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C 워너비 Apr 29. 2018

프레임과의 조우

혐오는 지능의 문제인가?

"혐오는 지능의 문제다"라는 말이 떠다니곤 하는데요. 재미있는 건 그 반대 편에서도 "페미는 지능의 문제다" 이죽 댄다는 겁니다. "(헬조선) 탈출은 지능 순 대로"라는 추한 말이 명언처럼 회자된 지도 오래되었지요. 서로가 서로의 지능을 깎아내리는 모양새인데, 적어도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어느 쪽이든 상대의 지능에 관심이 많다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저는 혐오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머리 좋은 사람이라고 혐오를 하지 않는 건 아니죠. 반대로 IQ 낮은 사람들이 혐오를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지능은 자기 의사를 벗어나서 주어지는 조건에 가까운데 저런 말을 들으면 참 억울하겠죠.


저는 혐오는 지능도 아니고 덕성도 아니며 프레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앎이라 믿는 건 실은 프레임일 경우가 많습니다. "친일독재" "친노종북" 네 글자에 무슨 앎이 걸려 있습니까. 저 슬로건 중 하나를 내면화하는 데서 정치적 입장이 갈리는 거죠. "혐오는 사회적 권력관계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여성혐오는 있어도 남성혐오는 없다"는 간단한 논리를 이해하는 것 역시 지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해를 떠나서 인정하고 싶지가 않은 거겠죠. 뒤집어 말하면, 내가 '깨어있는' 것 역시 내 앎 덕분이 아닙니다. 내가 선 삶의 위치와 경로, 계기로 인한 어떤 관점과의 조우 덕분이죠.


관점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만 자의 앎도 쓸모가 없습니다. 오히려 좋은 지능을 내 관점을 정당화하는 데 쓰겠죠. 그렇게 지난 세기의 석학들이 생산한 지식이 현재 사회를 구성하는 여성혐오 프레임 아니겠습니까.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사람들이 올바른 프레임과 만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경로를 조정해줘야 합니다.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절실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혐오가 지능의 문제라면, 시민들이 혐오에 빠지는 걸 막을 수도 없고 혐오에 빠진 시민을 구제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사회를 바꾸기란 요원합니다. 지능이 낮은 이들을 도태시키는 수밖에 없겠죠. 세상에는 지능이 좋은 사람보다 좋지 못한 사람이 많을 텐데 가당한 일일까요. 하지만 좋은 지능은 부모가 물려주는 것일지라도, 좋은 관점은 사회가 선사할 수 있습니다. 혐오가 무엇의 문제인지 정확하게 합의하는 것은 곧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전망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의 눈에 비친 미국 주재 상사원들의 모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