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많은 고대의 학자들은 창조적인 예술 행위가 ‘무언가에 대한 모방’에서 유래한다고 말해왔다. 그 ‘무언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에 차이가 있지만, 단순 표절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재창조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한다.
플라톤은 예술을 ‘이데아를 모방한 현상계의 모방’으로 생각했다. 가령 책상과 이를 그린 정물화를 생각해보자. 플라톤에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책상’은 ‘책상의 이상적인 모습(이데아)’를 모방한 산물이다. 그렇다면 화가가 그린 정물화는 어떤 것일까? 정물화는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 속의 책상’을 다시 모방해 그린 2차 모방 산물이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그림이란 진리인 이데아로부터 두 단계나 떨어진 것이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 같은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관념적 실체를 거부하고, 실체는 현실 세계의 감각 사물 속에서 움직이고 변화하면서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책상으로 다시 예를 들자면 책상에 관한 ‘이데아’가 애초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 책상을 만들고 나서 그것들이 여러 장인들을 통해 변화하는 가운데 책상의 실체(이데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에게서 최초로 만들어졌던 책상이 이를 모방하며 만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데아’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모방의 행위를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자 배움을 낳는 지성적 활동으로 보았고, 현실 세계를 모방해 반영한 예술 작품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모방은 외관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모습 속에 담긴 어떤 가치를 이상화하고 전형화해 표현하는 것이었다. 즉 예술 작품은 삶의 모습들 중 핵심만을 포착하여 ‘보편성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었다.
홍길동전을 예로 들어보자. 홍길동전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당시 서자(庶子)들의 사회적 차별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허균은 당시 조선 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일기 쓰듯 기록한 게 아니라, 홍길동이라는 가상 인물에 허구적 사건을 엮어 ‘당시의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하나의 전형화된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러한 소설이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안에서 어떤 사회적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다른 예로 ‘장발장’이라는 주인공으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들어보자. 이 소설은 1830년대 전후의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데 빈부격차, 학대, 치안불안 등 당시의 사회 문제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이를 분석해 본다면, 우선 이 소설은 현실 세계였던 당시의 사회상을 모방했다. 그런데 단순히 그대로 모사한 게 아니라 ‘장발장’을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에 얽힌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의 완결성 있는 이야기’로 구성했다. 즉 소설가는 현실을 반영하되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기에 작품으로서 가치 있는 이야기를 선택하고 이를 재구성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이러한 창의적 모방 행위를 통해 예술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레이스(호라티우스)는 위의 두 사람과는 다른 새로운 모방론을 제시했다. 바로 ‘고전모방론’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에 대한 모방론을 제시했다면, 그는 과거의 명작, 즉 고전(古典)에 대한 모방론을 제시했다. 그에게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머(호메로스)가 남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후대의 작가들이 모방하고 따라해야 할 문학적 전범(典範)이었다. 그는 그리스 고전에서 사용된 서술양식을 시작(詩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면 과거의 것을 그대로 따라하면 좋은 모방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과거의 것을 그대로 따라해 보는 것은 새로운 것을 익히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어떤 작가들은 연습생 시절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여러 차례 필사(筆寫)했다고도 한다. 또 많은 음악 대중음악 작곡자(편곡자)들도 초창기 실력을 늘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정해 그 곡 그대로 악보에 그리거나 미디 시퀀서에 찍어보라고 권한다. 기존 작가(작곡가)의 작품을 따라하다 보면 표현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부분은 이렇게 표현했구나’라는 느낌이 오기 시작하며 작가의 세부적인 표현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연습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발전시킬 수도 있게 된다. 물론 이렇게 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호레이스가 주장한 모방은 그리스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니라 고전에 담긴 훌륭한 표현 양식을 계승하고 더 발전시키자는 의미의 ‘모방론’이었다. 그가 시법(詩法; 피소스 가에 보낸 서한)에서 ‘디코럼(decorum)’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는데, 이는 등장인물이 자신의 캐릭터에 맞는 적절한 말투와 행동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의 모든 영화, TV 프로그램, 소설, 시 등에도 모두 적용되는 개념이다. 가령 영국 왕실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왕족들이 뉴욕 뒷골목에서 쓰는 어투로 대화한다면 얼마나 이상할지 다들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반전을 노리고 이러한 작품을 쓴다면 그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다른 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호레이스가 그리스 고전에서 모방했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시의 주제와 형식에, 또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어울리는 절제되면서도 적합한 표현양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