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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Nov 16. 2016

강권력의 수행자

의경은 폭력시위의 피해자가 아니다

한국의 의경 제도는 극악한 재사회화 수단이다. 의경 복무자들은 시위대와 맞서는 '당사자'로 배치돼 진압 명령을 수행한다. 강권력의 우월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폭력 시위'의 피해자로 정체화한다. 의경 전역자들과 대화해 보면 이념에 관계없이 '폭력 시위대'에 혐오감을 토한다. 그 복무 경험은 공권력에 대한 인식을 흐리고 공권력에 권위와 연민이란 모순된 감정이 깃드는 숙주다.


아닌 게 아니라 의경이 시위대에 가한 폭력보다 그 반대에 펄펄 뛰는 사람이 많다. 거리에서 팔뚝질하는 것 보다 닭장차를 타고 뺑이 치는 게 보편적 경험이니까, 곤봉과 방패로 중무장한 의경에 이입하고 시위대의 ‘죽창’에 전율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닐까(그런데 죽창을 들고 시위에 나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감정 이입은, 꼭 의경이 아니라도 고된 군복무 경험을 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동지의식으로 강화되는 것 같다(호모 소셜 공동체). 의경 복무자 가족과 지인까지 합하면 강화의 효과는 더 클 것이다.


공권력이라 함은 그것을 형성하는 제도와 통치 권력, 공권력이 현장에서 작동하게 하는 물적 기반을 아우를 것이다. 의경에 대한 연민은 공권력을 수행하는 의경 ‘집단’과 의경으로 복무하는 ‘자연인 개개인’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후자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건 좋다만 공권력 보다 시위대의 폭력을 손가락질하는 건 확실히 문제다. 공권력은 합법적 폭력이고 어떤 경우에도 사인보다 강하다. 저항하고 견제할망정 동정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어떤 폭력도 필요없이 시위의 취지가 합리적으로 고려되면 좋겠지만, 만약 충돌이 발생한다면 시위대가 아닌 공권력에 절제를 요구해야 하고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가가 부리는 폭력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고 시위대는 국민으로서의 요구를 외치러 나왔다.


까놓고 말하면, 의경으로 복무하는 개인들도 자신이 국가 강권력의 물리적 수행자로 일한다는 사실 정도는 자각할 이유가 있다. 의경으로 일하는 데도 고충과 딜레마가 있을 거라고 이해하지만, 의경은 자원 입대다. "어쩔 수 없이 나라에 끌려간 불쌍한 젊은이" 운운하는 거 이치에 안 맞다. 죄의식을 가지라고 까진 안 하겠다만, 그런 정도 자각은 있어야 상부의 명령이 부당한지 정당한지, 내가 수행하는 명령이 집회의 자유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판단할 거 아닌가. 그래야 제대하고 나서 피해자 의식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비판적 거리감을 회복할 테고.


경찰의 폭력 진압을 비판할 때 마다 발끈하며 대드는 의경 전역자들이 있다. "의경을 부리는 기득권은 놔두고 왜 같은 88만원 세대 젊은이를 비난하느냐." 이런 말 너무 해롭다. 저마다 자기 몫의 책임을 걸머지고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민주적 사회다. 기득권을 향해 책임을 떠넘기고 책임 없는 안전한 자리에만 머무는 건 신민의 태도다. 나랏님 욕만 하고 주인 의식과 책임 의식이 없으면 그게 신민이지 뭐가 신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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