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폭탄은 테러다
지난 탄핵 정국은 굉장히 특수했고, 탄핵을 성사한 전략들도 특수한 수단이었다. 문자 폭탄은 제각각 의미 값을 지닌 의견 표현이 아니라, 민심이란 덩어리로 뭉친 거의 물리적인 수준의 타격이다. 문자 수천 건을 일시에 퍼부어 통신 장비를 마비시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신변 및 가족에 관한 위협도 끼어있어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이걸 직접 민주주의에 의거한 정치적 행동이라 설명할 순 있겠지만, 정적에게 공포감을 심으며 정치적 효과를 꾀하는 유사 테러행위란 점은 인정해야 한다. 말이 좋아 문자 폭탄이지 그냥 모바일 테러 아닌가? 소신에 따른 입법부의 자율을 보장하려면 제한된 수단으로 용인해야 한다.
탄핵정국에서 문자 폭탄은 대의 민주주의라는 마지노선 사수, 명백한 가치판단을 묵살하는 새누리 파당을 통제할 유력한 수단이라서 용인되었다. 국민의 주권이 횡령당했으니 과격한 방식으로나마 탄핵을 가결하는 데 주권을 투입해야 했다고 수긍할 수 있다. 헌법 조문처럼 말하자면, 현존 명백한 비상시국에 발동할 수 있는 국민의 자위권이었다. 하지만 문자 폭탄은 남발되었다.
당내 정치 투쟁에서 반대파를 겁주려고 문자를 퍼붓고, 인사를 검증하는 야당의 역할이 중요한 청문회를 습격하는 걸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나. 이런 문제는 지난 광장을 충분히 성찰하지 않았기에 벌어지는 것이다. 언론도 제 역할을 못했다. 천관율 기자는 시민들이 치밀한 전략으로 입법부를 통제해 탄핵을 가결시켰고 광장과 의회의 이분법이 무너졌다고 황홀한 어조로 치하했다. 이렇게 승리란 결과로 상황을 소급 해석하는 건 정국의 특수성으로 용인받는 행동을 무비판적으로 정당화하며 앞으로의 과제를 지우는 일이다.
대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차선책이지만, 현대 국가는 대의 민주주의를 통해 통치될 수밖에 없다. 요는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도록 시민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지, 대의 민주주의 체계를 뛰어넘고 위축시키는 행동이 일상화되면 안 된다. 탄핵 정국에선 헌법 재판관들 신상을 공유해 압박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의회는 국민을 대의하는 곳이기에 문자 폭탄으로 피드백을 주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법리에 따른 판단을 분립해야 하는 사법부까지 공습에 노출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과격한 '참여'가 언론기구 등을 향해 무차별 확산된다면? 현재 한경오 사태를 보면 이미 그런 상황이다.
문자 폭탄의 또 다른 문제는 '문재인 팬덤'이라는 특정 정파가 전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바일 메시지의 익명성은 그것을 '국민의 명령'이라는 보편성으로 호도하고, 특정 정파의 목소리가 여론을 과다 혹은 왜곡 대표하게 만든다. 지난 광장의 경험은 참여의 효능감을 일깨우는 값진 경험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병든 사상에 찌든 '시민 참여'를 낳는 분기가 된 건 아닐까 직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