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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Feb 17. 2016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

'GV 멍청한 질문 모음'을 보고

'GV 멍청한 질문 모음'이란 글이 화제다.

(링크 : https://docs.google.com/…/1-ZiMv3-hHVEnmY7kccr…/mobilebasic…)


관객과의 대화, GV에서 돌발한 무모하고 이상한 질문을 모아놓은 글이다. 사례는 다양하다. 감독에게 연출 방법을 바꾸라며 오지랖을 떨고, 영화와 관계없는 일장연설을 늘어놓다가 감정에 복받쳐 퇴장하고, 작가와 배우의 프라이버시를 캐묻고, 영화의 맥을 엉뚱하게 읽고 주장한다. 이런 기행들은 우스꽝스럽고 심하게는 경멸스럽다. 많은 SNS 유저가 저 글을 무한 공유하며 비웃는 건 인지상정이다. 아래 인용하는, 언젠가 듀나가 쓴 칼럼은 사람들의 태도를 대표한다.  


"영화제 GV 질문자들을 위한 가이드를 내놓는다. (...) 우선 잘난 척을 하지 말자. 질문을 하겠다고 해서 마이크를 주면 온갖 까다로운 고유명사를 들먹이며 자기 영화 지식을 장황하게 자랑하다가 이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무리가 있다. 공부를 하자. (...) 최소한의 하한선을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하자. 국제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은 어느 정도 기본 수준은 되는 사람들이다. 이들 앞에서 당신은 쉽게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 기본 교양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 "


"잘난  척하면 망신, 관객과의 대화에서 갖출 예의" - djuna, 엔터미디어


확실히 GV와 영화제에서 '질문 시간'은 궁금한 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 아는 걸 뽐내는 자리일 때가 있다. 그 점을 이렇게 따끔하게 꼬집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서 얘기가 끝난다면 아무래도 미진한 기분이 든다.


누구나 영화를 보면 궁금한 것이 생긴다. 만약 영화를 만든 감독과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싶을 거다. 더구나 그 자리가 많은 청중이 모인 공개 행사라면,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하고 싶다. 이것은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교양을 향한 욕망이다. GV까지 찾아올 정도면 나름대로 영화도 좋아하고 자의식도 있을 텐데 그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보여주겠나. 어쩌면 관객과의 대화는 이런 교양의 욕망을 제도적으로 해소하는 공간이다. 모르긴 해도 질문 시간에 '질문'이 아닌 '허세'를 늘어놓는 똘똘이 스머프들은 그 욕망을 건전하게 표현하는데 서툰 사람일 거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종류의 딜레마는 모든 관객에게 해당된다. 많은 관객은 ‘나쁜 질문’을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 ‘좋은 질문’을 모르기 때문에 발전이 없다. 적어도 내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우선 앎과 배려를 권장하는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GV가 어떤 자리인지, 감독과 평론가와 다른 청중과 '내'가 평등함을 주지하기. 많은 무모한 질문의 무의식을 짚어보면, 전문가의 권위에 대한 치기 어린 도전이거나 소비자 의식에 찌든 하대가 있다. '멍청한 질문'은 교양은 물론 겸손의 문제이기도 하다. 관객의 욕망을 긍정하는 일과 존중을 가르치는 일은 나란히 세울 수 있다.


하나의 나쁜 사례를 들어 교양없음을 꾸짖고 특정한 질문을 금지한다면 그것은 (-)의 연산이다. 어떤 하한선을 긋고 그걸 일탈할 경우 인격적으로 비난한다면 나머지 관객도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듀나의 경고를 빌리자면 "망신" 당하는 게 두려워서, "공부"를 안 한 게 탄로 날 까봐 정작 궁금한 것도 목구멍으로 삼킬 수 있다. 나는 GV에 참석하는데 자격 같은 건 필요 없고, 오히려 질문은 공부를 안 한 사람의 몫이라고 본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합리적으로 욕망을 표현하는 길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나쁜 질문’을 색출하기보다 ‘좋은 질문’을 전파할 때 관객은 (+)의 연산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영화의 장을 더 비옥하게 가꾸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 또한 풍요로운 극장문화 창달의 일환이다. 아래는 2008년 허문영 평론가가 부산일보에 기고한 칼럼이다. 'GV 멍청한 질문 모음'과 함께 이런 사려 깊은 글도 함께 퍼지길 바란다. 제목은 ‘좋은 질문’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젊은 관객들은 좋은 질문을 잘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 창작가들에게 작품 전체의 주제나 특정 장면의 의미를 질문할 때, 우리는 결코 좋은 대답을 기대할 수 없다. (...) 좋은 질문의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무엇’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라고 묻는 것이다. '무엇‘이나 ’왜‘는 작품을 작품 아닌 다른 어떤 무언가로 바꿔치기하려는 해석자의 안간힘에서 나온 질문이다. 그 무언가가 흔히 주제나 혹은 (해석된) 의미이다. 그것에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좁게는 우리가 체험한 초중고의 국어교육, 넓게는 근대 교육제도의 예술 교육 방식과 연관된 것 같다. 그 방식에 따르면 ’밑줄 친 구절이 의미하는 바‘에는 항상 정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좋은 작품일수록 그런 정답은 없다. (...) 그 젊은 관객이 다짜고짜 메시지를 질문할 때, 그는 작품을 그 자체로 수긍하는 태도와 성애의 방법을 잊었거나 익힌 적이 없었을 것이다. 좋은 질문은 요령이 아닌 문화의 문제다.“

링크 :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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