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는 예보일 뿐

by 박상환

일기예보란 참 좋은 것이다. 다가올 날들의 기후를 미리 예측해 우리로 하여금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케 한다는 것. 그것은 실로 현대문명이 가져다준 크나큰 선물이다. 머나먼 옛날에는 구름의 이동이나 새들의 움직임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예상을 했더랬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후변화의 예측을 추상적 예언이 아닌 구체적 예보로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뉴스나 신문을 통해 내일의 날씨를 미리 알 수 있었다. 나아가 이제는 인터넷 검색이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변하는 날씨를 확인할 수 있다. 시간대별로 날짜별로 내가 알고 싶은 만큼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심지어 다른 도시 다른 국가의 날씨도 방 안에서 알아볼 수가 있다. 해외에 사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거기는 지금 눈이 많이 온다며? 네가 사는 데는 괜찮아?"라고 바로 물어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이 100%의 정확도를 보장할 수 있을까. 한치의 오차도 없는 그런 거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100%는 없는 듯하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 같다. 예기치 못한, 그러니까 일기예보에도 전혀 없었던 폭우로 인해 당황했던 일. 머리를 손으로 아니면 가방으로 가린 채 뜀박질을 하고, 이미 집에 많이 있는 우산을 불필요하게 또다시 구입하는 일. 또는 일기예보만 믿고 그에 맞춰 옷을 입고 나갔는데, 정 반대의 날씨로 추위에 덜덜 떨거나 아니면 땀으로 옷을 흠뻑 적셨던 일.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완전무결한 100% 일치는 어려운 일 같다. 기상청 직원들의 야유회 날에도 비가 왔었다는 우스운 일화도 있다.


하늘이 주관하는 일이다 보니, 인간의 지혜가 제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나 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앞으로 수년의 세월이 흘러도 100% 일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과학적 예측이 의미 없을 정도로 자연을 막 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고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수 없이 전망하고 예측한다. 이런 일을 거의 일생동안 반복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의 방법이 동원된다. 먼저 걸어갔던 선배들의 조언과 충고를 귀담아듣기도 하고, 세계적인 현자나 학자들의 인생 지침서도 탐독한다. 각종 기관에서 조사한 미래예측 데이터도 참조한다.


살면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가능한 예측법을 모두 동원한다. 이 정도 했으면 실패 따위는 전혀 없어야 인지상정일 텐데, 이게 꼭 그렇지마는 않더라. 물론 예상했던 대로, 예측에 들인 그 노력만큼 잘 풀리는 일도 있다. 하지만 역시 이마저도 100%가 아니다. 철저하게 대비하고 준비했으면 비를 맞거나 추위에 떠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러나 인생의 예보가 보기 좋게 빗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맞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예측하지 못했던 풍랑이라면 타격도 상당할 것이다. 우리가 평생 동안 살면서 항상 화창한 날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과연 그게 그렇게 좋기만 한 일일까. 항상 맑은 날만 있으면 그게 맑은 날인지 모르지 않을까. 아마 '맑음'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도 무의미 해질 것이다.


미처 예상 못한 인생의 기후도 결국 인생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날씨를 주관하는 하늘의 섭리처럼 우리의 인생도 인간의 예상으로는 설명 안 되는 일이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나 눈이 온 뒤에 하늘은 더 맑아지고 깨끗해진다. 땅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해보니 이 또한 참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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