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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재바이브 Oct 22. 2024

낯설게 하기 2 - 작품 속에서 만나는 사례들

작품 속에서 만나는 ‘낯설게 하기’의 사례들


문학뿐만 아니라 그림도 ‘낯설게 하기’에서 출발한다. 화가들은 인물과 풍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시선’이라는 필터를 통해 새롭게 표현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과 색채에 치중하여 표현하고 사실주의 화가들은 고단한 현실의 모습을 실재적으로 표현한다. 야수주의 화가들은 대상을 강렬한 색채와 단순화한 형태로 변화시키고 입체주의 화가들은 대상을 기하학 형태로 단순화하고 또 분해해 재구성한다. 각 미술사조에서 표현하는 이러한 방식의 차이가 각각 ‘낯설게 하기’의 한 형태인 것이다.


심지어 마르셀 뒤샹이라는 화가는 1917년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전’에서 어느 상점에서 사용 중이던 남성 소변기를 들고 와 ‘샘(Fountain)’이라 이름 붙여 출품했다. 그는 실제 화장실에서 사용 중이던 소변기를 들고 와 거기에 ‘1917’이라는 제작년도와 변기 제조사인 ‘리처드 머트(R. MUTT)’라는 이름을 서명한 뒤, 이를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샘(Fountain)’이 ᅟ출품되자 당시로서는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되었던 독립미술가협회 운영위원들 사이에서도 큰 논란이 일었고, 결국 ‘샘(Fountain)’은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고 철수되었다. 이 사건으로 뒤샹은 독립미술가협회의 회장직을 사퇴하고 한 미술 전문 잡지에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게재했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변기를 오브제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변기에 새로운 명칭을 부여했고, 원래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가치를 제거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해낸 것이다.”


뒤샹은 소변기라는 기성품(旣成品)을 ‘낯설게 하기’의 시선으로 새롭게 바라보았다. 그는 상품으로서의 기능이 아닌 작가가 부여한 의미로서 그 제품을 바라보았고, 작가의 서명을 통해 일개 상품을 미술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어떤 것의 가치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꿰뚫고 있었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예술의 본질에 한 발짝 더 다가갔던 것이다. 이 작품은 현재 예술가들이 뽑은 ‘20세기의 가장 획기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에는 영화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자. 2020년 초를 뜨겁게 달군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가슴을 조이던 많은 국민들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주었다.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옥자’ 등으로 이미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이었지만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두 영화제의 최고상인 작품상 동시 수상은 세계적으로도 6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보기 드문 쾌거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화 ‘기생충’을 이렇게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이 영화의 주제인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간 갈등’은 많은 국가에서 통용될 수 있는 매력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기생충의 대성공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의 성공 비결로 여러 가지의 요인이 언급될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의 주된 성공 요인 중 하나는 ‘공간을 다루는 특별한 능력’이다.



그의 작품들에 나오는 주요 장소를 살펴보자. ‘플란다스의 개’(2000)의 아파트, ‘괴물’(2006)의 한강, ‘설국열차’(2013)의 기차, ‘기생충’(2019)의 대저택과 반지하주택 등은 모두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거나 지나치는 공간이다. 보통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별다른 생각 없이 사용하는 공간을 봉 감독은 낯선 그만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생활의 공간인 아파트가 강아지 연쇄 실종 사건의 생생한 무대가 되고, 한민족의 젖줄인 한강은 버려진 독극물로 인해 괴물이 잉태되는 공간이 된다. 칸과 칸이 이어져 굴러가는 기차는 계급과 계급이 수평적으로 나눠진 충돌하는 곳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부유층과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대저택과 반지하주택은 소득이라는 계급으로 나눠진 계급간의 단절을 상징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일상적 공간을 그만의 ‘낯선 시선’으로 새롭게 형상화하는 그의 능력이 다른 감독들과 차별화되는 그만의 경쟁력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을 때 다음의 같은 소감으로 경쟁후보였던 미국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존경을 표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를 인터뷰한 책에서 나온 이 구절을 봉 감독은 늘 가슴에 품고 다녔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개인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많은 타인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가장 개인적인 것’이란 바로 ‘나만의 낯선 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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