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찬 Apr 11. 2021

부부라는 증표

 어제 새벽녘부터 내리던 비는 오늘 아침까지 이어졌다. 보슬보슬 내리는 빗물이 우산의 둥근면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소리와 우산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웠다. 마치 빗속에 오케스트라를 듣는 듯했다. 흥얼거리며 걷자 어느새 가인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바닥을 바라보자 검은색에 아스팔트가 깔려있었고 그 위에는 삐뚤어짐 하나 없이 직사각형으로 하얀색 선이 건물을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몇 개씩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선에 맞춰 세 대의 자동차가 띄엄띄엄 주차되어있었는데 한 자동차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남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동차에서 시선을 돌려 건물을 바라봤다. 총 이층까지 있는 건물은 세로가 긴 타일로 외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원래는 하얀색이었는지 아니면 관리가 잘되지 않아 누렇게 뜬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타일의 색은 거의 베이지색에 가까웠다. 나는 통유리로 되어있는 건물의 입구를 보다가 그 위에 있는 간판에 글을 읽어보았다.

 “구민과 함께하는 새로운 대덕”

 말에 뜻은 이해하지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주차장에서 서성이던 나는 주차장 안으로 진입하는 자동차를 피해 건물의 옆으로 갔다. '뭐야 다 젖을 뻔했잖아 도대체가 도로 공사를 어떻게 하길래' 그곳 바닥에는 작게 물웅덩이가 있었는데 자칫 그 웅덩이에 발을 담글 뻔했다. 나는 한국 도로공사를 질책하며 스마트폰에 전원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9시 52분 아직 약속시간이 8분이나 남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가만히 웅덩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리를 들어 운동화의 밑창이 물에 닿을락 말락 주의를 기울이며 최대한 가까이에 밀착시켰다. 어느 정도 닿았다 싶었을 때 발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자 웅덩이에 작은 파문이 일며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비바람이 부는 어느 날 바닷가에서 파도가 치는 듯했다. 그렇게 몇 번 파도 놀이를 하고 있는데 웅덩이에 일그러진 하얀색의 무언가가 비 추웠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녀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뭐해 물장난 치는 거야? 꼭 어린애 같다”

 그녀의 말에 나도 웃었다. 그녀는 노란색의 우산을 들고 하얀색의 라운드 넥 롱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신발의 굽은 얕았고 길고 가느다란 발가락이 드러나는 검은색의 샌들을 신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한쪽으로 핀을 꼽아 밀어 넣었는데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한쪽 어깨로 쏠려 내려와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순백의 청초한 국화꽃을 보는 듯했다. 검은색 일색으로 치장한 나와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물 웅덩이를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났네”

 “나도 어렸을 때는 그런 장난 많이 쳤는데 일부로 발을 담그기도 하고 그 위에서 뛰기도 하고 그렇게 옷이고 몸이고 홀딱 젖어서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어찌나 뭐라고 하던지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모르겠어”

 그녀가 우산의 손잡이를 기도하듯이 잡고 어렸을 때 둥근 막대 끝에 날개가 달린 장난감을 다루듯 두 손을 비비며 우산을 돌렸다. 떨어지던 빗물이 회전하는 우산에 맞고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우산을 앞으로 기울이며 날아오는 물방울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마와 광대뼈에 맞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보다 오히려 살짝 기울였다고 생각한 우산이 나의 머리를 벗어나면서 빗물을 맞아야 했다. 

 “어렸을 때 재미를 아직도 자알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머리의 묻은 빗물을 털어내며 말했다. 그녀가 나를 짓궂게 쳐다보며 웃는다. “들어갈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주민센터가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일곱 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다. 나는 번호표를 뽑고 그녀와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여섯 번째 인가 일곱 명이라 여덟 번째 일 줄 알았는데' 마침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몇 번의 '띵동' 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우리의 차례가 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대략 사십 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여자 직원이 말했다. 

 “혼인 신고하려고 하는데요”

 “저쪽 원형 테이블에 가면 혼인 신고서 용지가 있어요. 거기 보면 서류 작성 샘플 있으니까 그거 보면서 작성해서 다시 여기로 와주세요”

 직원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말처럼 둥근 원형의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의 윗면은 유리로 되어있었고 그 밑으로 나무로 된 칸막이가 있었다. 각각의 칸막이에는 각기 다른 서류들이 즐비해 있었고 윗부분에 유리에는 서류 작성 샘플이 붙어있었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혼인신고서 용지를 찾았고 작성요령 샘플을 참고하여 빈칸을 채워나갔다. 우리는 혹시라도 틀린 곳은 없는지 몇 번이고 샘플과 비교해 보았고 필요한 모든 칸을 채우고 직원에게로 갔다. 

 “다 작성하셨어요?”

 “네 여기 있습니다.”

 나는 혼인신고서를 직원에게 내밀며 말했다. 직원은 혼인신고서를 받아 들고 이어서 말을 했다.

 “신분증도 주세요”

 나는 낡고 해진 갈색의 무늬 하나 없는 지갑을 꺼냈다. 지갑을 펼치고 카드 포켓에서 운전면허증을 꺼냈다. 나는 운전면허증을 직원에게 건넸고, 직원은 운전면허증의 사진과 나의 얼굴을 확인한 후 혼인신고서를 꼼꼼히 확인을 했다. 몇 번을 재차 확인하던 직원은 운전면허증을 돌려주며 가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처리기간은 일주일 정도 소요가 되며 연락은 문자로 올 거라고 했다.

 “수고하세요”

 가인과 나는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지갑 진짜 오래된 거 같은데? 아버님이 주신 거야?”

 지갑에 운전면허증을 넣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아니... 아버지가 주신건 아니고 한 십 년은 쓴 거 같네”

 나는 펼쳐진 지갑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지갑 안에는 만 원짜리 네 장과 오천 원짜리 한 장 천 원짜리 세장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비워있는 포켓 주머니가 민망하게도 체크카드와 운전면허증만 꽂혀있었다.

 “에 엑 그렇게나 오래 썼어? 굉장히 귀중한가 봐”

 가인이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말했다. 

 “귀중하다? 음... 그냥 사촌 형이 들고 다니던 지갑이었어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갈색의 중후 해 보이는 이 지갑이, 그것을 들고 다니는 사촌 형이 너무 멋있게 보이더라고 그래서 사촌 형이 버리려던 지갑을 내가 주워왔어 그 후로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고 다녔었는데 꼭 이 지갑을 들고 있으면 내가 어른이 된 거 같았거든” 나는 지갑을 접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 지갑을 받고 한 한 달간은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다녔던 것 같아 뭐 직접적으로 자랑한 거는 아니고 ‘지갑을 손에 들고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나의 지갑을 보고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라는 식으로 말이야 아마 나만의 착각이었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그때는 왜 이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원래 그 나이 때가 다 그렇잖아 빨리 어른이 돼서 입고 싶은 옷도 마음대로 입고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고 다 그런 것 같아 음... 자기는 공부하기 싫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 아니야?”

 가인이 눈을 좁히고 고개를 살짝 틀며 말했다. 

 “하하하 그럴지도 이거 낡고 볼품없는 지갑 때문에 고등학교 성적표가 들킨 것 같네”

 그녀와 나는 마주 보며 웃었다. 나는 지갑을 바지 뒷주머니 넣고 불록 솟아오른 그 부분을 두어 번 두들기고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비가 그쳤는지 하늘은 푸른색을 띠고 하얀색의 구름이 몽실몽실 뭉쳐 바다를 항해하는 커다란 배가 되어 이름 모를 섬을 찾아 떠나듯 천천히 흘러갔다. 구름이 움직이자 수줍게 드러난 태양은 그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그녀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앞날을 밝혀주는 듯했다.

이전 04화 망설였던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