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에 부쳐
낡은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찾아왔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다. 지나간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에 묻혀 살다 보니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1년이, 10년이 지나갔다. 나이 듦이란 성숙과 지혜를 머금는 일 일터인데, 과연 나는 그렇게 되었나. 지난 1년과 10년 전의 나에 비해 얼마만큼 더 자랐을까. 모두들 새해 각오와 다짐을 얘기할 때 나는 조금 다른 곳을 보고자 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내 마음의 키를 재보고자 했다.
꽤나 많이 자란 줄 알았다. 축적된 경험으로 인한 혜안이 생긴 줄 알았다. 다수의 사회적 경험은 어떠한 고난도 버틸 자신이 있었으며, 여러 사람을 겪으며 이해심과 배려심도 많이 쌓은 줄 알았다. 나는 겉으로 보기엔 가진 게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의 정신만큼은 고상하다고 자부를 했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충만한 이해심으로 모든 것들을 끌어안으면 마음의 빈틈은 없을 줄 알았다. 그렇게 자만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자만이 화근이었다. 새해를 앞두고 가까운 사람과 감정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런 의도로 받아들인 상대방의 반응은 싸늘했다.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나는 재빠르게 사과하고 다시 한참 동안 생각했다. 아뿔싸. 한참의 생각 후에 내가 얼마나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나로 인해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에 틈이 생겼다. 그 누구보다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여전히 난 메워야 할 틈이 많은 사람이었다.
살아간다는 게 이런 것일까. 계속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충해 나가는 것. 그 '틈'을 메우는 일련의 과정들이 삶이라는 것일까. 100% 정답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내 생각은 그렇다. 묵묵히 자기 자신의 틈을 메워가는 그 과정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여러 과정 중에서도 상석에 위치할 아주 중요한 과정인 것이다. 자신의 틈을 깨닫고 메우려는 그 부단한 노력들이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
틈을 깨닫는 일은 여러 가지의 작용과 사건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돈오점수 같은 급작스런 내면의 깨우침도 있을 것이고, 외적인 사건에 의해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틈을 인식하는 일 자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떼는 일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틈을 알았다면 이미 우리는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틈을 메우는 일은 꽤나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꾸준히, 묵묵히 그 틈을 메우다 보면 언젠가 그 갈라진 틈이 완전히 메워질 것이다.
결국, 나의 새해 다짐은 이렇다. 올해뿐만 아니라 계속 되뇌게 될 다짐. 묵묵히 틈을 메워가자. 중요한 건 메워가는 행위의 꾸준함에 있다. 단 한 번의 극적인 변화보다는 더디고 느리더라도 계속해서 틈을 찾고 메우는 행위를 끝까지 하는 것. 그래서 1년 전의 나보다 10년 전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지혜와 성숙의 차원을 높이는 것.
그 사람과의 벌어진 틈은 잘 메울 수 있을까. 예기치 않은 충돌은 깨달음을 주기도 했지만, 그 사람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 한쪽이 무겁다. 충돌로 인한 상처가 아물 때쯤이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지. 그렇게 틈을 메우려 노력해야겠다.
결국 나의 빈틈을 메우는 일은 나의 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데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벌어진 관계의 틈을 메우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