐름에서 나오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테이프(출처=예스 24)


결론적으로 말하면 서태지는 미국의 여러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레퍼런스로 활용해 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가다듬고 더욱 멋지게 발전시켰다.


1970년대 초부터 흑인 빈민가에서 시작된 힙합은 80년대를 거치며 팝뮤직으로 점점 스며들어 80년대 말이 되자 팝음악의 주류로 급부상하였다. 서태지는 이러한 환경에서 미국의 힙합에 자신만의 색채를 더해 독보적이면서도 다양한 음악을 만들었다.


몇몇 유튜브 채널에서는 팝 아티스트들과 서태지 음악의 비슷한 구절들을 대비시켜 표절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표절은 명백히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서태지는 외국 곡들을 그대로 베낀 게 아니라 그 중 일부를 차용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더욱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차용은 힙합의 태동과 함께 했다. 아마 서태지가 레퍼런스로 삼은 곡들도 대부분 다른 곡들의 형식과 멜로디 일부를 차용했을 것이다. 이는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표절과는 분명히 다르다 것이다.


원래 록그룹의 베이시스트였던 서태지가 팝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감지해 미디(midi)로 연습 삼아 만들어봤던 노래가 그 유명한 ‘난 알아요’이다. 그렇다면 서태지는 미디로 처음에 곡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도 미디의 다양한 기능을 익히고 각 사운드를 적절히 배치하기 위해 무언가를 참고하지 않았을까?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난 알아요’가 독일 국적의 ‘밀리 바닐리’라는 그룹의 ‘Girl You Know It’s true’라는 곡과 유사성이 있다고 표절 의혹이 있지만 들어보면 서태지가 참고는 했을지언정 그대로가 아닌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지게 재창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엔 비슷하게 모방으로 시작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 이것은 '레퍼런스 활용'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문화의 태동, 그리고 이를 한국식으로 멋지게 승화시킨 서태지의 노력이 결합돼 일찍이 한국에서는 없던 새로운 혁신적인 문화의 흐름이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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