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거나 경험한 것들을 '낯설게 하기'를 통해 매력적인 무언가로 재창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평범하고 일상적일수록 '낯설게 하기'를 통한 매력도가 증폭된다.
(출처 : 뉴스 1)
위의 사진은 필자가 초등학교 때 즐겨 했던 놀이 '오징어' 게임을 하는 모습이다. 참가자들은 공격과 수비 두 팀으로 편을 갈라 게임을 한다. 공격하는 팀 멤버들은 바깥지역을 깽깽이(한 발로만 뛰는 걸음걸이)로만 다닐 수 있는데, 가운데 금이 그어진 지역을 선을 밟지 않고 가로지르면 두 발로 다닐 수 있게 된다. (물론 수비하는 팀은 공격자가 가로지를 수 없도록 밀쳐 낸다.) 마지막으로 공격한 팀원들이 사각형 끝의 원에 모인 후 삼각형의 원으로 돌진해 성공하면 그 팀은 다시 공격의 기회를 얻게 되고, 실패하면 수비로 전환된다.
1980년대 초등학교에서 축구, 딱지치기, 구슬치기와 더불어 가장 흔히 했던 놀이였다. 그렇게 너무 흔해서였을까? 나는 한 번도 놀이 '오징어(게임)'를 작품 소재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 시리즈물로 나온다고 예고했을 때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곁에 두고 있던 보물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좋은 이야기 소재가 내 경험 속에도 있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누구보다도 많이 '오징어'를 하고 놀았다. 그런 '오징어(게임)'가 넷플릭스에서 나온다니 과연 어떻게 그려질지 너무 궁금했다. 오징어 게임을 할 때 그리는 선의 형상인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낯설게 하기'를 통해 포스터 글자에 넣은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2021년 9월, 넷플릭스에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공개되었다. 솔직히 앞부분 즉 주인공인 이정재가 나락에 빠져 게임에 참여하는 장면까지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설정도 좀 작위적이었고 화면 때깔도 그저그랬다. 그런데 미스터리한 '데스 게임'에 참여하면서부터 몰입도가 내가 이제까지 본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삶과 죽음이 게임 하나로 갈라지는 장면이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다. 특히 참가자들의 생사를 가르는 게임이 바로 예전에 내가 하던 '골목놀이'라는 것이 묘하게 다가왔다.
과거의 향수를 자아내는 추억의 놀이들이 화면 속에 나오는 게 신기했는데, 무엇보다도 그게 참가자들의 생사를 가르는 '데스게임'이라는 게 충격적이었다. 넷플릭스 포스터에 나오는 문구처럼,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의 동심'은 파괴되고 있었다.
일반적인 창작자라면 위의 게임들을 과거 회상이나 향수를 자아내는 장면을 만들 때 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황동혁 감독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위의 게임들을 새로운 쓰임새로 활용했다. (지난 회차에 설명한) 마르셀 뒤샹이 남자화장실에서 떼어온 소변기를 '샘(fountain)'이라는 예술작품이라 주장한 것처럼, 황 감독은 추억의 골목놀이를 현대 막장 인생들의 생사를 가르는 데스게임으로 재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