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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찬 Apr 11. 2021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

 혼인 신고를 마치고 며칠이 지났다. 어느덧 온 지역을 태양 빛으로 덮어 푹푹 찌던 무더위가 물러가고 북쪽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방울을 스치며 지나갔다. 길거리에 간간이 떨어진 노란빛에 잎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한적한 공원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가인과 나는 정좌에 앉아 공원을 노랗게 물들인 은행나무를 보고 있었다. 

 “부모님은 뭐라셔?”

 내가 말했다.

 “상의도 없이 혼인신고했다고 뭐라고 하시지... 뭐”

 “애는?”

 내가 말하자 그녀가 배를 쓰다듬었다.

 “엄마는 축하 한 대 아빠는 시큰둥하셨는데 내심 기대하는 눈치이기도 하시고 워낙에 두 분 다 애들을 좋아하시니까 자기는 어땠어?”

 그녀의 미간이 좁아지고 입이 살짝 벌어진 채 말했다. 

 “아버지는 ‘결혼해야지’ 딱 한마디 하셨고 엄마는 음... 그냥 잘됐다고 하셨어”

 나의 말에 그녀의 커다란 눈이 작아졌다. 

 “아닌 거 같은데? 진짜로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녀가 눈의 크기를 더욱더 좁히며 옆으로 흘겨보듯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엄마랑 좀 다퉜어”

 그녀가 나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나는 한 손을 올려 그녀의 어깨를 잡고 내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어느 정도 이리될 거라는 것 예상했잖아 나도 그렇고 자기도 그렇고 앞으로 잘 사는 모습 보여주면 돼 걱정하지 마 그리고 이미 혼인신고까지 했는데 어쩌시겠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가인의 얼굴을 들어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입을 떼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가에 묻어있는 물을 닦아주었다. 그녀가 살며시 나의 손을 잡는다. 그녀의 손길이 무척이나 따뜻했다. 

 “뭐가 됐든 자기가 먼저 어머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아무리 그래도 당신의 부모님이시고 어머님이시잖아 자기 말처럼 앞으로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자”

 “음...”

 나는 침음 성을 내뱉었다. 그녀가 나의 손을 가슴으로 끌어당기고 기도하듯 양손을 포개었다.

 “자기가 그러면 내가 어머님, 아버님 뵐 면목이 없어 이렇게 부탁할게 먼저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하 아... 알았어”

 한숨을 쉬며 말하는 나를 향해 그녀가 웃어 보였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그녀의 입술이 나의 볼에 맞닿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비 오는 날 약속했듯 가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은행나무를 바라봤다.     


 나는 그녀의 말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비록 자존심 때문에 며칠이 지나서였지만 나도 이제 한 아이의 부모가 될 사람인데 나의 부모님께 자존심을 부려봐야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란 참 신기했다. 어렸을 때 몰랐던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기도 하고, 알고 있었던 것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어버리기도, 때로는 옅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 며칠 사이 어머니의 화가 어느 정도 누그러져 있었고 –아마도 아버지와 기나긴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그때 화내서 죄송해요’라는 나의 말을 받아주셨다.

 “그래 너도 이제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될 사람이니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야 돼 알겠니?”

 “넵 알겠습니다!”

 나는 양반다리에 올려놓은 손을 주먹으로 쥐고 팔을 쭉 폈다. 그와 동시에 허리를  세우고 목에 힘을 주며 외쳤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귀를 막으시며 ‘집 무너지겠다’라며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조만간 가인이를 데려오겠다는 것과 상견례도 준비해야 한다는 말들을 했고 부모님은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셨다. “결혼식은?”이라는 말에 나의 대답을 듣고 어머니는 또 한 번 머리를 부여잡으셨다. 

 “도대체가 너희는 왜 너네들 마음대로 모든 일을 하려고 하니? 너희들은 부모 생각은 안 하는 거니?”

 “조금 늦출 뿐이에요.”

 나는 말을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부모님께 결혼식을 미루겠다고 했다. 이미 혼인신고도 했는데 흠이 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도대체가...”

 어머니가 말을 잇지 못했다. 일전에 가인과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아기를 낳으면 돈이 많이 들어갈 것이고 지금의 내 월급으로는 힘들 수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장사를 해야 한다 것을 말이다. ‘바로 결혼식을 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지금 내 월급으로는 우리 세 식구 경제적으로 힘들 수도 있어 어차피 장사도 해볼 생각이었는데 미리 앞당겨서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1년 아니 몇 달만 참아줘 그러고 우리 결혼식 하자’ 이제는 모든 것을 믿는다는 듯 그녀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두야 도대체가 저것은 누굴 닮아서 저러는 건지... 너네 마음대로 해! 그 대신 절대 부모 도움받을 생각하지 마!”

 어머니는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나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어머니의 작은 몸을 살포시 안아줬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으그”

 나는 몸을 떼고 어머니를 바라봤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 표정이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나저나 네 말처럼 몇 달있다가 결혼식 한다고 했는데 가인이 배 금방 불러올 텐데 결혼식 할 수 있겠니?”

 어머니의 말에 갑자기 멍해졌다. 세 식구 먹고 살 걱정에 이미 세상에 우리의 아이가 나왔다고 착각을 했다. 분명 가인이도 알고 있었을 텐데...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잠시만요’ 라며 밖으로 나갔다. 

 “이 녀석아! 아직 말 안 끝났는데 어디가!...”

 어머니가 어디 가냐며 외쳤다. 하지만 이미 나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상태였고 뒤에서는 계속 뭐라고 외치는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고 가인이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님한테 죄송하다고 했어?”

 가인은 뭐가 그리 급한지 어머니에게 사과를 했냐며 물었다. 아마도 바로 사과를 하지 않고 며칠씩 내가 미뤘던 것이 걱정이 됐나 보다. 

 “응... 오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

 “진짜? 너무 잘했다. 자기야”

 그녀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자기야 내가 결혼식 미루고 장사하자고 했잖아...”

 나는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믿어 나 그날 후로 자기 믿어 배 부르기 전에 돈 많이 벌면 그때 결혼 식해도 되고 더 오래 걸리면 그때 가서 하면 돼 결혼식 안 했다고 우리 부부 아닌 거 아니잖아 안. 그. 래. 요 여. 보?”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알고 있었구나 그리고 나를 신경 써줬던 거구나 이런 것이 부부인가 여보라?' 듣기 좋은 소리다. 

 “고마워요 여. 보”

 나는 그녀와 긴 대화를 마치고 서로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제는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게 했던 어느 날이었다.     

    

 “다녀왔어? 오늘은 어땠어?”

 가인이 현관문에서 앞치마 차림으로 나를 맞아주며 말했다. 

 “응 오늘도 두 대 팔았어 이대로만 가면 금방 부자 되겠어 하하하”

 나는 팔을 크게 휘저으며 말했다.

 “으이그 설레발은 어서 씻고 와서 밥 먹어”

 “어허 진짜라니까”

 나는 사뭇 진지하게 말을 했다. 

 “네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마주 웃어 보이고 욕실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몇 분간의 샤워를 마치고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은 신경 쓰지도 않고 머리에 수건만 얹은 채 밖으로 나왔다. 

 “어어 물 떨어져!”

 그녀가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수건으로 머리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려 발을 얹으고 몇 번의 동작으로 바닥의 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나는 마치 ‘이러면 돼지’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 어서 와 밥을 먹으라고 했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하얗고 매끈한 도자기 그릇이 그것보다 더 하얗고 촉촉한 밥알을 수북이 담고 있었고 그것은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내며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이런 것이 결혼생활이구나 내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을 하셨기에 이렇게 갓 지은 밥을 먹어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부분 밥통에 오래된 밥을 먹거나 어쩔 때는 찬밥을 먹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런 것이 귀찮고 싫증나 밥을 굶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밥 한수저를 뜨고 입안에 넣었다. 

 “호 허허 호호”

 멋도 모르고 집어넣은 밥알이 너무 뜨거웠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었다. 나의 표정이 어떨지 안 봐도 상상이 갔다. 눈에서는 눈물이 맺혀있고 코는 옆으로 사정없이 넓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입은 동그랗게 말아 좁혀줬다 넓어졌다를 반복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식은 밥알을 꿀꺽 삼키고 밑반찬 몇 개를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오늘의 메인 음식인 김치찌개를 한수저를 떠 보았다.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입 크기의 김치와 한 접에 고기를 수저 위에 올려 주웠다. 나는 지체 없이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쉰 김치 냄새와 매운 향이 코를 자극 해 입속에 넣기도 전에 군침이 돌았다. 나는 얼른 입안에 넣었다. 역시나 쉰 맛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김치는 아삭한 느낌보다는 부드러웠고 한입 베어 물자 쉰 맛이 더욱 강하게 입안을 감쌌다. 고기를 깨물자 육즙이 그대로 터져 나왔는데 쉰 김치와 너무 잘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청양고추에 매운맛이 나의 식욕을 자극했다. 나는 사우나를 하는 사람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말도 없이 허겁지겁 밥이며 찌개를 먹었다. 나는 정확히 세 공기에 밥을 먹어치우고 수저를 내려 났다. 

 “그렇게 맛있어?”

 “어 완전히 맛있어 최고야!”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수건으로 얼굴에 난 땀을 훔치자 그녀가 물 한잔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물맛도 꿀맛이었다. 

 “그나저나 입덧은 어때? 아직도 심해?”

 “응.. 응”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배고프겠다. 당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먹은 것 같아 미안하네”

 “괜찮아 아까 조금 먹었어 그리고 자기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걸 뭘”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며칠 전 나도 입덧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것은 마치 술을 열댓 병은 마신 듯 미친 듯이 구역질이 나오고 몸살이 난 것처럼 사시나무 떨듯 했었다. 음식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오는 통에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어쨌든 굉장히 괴로웠었다. 그것을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경험하며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모른다. 그것을 만삭인 지금까지 겪고 있는 그녀를 보며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조금만 참자 가인아 한 달만, 한 달만 참자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디 우리 오공이는 잘 크고 있나?” 나는 남산만 해진 그녀의 배에 귀를 갖다 대며 말했다. “어 뭐라고? 엄마 아빠가 빨리 보고 싶다고? 그래그래 아빠도 우리 오공이가 빨리 보고 싶다 어이쿠”

 무언가가 그녀의 배에서 톡 튀어나왔다. 나는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허 그 녀석 발차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요즘 자주 발로 차더라고”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장인어른, 장모님이 늦으시네?”

 “응... 손님이 많은가 봐”

 “많이 힘드시겠다.”

 “그래도 얼마 안 있어 외손자 보게 된다고 얼마나 기대하시는데 전보다 더 활기차 보이셔서 보는 내가 기분이 좋더라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가인이가 엄마, 아빠랑 함께 있어서 다행이야 가게를 준비하고 수중에 남은 돈이 없어 본가로 들어가려 했지만 아무래도 유약한 성격의 가인이 힘들어할까 봐 나는 장인어른, 장모님이 허락한다면 처가살이를 하기로 했었다. 다행히 처가에서 흔쾌히 허락하였고 나는 지금 처가살이를 하고 있다. 

 갑자기 그녀가 일어났다. 아무래도 장시간에 의자에 앉아있어 불편했나 보다 나는 그녀를 부축하며 그녀가 결혼하기 전부터 사용하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그녀가 사용하던 싱글 사이즈 침대를 처분하고 퀸사이즈 침대로 대처했으며, 장롱 하나와 컴퓨터를 놓아둔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신혼 방치고는 초라했지만, 그녀나 나나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녀의 목에 팔을 받치고 뒤로 살포시 눕혀줬다. 그리고 나도 그녀의 옆에 눕고 우리는 살며시 눈을 감으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한 달이 되기 일주일 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에 꿈속을 헤매고 있는 나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

 그것은 신음소리 같기도 했고 누군가 부르는 소리 같기도 했다. 

 “여.. 여.. 보”

 아까보다 좀 더 정확하게 들렸다. 그것은 가인이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며 그녀를 살폈다. 그녀가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진... 진.. 통이 오.. 나봐”

 그녀가 힘겹게 말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자동차 키와 스마트폰만 챙긴 후 밖으로 나갔다. 

 “조금만 기다려 차 가져올게”

 나는 슬리퍼만 신고 밖으로 나갔다. 이런 젠장 이런 시기에 차를 멀리다 주차해놔서 나는 다리의 온 힘을 쥐어짜며 나의 자동차가 주차돼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색 바랜 하얀색에 여기저기 긁힌 자동차의 문에 차키를 꼽고 돌렸다. 자동차 문을 잠그고 있는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나고 나는 자동차 문을 힘차게 열었다. 그리고 시동을 걸기 위해 키를 꼽으려 했지만 차 안이 어둡고 마음이 급했던지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비추며 고개를 숙여 키를 꼽고 돌렸다. ‘드드드드트트트’ 시동이 바로 걸리지 않았다. 이런 똥차 나는 다시 한번 키를 돌렸다. ‘드드드트트 부릉’ 다행히 두 번째에는 시동이 걸렸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자마자 엑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좁은 골목이었지만 나는 마치 카레이서처럼 운전을 하며 집 앞으로 몰고 갔다. 처갓집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자동차 라이트에 두 인영이 비췄다. 그녀가 장모님과 함께 나와 있었다. 차를 세우자 그녀와 장모님이 뒷좌석에 탔다. 나는 비상 깜빡이를 켜고 자동차의 속도를 냈다. 다행히 새벽이라 자동차가 거의 없었다는 것과 처갓집과 산부인과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젊은 여자 간호사가 물었다. 

 “산모가 진통이 와서요”

 나는 재빠르게 말했다.

 “성함이..”

 “김가인이요”

 나는 간호사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말했다. 간호사는 몇 가지 더 확인 후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간호사는 작은방으로 안내해줬다. 그곳에는 일인용 침대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간호사는 가인을 침대에 눕혀주고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짧은 기다림은 나에게 억겁의 시간과 같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때 담당 의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김가인 산모 그럼 원래 하기로 했던 제왕절개 수술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니요 저 자연분만할게요”

 가인이 힘겹게 말했다. 

 “산모님 허리 때문에 자연분만은 힘들어요”

 “그... 래도 해볼게요”

 의사는 가만히 가인을 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번 시도는 해보도록 하죠. 산모님 몸에 무리가 간다고 판단되면 바로 제왕절개 수술로 하겠습니다.”

 “네...”

 의사는 그녀의 뜻대로 자연분만을 시도하기로 했다. 나는 그녀의 뜻에 따라 분만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분만실 앞을 서성였고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기다림의 지쳐가던 나에게 간호사가 찾아왔고 간호사는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겠다고 했다. 결국 가인은 12시간의 사투 끝에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우리의 첫째 아들 우진이를 낳게 되었다. 

 “아버님이 씻기실래요?”

 간호사가 하얀 보자기에 싼 새로운 생명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간호사가 두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좁고 더운 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에는 나의 배 위치까지 올려진 욕조에 따뜻한 물이 담겨있었다. 간호사가 보자기를 벗기고 지금 갓 태어난 여리고 연약한 생명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조심히 받아 들고 욕조에 살며시 내렸다. 이 작은 아이가 내 아들이구나 나는 그렇게 우주에 그 어떤 별 보다 신비롭고,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순결한 새 생명의 탄생을 맞이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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