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 어떤 근원으로부터 갈려 나와 생김’이다. 즉 뭔가가 무(無)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원천 소스(source)로부터 갈라져 나와 생겼다는 의미이다. 마블 사(社)의 각종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 ‘어벤져스’를 생각해보자.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이 영화를 위해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들이 아니다. 그동안 각기 다른 영화에 등장했던 각각의 주인공들이 하나의 영화 안에 모여 힘을 합해,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한다는 스토리이다. 이렇게 영화 또는 TV에서 기존 작품에 있는 캐릭터, 설정 등을 따와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을 ‘스핀오프(spin-off)’라 한다.
스핀오프, 즉 ‘파생 기법’은 특히 TV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방송사에서 하나의 프로그램이 히트하면 그것의 꼬리에 꼬리를 문 작품들이 잇달아 출시되기도 한다. KBS의 교양 프로그램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도전 골든벨’은 과거 ‘스타 골든벨’이라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파생시켰다. 출연자들이 바닥에 앉아 문제를 푸는 것은 비슷했지만, 출연자가 연예인인 것이 원(原) 프로그램과 달랐고 또 문제들도 ‘숨은 그림 찾기’, ‘절대음감 게임’, ‘명탐정 게임’, ‘⏤을 이겨라’ 등 보다 예능적인 유형이 많았다. 경쟁이 치열한 예능계에서 6년이 넘는 시간을 방영했으니 성공했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미스 트롯>으로 큰 히트를 기록한 TV조선에서는 후속으로 같은 형식에 출연자의 성별만 바꾼 <미스터 트롯>을 만들어 전편을 뛰어 넘는 기록적인 시청률과 '임영웅'이라는 불세출의 스타를 낳았다. 또 <미스터 트롯>우 이후 <사랑의 콜센터> 등의 파생 프로그램을 낳아 저비용 고효율의 큰 성과를 이루어 냈다. 그리고 TV조선의 또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국민가수>는 <미스 트롯>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해 역시 성공했으며 <국민가수> 역시 <국가가 부른다> 등의 스피오프 프로그램을 낳았다.
케이블에서는 스핀오프가 더욱 활발하다. 시즌 8까지(2020년 초 기준) 나온 TVN의 ‘신서유기’는 출연자들이 미션을 진행하다 문득문득 나오는 대사 등을 놓치지 않고 이를 확대 활용해 다양한 파생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왔다. 원(原) 프로그램보다도 인기가 많았던 ‘강식당’을 비롯해 ‘아이슬란드로 간 세끼’, ‘라끼남’ 등은 ‘신서유기’의 출연자 캐릭터를 그대로 활용해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같은 CJ 계열사인 Mnet에서는 ‘쇼미더머니’, ‘프로듀스 101’, ‘슈퍼스타 K’와 같은 대형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오디션 속의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해당 프로그램이 아닌 별도의 파생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진행하곤 했다.
영화에서는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파생 기법’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마블(Marvel)은 ‘마블 엔터테인먼트’ 사(社) 안에 ‘마블 코믹스’, ‘마블 스튜디오’, ‘마블 애니메이션’라는 자회사를 두고 각 사(社)들이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작품을 생산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영화를 만드는 ‘마블 스튜디오’는 ‘마블 코믹스’의 만화책에 나오는 ‘캡틴 아메리카’, ‘토르’, ‘스파이더맨’, ‘아이언 맨’ 등의 캐릭터를 자신들이 만드는 실사 영화에 활용한다. 이 때 영화의 줄거리는 만화책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영화적인 스토리로 재탄생된다. 또 영화나 만화의 일부는 ‘마블 애니메이션’을 통해 애니메이션으로도 파생된다.
뿐만 아니라 마블(Marvel)에서는 영화 부문에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Marvel Cinematic Universe)’라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각 영화들이 플롯, 설정, 캐스팅, 캐릭터를 공유하며 연관을 맺도록 한다. 각 작품마다 다음 작품에 대한 복선 또는 지난 작품와의 연관성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각기 다른 작품들이 서로 연관을 맺고 하나의 거대한 가상의 세계관으로 이어질 때 관객들은 영화 안에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이라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또 영화라는 하나의 영역 안에서 펼치는 마블(Marvel)의 이러한 ‘파생 역량’은 마블을 독보적이면서도 아주 특별한 콘텐츠 생산 회사로 자리 잡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