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에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 서정주, 춘향유문(春香遺文)
고교 시절 문학시간에 배웠던 이 시는 지금도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詩)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고전소설, ‘춘향전’을 모티브로 해 만들어졌다. 변 사또의 수청을 거역해 옥(獄)에 갇혀 죽음을 맞이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춘향은 몽룡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다짐한다. 이 시 읽고 있으면 두 청춘이 처음 만날 때, 한창 사랑을 나눌 때, 이별을 할 때, 시련을 겪을 때 등 춘향전의 많은 장면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춘향유문’은 모두 알다시피 고전소설 속에 나온 대목이 아니라 서정주 시인이 춘향전을 읽고 나온 감흥을 ‘춘향의 말’로 다시 창작한 것이다. 춘향이 감옥에 갇혀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일편단심으로 지아비 몽룡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인이 상상하며 지은 것이다. 서정주 시인은 ‘검은 물’, ‘구름’, ‘소나기’ 등으로 표현되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춘향의 심정에 결합함으로써 그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 시는 ‘춘향전’에서 파생되었지만 소설의 내용에 시인의 사상과 감수성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작품이 되었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인 마크 트웨인은 ‘톰소여의 모험’이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소년소녀 명작소설 집(集)’에 나온 ‘톰소여의 모험’을 읽으며 그 잔꾀와 용기, 자유로움에 크게 감명을 받기도 했다. 후에 이 소설은 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되며 많은 소년, 소녀들을 설레게 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성인을 대상으로 썼다고 하지만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시시피 강가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주인공 ‘톰 소여’는 짓궂은 개구쟁이였던 세 명의 동네 친구를 섞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어린 시절 겪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 동굴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될 뻔한 경험 등이 소설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아이들의 눈으로 위선적인 어른들을 조롱하고 있으며 보다 보면 꽤나 어두운, 사회 고발성 성격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는 톰과 더불어 매력적인 캐릭터 ‘허클베리 핀’이 등장한다. 술주정뱅이인 아들인 그는 스스로도 헛간 밑이나 선박용 통 속에서 살면서 마을을 떠돌아다닌다. 마을의 주부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도 않는 허클베리와 어울리지 못하도록 단속하지만, 그는 여러 방법으로 마을의 아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낸다. 자유로운 영혼인 허클베리는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의 친구로 멋진 조연이었다. 그런데 작가가 8년 뒤 발표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제목처럼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의 후속 이야기를 톰의 관점이 아닌 허클베리의 관점에서 썼던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허클베리를 통해 사회적 제약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상을 보여주고자 하였으며 노예 문제와 같은 당시 미국 사회의 맹점을 풍자하였다. 허클베리 캐릭터 역시 그의 동네 친구였던 독립적인 성격의 목공소집 아들을 모델로 삼아 만들었다고 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당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후 성인 문학에서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내용상으로는 전작과 이어지지만 ‘톰 소여의 모험 2탄’이 아닌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나온 이 작품은 전작에서 파생되었지만 그것을 이을뿐만 아니라 또 다른 독립 작품으로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