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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찬 Apr 11. 2021

아이의 미소

 가인은 제왕절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일주일을 입원했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고 그녀와 나 그리고 아들 우진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식구 한 명이 늘었을 뿐인데 처갓집은 전 보다 활기찼고 생명력이 넘쳐흘렀다. 살이 빠져 초췌하고 가엾게 보이던 가인은 어느덧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던 얼굴은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더욱더 성숙미를 내뿜었다. 

 “우르르 깍꿍! 아빠 해봐 아빠”

 나는 입 모양을 문어의 입처럼 만들었다가 쫙 벌리며 말했다. 

 “자기야 이제 태어난 아이한테 ‘아빠’라니 우진아 아빠 참 바보 같다 그지?”

 “에엑 바보라니! 한 가정의 가장한테 어디 그런 망발을 그리고 우리 우진이는 분명 이 아빠를 닮아서 참 똑똑할 거야 그지 우진아”

 나는 우진이를 안아 들며 말했다. 

 “뭐야! 그럼 나 닮으면 안 똑똑하다는 소리야!”

  그녀가 눈을 흘겨보며 말했다. 

 “어라 말이 그렇게 되나? 하하하”

 “어어어 아니라고 안 하네 진심으로 말한 거였어!”

 그녀가 양손을 허리에 대고 말했다. 나는 한 팔에 우진이를 안고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하하하”

 “아악 하지 마 하지 마”

 그녀는 나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나의 손에서 벗어나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가인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자기야 그런데 가게 안 나가도 돼?”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우진이를 흔들던 몸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멈췄던 순간이 찰나의 시간이라 그녀가 보지 못한 듯했다. 나는 우진이를 몇 번 흔들어주다가 그녀에게 맡기고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나 됐네 아이고 우리 아들이랑 놀다 보니까 시간 가는 줄을 몰랐네 하하하 자기야 나 이제 나가볼게”

 나는 자동차 키를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드드드드트트트트 부르르릉’ 이제 이분도 가실 때가 됐네 자동차 10년이 넘으며 충분히 고령이다. 예의를 지켜주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브레이크를 떼고 엑셀레이터를 부드럽게 밟았다. 질질 끄는 시동소리와 달리 엔진이 부드럽게 회전하며 전진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차도로로 진입하자마자 붉은빛에 눈을 부라리는 신호등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일요일임에도 차들이 많네 아 지겹다. 어느덧 신호등은 녹색불로 바뀌었고 정차해있던 차들이 하나 둘 이동하기 시작했다. 브레이크를 떼고 엑셀레이터를 부드럽게 밟았다.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20분가량 운전을 하다 보니 롯데 백화점이 보였다. 전에는 백화점 근처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도 없었는데 요 근래 새롭게 늘어나는 백화점으로 인해 사람 수가 많이 줄어있었다. 결혼하기 전 그녀와 자주 방문을 했던 곳인데 어느덧 추억으로 만 남은 장소가 돼버렸다. 나는 롯데백화점의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으며 1차선으로 도로로 좁혀지는 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5분 정도 안으로 들어가자 가게들이 줄어들고 오층의 원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원룸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차를 세웠다. 이곳의 1층이 내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핸드폰 가게이다. 나는 통유리에 덕지덕지 스마트폰 포스터가 붙어있는 우측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형 오셨어요”

 아내의 사촌동생인 준성이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어 그래 별일 없었고?”

 “아! 오늘 갤럭시 s 한 대 팔았어요!”

 준성이 계약서를 들이밀며 말했다. 나는 계약서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 이제는 형이 없어도 장사도 할 줄 알고 가게 너한테 넘겨도 되겠다.”

 “에이 아직 멀었어요 헤헤”

 준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근데 준성아 신분증 복사는?”

 “아 신분증이요? 손님이 깜빡하고 놓고 왔다고 금방 갖다 준데요. 집이 근처라니까 지금 쯤 오고 있겠네요.”

 준성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래? 집이 근처라고? 계약서 주소는 여기가 아닌데?”

 “아 그거 아직 전입신고를 못했다고 하던데요.”

 내가 하는 말마다 준성이 바로바로 대답했다. 뭔가 찝찝했지만 준성이 처음으로 계약을 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준성은 가인이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내가 가게를 돌보기가 힘들어 잠시 고용할 목적으로 들여었는데 몇 번 일을 하더니 ‘형 저 여기서 일하게 해 주세요’라고 하여 고용하게 됐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준성이 고개를 숙이고 가게 안을 서성였다.  

 “준성아 아무래도 그 손님 안 오려나보다. 녀석 처음으로 계약했는데 너무 실망하지 말고 원래 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내가 말을 하자 준성이 멈추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형... 죄송해요...”

 “뭘 죄송해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다음에 잘 팔면 돼지”

 나는 준성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금방 온다는 소리에 핸드폰을 그 사람한테 줬어요. 전화번호도 남겨놓고 가고 사람이 선해 보이길래...”

 “뭐! 핸드폰을 줬다고? 그 전화번호 줘봐!”

 나의 말에 준성이 쪽지를 내게 넘겼다. 나는 떨리는 손에 힘을 주고 쪽지에 적힌 번호를 폰에 입력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

 “시발 없는 번호란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준성은 고개를 숙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죄송해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나의 미간이 좁혀지고 눈썹이 올라갔다. 나는 가만히 그를 노려 봤다. 벌써 두 번째다. 전에는 부모 몰래 스마트폰이 쓰고 싶었던 학생이 학생증을 들이밀자 그것을 받고 스마트폰 개통을 해주더니 –지금과 달리 그 시절에는 신분증이 좀 늦게 들어와도 개통이 됐다- 결국에 학생은 몰래 스마트폰을 개통한 사실이 들통났고 그 학생의 아버지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 전가시켰다. ‘미성년자에게 부모 동의 없이 스마트폰을 개통해주는 것 사기 아닙니까? 나는 내 아들내미가 스마트폰 개통하는 거에 대해 동의한 적 없으니까 당신이 알아서 찜쩌먹던 알아서 하쇼’ 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인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는가 그렇게 나는 스마트폰을 회수하고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더군다나 밀린 요금까지... 다시 학생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걸 내가 왜 내! 당신이 알아서 하라니까! 한 번만 더 전화하면 경찰에 신고할 테니 그런 줄 알아!’라며 끊는 통에 나는 요금까지 물어줘야 했다. 나는 준성에게 다가갔다. 그의 양팔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야 인마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형도 처음에는 실수 많이 했어 괜찮아 괜찮아 사내 녀석이 이런 일로 눈물 흘리는 거 아냐 뚝”

 나는 준성을 안아주며 말했다. 나는 준성의 등을 토닥이며 그를 달랬다. 하지만 굳어있던 표정이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준성이 진정이 되자 나는 그를 부드럽게 밀쳤다. 

 “준성아 오늘은 손님 받지 말고 이따가 퇴근 시간 되면 알아서 퇴근해 형이 오늘 약속이 있었는데 잊고 있었다.”

 “네... 형”

 준성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 그를 뒤로한 채 손을 흔들며 가게에서 나왔다. 시발 되는 일이 없구나 또 카드론이라도 받아야 하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빚 한번 내 본적 없던 나는 어느새 대출이라는 달콤하고 위험한 것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금방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처음 한두 달 잘되던 가게는 어느새 사람의 발길이 끊겼고 준성의 실수로 부족한 돈을 메꾸기 위해 카드론에 손을 되기 시작했다. 이자가 비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장 돈이 필요했고 카드론은 나에게 너무 유혹적이었고 그것에 나는 매료되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들고 있는 세장의 카드 중 마지막 카드까지 카드론을 신청했다.      

 “나 다녀왔어!”

 나는 큰 소리로 말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쉿 쉿 우진이 깨겠다. 이제 막 잠들기 시작했어”

 “어 그랬어”

 나는 조용히 속삭이듯 말하는 가인을 따라 했다. 

 “오늘 일찍 왔네”

 “응... 일요일이라 그런가 손님이 없네 조금 피곤해서 준성이 한테 맡겨놓고 일찍 왔어”

 나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가게를 비우셔도 되는 거예요? 이사. 장. 님?”

 “흠흠 직원이 워낙에 유능해서요 사. 모. 님”

 나는 그녀의 말투를 따라 하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자기야 밥 먹어야지?”

 “아니야 괜찮아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 식욕도 없네 나 씻고 좀 쉴게”

 나는 손사래를 치며 욕실로 향했다. 

 “어쩐 일이지 평소 밥이라면 끔뻑 죽는 양반이”

 그녀의 중얼거림이 뒤에서 들려왔다. 욕실로 들아 가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세면대에 물을 틀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녀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거지”

 처음 시작한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계속 이어졌고 머뭇거렸던 마음과는 달리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날 후로 나는 가게를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녀에게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거짓을 늘어났고 그녀는 대부분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하릴없이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었다. 

 “자기야 요즘 무슨 걱정 있어?”

 “아니 왜?”

 나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요즘 가게도 잘 안 나가는 것 같고 잘 웃지도 않고 해서”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

 나는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거의 집에만 있는데 뭐가 피곤하다고 그래!”

 그녀가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갑자기 그녀의 말투에 화가 났다. 

 “뭐야! 말이면 단 줄 알아? 가게 생각하랴 아기 보랴 머리가 터질 거 같은데 도대체 뭐가 불만이어서 이러는데!”

 나는 그녀에게 소리쳤다. 

 “하아... 가게 생각하는 양반이 맨날 집에서 빈둥거리고 TV만 보면서 당신이 아기를 본다고? 어이없다 정말”

 “김가인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남자가 하는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살림이나 똑바로... 해!”

 급기야 하지 말아야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뒤늦게 후회해보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아 너 참 잘났다. 그래서 대출까지 손 됐냐? 너 내가 왜 산후조리원 안 갔는 줄 알아? 너 힘들까 봐 너 부담될까 봐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안 갔어 그건 알고 있었니?”

 몰랐다. ‘괜찮아 엄마도 있고 집에서 산후조리해도 돼 걱정하지 마 나 아직 젊은 걸 뭐’라고 말했던 그녀였다. 그녀가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에이 씨”

 나는 울고 있는 그녀를 뒤로 한 채 밖으로 나갔다. 막상 밖을 나왔지만 갈 데가 없다. 또한 만날 사람도 없다. 지금 시간에 친구들은 모두 일을 하고 있다. 하아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나는 정처 없이 거리를 거닐었다. ‘터벅터벅’ 다리에 힘이 없다. 팔에도 힘이 없다. 자꾸만 고개가 숙여졌다. 마치 뼈가 녹아 없어진 것처럼 몸이 흐느적거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끼이~익'

 “야 이 새끼야! 똑바로 보고 걸어!”

 나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검은색의 새단 한대가 나의 앞을 막고 있었고 중년의 남자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그를 무시한 채 그의 차를 비껴가며 걸었다. 

 “아니 저 새끼가 사람이 말하는 데 씹어 야 이 새끼야 너 거기 서봐!”

 “오빠 그만해 우리 그냥 가자”

 아무래도 중년의 남성이 차에서 내리려고 했나 보다. 그것을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말렸고 나는 뒤에서 뭐라고 지껄이던 계속 걸었다. 뒤에서 ‘부아~앙’이란 소리가 들렸다. 

 “양아치 같은 새끼 양아치 새끼 양아치 새끼 시발 나는 양아치 새끼다!”

 나는 중얼거리다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계속 걷다가 어느 한 장소에서 멈췄다. 어두운 남색의 철로 된 대문 여기저기 칠이 벗겨져 붉은 녹이 곳곳에 나 있고 ‘페인트 칠 해야 하는데’ 장인어른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 대문 이제는 익숙해져 눈을 감아도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 대문 앞에 나는 서 있었다. 

 '끼익' 

 경첩에도 녹이 슬었는지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용히 대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울고 있던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방문을 슬며시 열었다. 침대 위에는 우진이가 아직도 자고 있었고 가인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아직도 울고 있는 건가 그녀의 모습이 상처 입고 새장에 갇힌 작은 새처럼 보였다. 집이라는 새장에 갇혀서... 돌이켜보면 우진이를 낳고 그녀는 밖에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 온갖 집안일에 살림을 도맡아 하며 우진이를 돌봤다. 

 그리고 나를 항상 걱정하고 나를 항상 신경 쓰고 나를 항상 위해주고 나만을 바라봤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꺄르륵”

 그녀가 고개를 들어 우진이를 바라본다. 나도 우진이를 바라봤다. 우진이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고 입이 크게 벌어졌다. 우진이의 웃음은 한치의 사심 없고 순수했으며,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값지고 귀중했으며, 그 어떤 차가운 기운도 몰아내는 따뜻함이 있었으며, 아무리 매정한 사람이라도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주르륵’ 어느새 나의 눈에서 한줄기의 물이 뺨을 타고 내려왔다. 

 “흑흑 우진아 미안해 흑흑 가인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해”

 그날 우리 세 식구는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가인의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우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고 나와 가인의 입도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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