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것을 모방하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 행위가 내재화의 단계를 거쳐 자기 것이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친구들이 하는 재미있는 놀이를 보면 나도 그 놀이를 따라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놀이가 된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댄스'를 모방해 따라하다 보면 그 동작이 자연스럽게 익혀 진다. 이러한 동작이 쌓이고 쌓여 많아지면 다른 음악에도 ‘프리스타일', 즉 나만의 방식으로 춤을 출 수 있게 된다.
이는 다른 스포츠와 예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테니스라켓을 잡고 상대방의 공을 받아치면 이리저리 공이 선 밖으로 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TV에서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던 받아치는 행위가 실제로는 많은 연습 끝에 얻어진 고난도 기술이었던 것이다. 코치의 지도 아래 똑같은 스윙 동작을 반복 연습하고 하나둘 다른 동작들도 배우게 되면, 상대의 공이 어디에서 오든 어느 정도 받아칠 수 있게 된다.
* 출처=도약닷컴(도약아트)
미술학원에서는 좀 더 ’모방과 창조‘에 직접적으로 연계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미술을 처음 배우게 되는 초보자들은 대개 기초 데생부터 시작하는데, 정사각형-원기둥-원뿔-구 등의 단순 입체 모형을 똑같이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모방의 단계일 것이다. 이것에 익숙해진 학원생들은 좀더 복잡한 기하학적 모형과 석고상 등을 따라 그리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기초실력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창조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나는 직업에서 이러한 단계를 거쳤다. 대학에서 어학을 전공한 나는 말 그대로 편집의 ‘ㅍ'자도 모른 채 방송국에 입사했다. 방송국의 입사시험은 필기와 다층면접으로 구분됐는데, 면접시험 중 1차 격인 실무면접에서도 편집 실기를 보는 게 아니라 지원자의 창의력, 구성력, 논리력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촬영과 편집 같은 실무를 하지 못해도 방송국에 들어오는 데는 큰 무리는 없었다.
처음 선배와 함께 편집기 앞에 앉았을 때의 생소함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동료들 사이에서 ‘편달(편집의 달인)’이라 불렸던 선배의 특훈으로 간신히 리니어 편집기*의 작동법을 익히고 나서 카메라 선배와 함께 첫 촬영을 나갔고 욕심이 나서인지 이것저것 다양하게 찍고 돌아왔다.
“너무 많이 찍으면 나중에 편집하기 힘들텐데 …” 라는 선배의 말을 들었지만 혹시라도 필요한 장면을 놓칠까봐 카메라 선배에게 이것저것 촬영을 요구했다.
3분짜리 영상이었는데 30분짜리 테이프 한 개 반 분량을 찍었던 것 같다. 이것을 줄여 3분으로 재미있게 압축해야 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편집할지 몰라 막막했다. 나는 편집기 앞에서 한 시간 넘게 한 컷도 붙이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선배는 내가 가편을 붙여 놓으면 다음날 오전에 와서 봐준다 말하고 퇴근했다. 그 날 밤 나는 어떻게든 가편을 붙여놔야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편집실 안팎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을 때, 마침 편집실에 돌아다니는 예전 방송 녹화테이프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두어 개를 가져와 같은 VCR을 보고 또 봤다. 보고 또 보고 반복해 여러 번을 보다보니 안개가 천천히 걷히듯 화면이 진행되는 흐름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롱샷을 통해 장소를 인지시킨 후 풀샷과 클로즈업 화면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베테랑인 카메라 선배는 이러한 것을 알고 풀샷, 미디엄샷, 클로즈업 등 다양한 구도의 화면을 다 찍어주셨다. 나는 반복해서 본 그 VCR과 비슷하게 붙이면 어떻게든 시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집실에 앉은 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한 컷 한 컷 붙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선배에게 이런 편집은 ‘garbage’ 수준이라고 호되게 비판받긴 했지만 어쨌든 지시 불이행은 피할 수 있었다.
이 날부터 나는 촬영이 없는 날엔 선배들이 만들었던 여러 방송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것을 분석하고 따라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레 편집의 적절한 리듬과 흐름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선배들의 방송본을 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편집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