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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Oct 30. 2017

어떤 마케팅

버벌진트의 페미니즘 마케팅

어제 새로운 EP를 발표한 버벌진트는 한국 힙합의 희귀종이다. 그의 실력이 다른 '올드 래퍼'들 보다 특출 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가 최근의 젠더 이슈에 발을 맞추는 래퍼이기에 그렇다. 지난 한 달 동안에만 세 명의 래퍼가 숨 가쁘게 여성혐오에 관한 논란을 일으켰다(오왼 오바도즈, 송민호, 이하늘). 제리케이 정도를 빼면 젠더 이슈에 귀를 여는 남자 래퍼는 없다. 나는 끝없이 반복되는 논란이 지겨워졌다. 잘잘못이 너무나 명확한 사건들이라 비판하는 데 아무런 지적 동기부여도 얻지 못하고, 아무리 피드백이 투여돼도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되고, 그때마다 판 치는 황당무계한 물타기를 상대하는 데 지력을 허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벌진트는 박근혜 게이트 당시 산이의 '나쁜 년'에 관해 이런 가사를 썼다. "그가 여성인 것을 걸고넘어지는 순간부터 하나도 말 안 되는 거" "산이에겐 미안하지만 상대는 더 해상도 높은 비전으로 까야만 한다는 거" "혐오의 단어는 내뱉고 싶지 않아 나에겐 더 중요한 가치가 있으니까". 공식적 창작을 통해, 동료 래퍼들이 쓰는 혐오 가사를 이만큼 구체적으로 비평하고 반대표를 던진 남자 래퍼는 제리케이와 버벌진트 외엔 없을 것 같다. 버벌진트는 블랙넛이 키디비를 성희롱하는 가사를 발표했을 때도, 어느 팬이 인스타그램으로 그에 관한 의견을 묻자, 안타까움을 밝히며 자신의 지난 가사 역시 반성한다는 답장을 했다. 몇 달 전 발표된 'lazy day'란 곡에선 트위터로 젠더 이슈를 구독한다는 가사를 쓰기도 했다.


버벌진트 역시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가사를 쓴 적이 있다. 15년 전 'Sex Drive pt 2'가 그랬고, 7년 전 '달리자'가 그랬다. 한편 그의 '친 페미니즘' 행보는 그가 음주운전으로 여론에 미운 털이 박힌 이후에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행보가 정략적 처신이라는 의심을 품어볼 만하다. 하지만 말했듯이 한국 힙합 신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남자 래퍼는 희귀종이다. 정략이라 할 지라도, 신의 자정과 공적 가치에 기여할 수 있는 정략이다. 어차피 유명인은 이미지 메이킹을 할 수밖에 없고, 어떤 식으로든 마케팅을 해 돈을 번다. 그렇다면 차라리 버벌진트 같은 마케팅을 하는 래퍼가 더 늘어야 한다. 가령 블랙넛과 스윙스처럼 혐오 콘텐츠로 돈을 버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낫다. 버벌진트는 상업 가요계에 진출한 이후 젊은 여성들에게 귓속말을 거는 노래로 인기를 얻었다. 그는 송민호와 달리 자신의 고객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그들을 우대하는 마케팅을 펴고 있다.


현재 힙합 공연 티켓팅 비율은 여성 관객이 다수다. 일리네어와 AOMG의 관객 중 70%가량이 여성이라고 한다. 한국 힙합은 여성 팬들의 호의에 힘 입어 호황을 누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여성을 멸시하는 가사가 무성하고, 여성 팬들은 음악도 모르면서 래퍼들을 쫓아다니는 'hoe'라고 하대 당한다. 한국 힙합을 즐겨 듣지만, 이 모든 구조화한 여성혐오로 인해 자기 모순의 덫을 밟게 되는 여성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래퍼들에게 기대하는 건 버벌진트와 같은 소박한 '팬서비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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