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찬 Apr 11. 2021

몸은 멀어지고 마음은 가까워지고

 나는 칠 개월 만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한 가게를 정리하고 폐업 신청을 했다. 가게를 정리하며 우리에게 남은 것은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대출로 인한 빚뿐이었다. 그날 후로 나는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핸드폰 가게에 취직하려 했지만 고정적이지 않은 수입으로는 힘들거라 판단하고 그 생각을 접어버렸다. 다시 취직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직자리를 검색하면 검색할수록 ‘나는 능력 없는 가장이구나’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게 취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에게 한 통에 전화가 왔다.

 “아빠 아시는 분이 울산에 있는데 너 거기 가서 일해라 돈도 많이 준다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고 거기서 일하다가 자리 잡히면 식구들이랑 같이 살면 되고 어떠냐? 해볼 생각 있어?”

 아버지의 말에 가인이와 상의를 해본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 나는 가인에게 술을 권했고 그녀와 술 한잔을 기울이며 아버지와 통화 한 내용에 대해 말했다. 

 “안돼 절대 안 돼”

 “가인아 나도 식구들과 떨어진다는 것이 너무 슬퍼 하지만 현실도 직시해야지 자기도 알다시피 대전에는 취직자리도 많지 않고 월급도 적어 더군다나 우리 하루빨리 빚 갚아야지 조금만 참아줘 내가 진짜 열심히 일해서 보답할게...”

 긴 시간 그녀와 술잔을 기울이며 설득 한 끝에 그녀는 허락했다.     

 

 “필요한 거 다 챙긴 거야?”

 “옷가지 몇 개 만있으면 돼 어차피 기숙사 생활하니까 거기에 다 있다고 하더라고”

 “도착하면 전화하고 하루 한 번씩 꼭 전화하고”

 “그래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나 다녀올게 우진아 아빠 다녀올게”

 나는 가인의 입에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우진이가 나를 향해 팔을 벌리며 발버둥을 쳤다. 나는 웃으며 우진이 볼에 입을 맞추고 우진이와 가인이를 한번 껴안았다. 얼마간의 포옹을 마치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이미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자동차를 타고 멀고도 먼 거리를 내 달렸다. 마치 통나무배에 의지하며 저 넓고 푸르른 바다를 항해하는 아이처럼 설렘과 두려움을 안은 채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건네받은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 상자 덕자 되시는 분에 아들 이철호라고 합니다.”

 “상더기 아들이 가 도착했나? 잘 왔데이 오늘은 늦었으니까 거 아무데서나 자고 아재가 주소 보내 놓을 테니까 내일 그리로 온나 알긋제?”

 나는 아버지의 친구와 간단히 통화를 하고 끊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구수한 사투리를 들으며 내가 울산에 왔구나 라는 실감을 했다. 나는 그렇게 근처 모텔을 찾아 들어가 하룻밤 신세를 졌고 그날 가인이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한 시간이 넘는 통화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버지 친구가 보내준 주소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처음에는 울산으로 오라고 해서 울산에서 일하는 줄 알았는데 아저씨가 찍어준 장소는 울산과 경주 사이쯤 되는 곳이었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해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는 밑에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아저씨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생각보다 공장이 굉장히 크구나 이야 주차장에 차가 도대체 몇 대야' 그렇게 여기저기 둘러보며 감탄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네가 상더기 아들이 가”

 “네 안녕하세요 이철호입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맞나 내 느그 아빠 친구 강창복이다. 만나서 반갑데이”

 창복이 아저씨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들고 있던 서류철을 겨드랑이에 껴고 아저씨의 두툼한 손을 잡고 반대쪽 손으로 손목을 받쳤다. 아저씨는 맞잡은 손을 몇 번 흔들더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아저씨는 자신이 왔던 곳을 되돌아가며 앞장을 섰다. 그곳에는 오르막길이 대략 이백 미터 정도 펼쳐져 있었다. 아저씨는 빨리 따라오라며 재촉했고 나는 그제야 아저씨에 곁으로 뛰어갔다. 나는 말없이 걷는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머리에 안전제일이라는 마크가 새겨진 상처가 나있는 하얀색의 플라스틱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 밑으로 드러난 까무잡잡한 얼굴은 마치 하회탈처럼 여기저기 주름이 깊게 파여있었다. 빳빳하게 곤두서 있는 눈썹은 아저씨의 부리부리한 눈과 잘 어울렸고 두껍고 굳게 닫힌 입술은 아저씨의 인상을 강하게 만들었다. 옷차림은 색이 바랜 옅은 청색의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고 팔에는 여기저기 구멍 난 쿨 토시를 끼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청색의 바지는 무슨 험한 일이라도 당했는지 여기저기 찢겨있었고 안전화는 거지도 신지 않을 정도로 너덜너덜 해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내내 궁금했던 것을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저는 여기서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상더기가 말 안하드나?”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별거 아이다. 그냥 물건 나르고 정리만 하믄 된다. 일 배우고 자시고 할 것도 읍다.”

 그렇게 아저씨와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오르막을 다 오르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공장의 크기가 상상 이상으로 넓었던 것이다. 

 “공장 크재? 아마 끝에서 끝까지 가려면 이십 분은 걸릴끼다. 자 이따가 구경시켜줄꾸마 따라온나”

 아저씨와 함께 간 곳은 판넬로 이루어진 이층의 건물이었고 일층은 각각의 부서의 현판이 달려있었다. 아저씨와 나는 이층으로 올라갔고 총 다섯 개의 문이 있었다. 그중 제일 가운데에 위치한 세 번째 문으로 다가갔다. 문에는 ‘제3의 탈의실’이라고 적여 있었고 아저씨와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군대의 내무반처럼 가운데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곳이 있었고 그곳에는 찌그러지고 긁혀 붉은색의 녹이 올라오는 진한 회색의 캐비닛들이 쭉 늘어서있었다. 나는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이미 준비해둔 것인지 아저씨와 같은 안전모와 청색의 반팔티, 마찬가지로 청색의 바지 그리고 안전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미묘하게 아니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낡고 여기저기 찢어져 헤진 아저씨의 그것들과 달리  그곳에 놓여있는 것은 새 것이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환복을 하고 또다시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위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 내무반과 비슷한 이곳에서 옷을 갈아 입자 이년을 고생했던 군대 생각이 났다. 나는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비워있는 캐비닛에 대충 던져놓고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신었다. 

 “다 입었나 가자”

 아저씨는 내가 환복을 마치자 발길을 재촉했다. 또다시 아저씨는 어딘가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은 일층의 사무실 중 ‘행정과’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미리 언질을 받은 대로 들고 있던 이력서와 건강검진 확인서가 들어있는 서류철을 행정과 직원에게 건넸다. 나는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치고 아저씨와 함께 사무실에서 나왔다. 아저씨는 사무실에서 나오자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오르막을 올라왔던 길에 도착하고 옆쪽으로 길게 쭈욱 늘어서 있는 거대한 공장을 바라봤다. 아저씨는 공장에서 약 50 미터의 사이를 두고 공장과 평행을 이루며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장의 삼분의 일지점까지 왔을 때 밝은 회색으로 칠이 되어있는 수십 개의 컨테이너 박스가 길게 늘어서있었다. 그곳은 내가 소속될 곳에 사무실 겸 쉼터라고 했다. 아저씨는 나에게 주황색의 말랑말랑한 그리고 학생 시절 공부 좀 한다는 녀석들이 애용하던 귀마개를 주었고 방독면 한 개를 주며 공장 안에서는 필히 착용하라고 당부를 했다. 그렇게 아저씨와 함께 공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날은 태양이 내 머리 위에서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나의 몸을 뜨겁게 달구었고 저 먼 동쪽에서 불어오는 소금기가 섞인 따끔한 바람은 나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 내게 아픔을 선사했다. 가족과 떨어져 타 지역에 있는 지금 나의 심정처럼..     

 창복이 아저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일은 단순해서 특별히 배워야 하는 것은 없었다. 그냥 나르고 분류하고 포장하고 그게 전부였다. 나는 일주일간 신입 교육을 받고 기본적인 일을 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장소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처음 하는 일에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일 할만 한데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은 대형 선박을 제조하기 위한 부품을 도장하는 공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그런 부품들을 스물한 개의 각 공장마다 선박의 호수에 맞게 배치를 하고 그것을 도장팀이 도장을 하면 포장을 하는 일이었다. 부품은 최소 오 킬로그램부터 몇십 톤의 이르는 부품까지 다양했는데 지게차로 분류하지 못하는 부품들을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분류해야 했다. 그것에 무게는 최대 삼백 킬로그램까지 다양했는데 백오십 킬로그램이 넘어서면 둘이서 짝을 이루어 나르고는 했다. 스무 명의 인원이 하루 종일 백 톤 이상의 달하는 무게를 날라야 했고 보통은 하루도 안돼서 도망간다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더군다나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통 삼 년을 넘기기 쉽지 않다고 했다. 본인이 원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허리의 부상을 얻고 수술을 함으로써 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했다. 나는 이 지옥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며 찢어지고 찍히는 상처를 늘려갔고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적 고통이 나의 몸을 휘감았다. 하루하루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간혹 들락거리는 화장실에 들어서면 가장자리에 있는 대변기로 숨어들어 가인이와 우진이의 사진을 보며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끼고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뺨에 묻은 먼지와 한 대 어울려 사진에 떨어졌다. 까맣게 물든 눈물은 그녀와 아이의 얼굴에 떨어졌고 그것이 주르륵 흘러 내려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그들도 나를 위해 울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일터로 돌아오면 모든 것을 잊은 듯 부품을 나르고, 나르고 또 날랐다. 기숙사에서는 고통으로 눈을 감지 못하는 시간의 연속이었고 잠이 들었다고 생각됐을 때는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을 쉬지도 않고 일을 했다. 나는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 어떤 직원보다 많은 시간을 일을 했고 창복이 아저씨의 추천으로 이틀을 연속으로 쉴 수 있는 특혜를 얻었다. 본래는 회사에서 이틀을 연속으로 쉬는 것을 허락지 않았지만 나는 먼 타 지역에서 왔다는 것과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여 이틀간의 휴가를 받게 되었다.      


 나는 어두워 보이지 않는 창문에 밖을 보는 대신 내 머리 위에서 비추는 전등으로 인해 창에 비친 감길 듯 감기지 않는 나의 눈과 양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을 바라봤다. 나는 모직으로 이루어진 푸른색의 단단하고 거의 직각으로 세워진 의자에 눕듯이 앉아 있었지만 창을 바라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어느덧 창밖에 어두운 풍경이 물러가고 익숙한 크고 작은 건물들이 보였고 간판에 붙어있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다음 역은 대전역 대전역...’이라는 안내 맨트가 머리 위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따로 짐이 없었기에 몸을 일으켜 기차에서 내릴 채비를 갖췄다. 늦은 시간 탓인지 역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만 역을 벗어나자 번화가라는 것을 자랑하듯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었다. 아마도 술을 먹으러 가겠지 갑자기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동안 일하면서 술을 먹지 않았던 터라 저기 앞에 포장마차에서 술을 먹는 사람들을 보자 술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하지만 나는 택시를 타기 위해 앞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나는 포장마차 옆을 지나쳤다. 쳐다보면 당장이라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술을 먹고 있을 듯하여 앞만 보고 걸었는데 닭 똥침, 계란말이, 가락국수, 닭발, 순대, 떡볶이, 어묵, 온갖 종류의 여러 음식들이 그 향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고 그것들은 한 대 섞여 나의 코를 간지럽혔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마치 천둥이 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기를 하고 있던 택시에 바로 몸을 실었다. 나는 택시가 출발하고 나서야 그 유혹을 뿌리 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익숙하지만 또한 낯설게 보이는 골목이었다. 타 지역에서 보낸 한 달이란 시간은 나의 기억과 시야를 변화시켜놓았던 시간이었다. 나는 밝은 남색의 철로 된 대문 앞에 섰다. 그것은 하나의 녹도 보이지 않았고 마치 새로 대문을 단것처럼 보였다. 페인트 칠을 하셨나 보네 마치 몇십 년 만에 귀향한 듯했고 그런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오셨어요”

 가인이 우진이를 안고 나에게 말했다. 마치 항상 함께 있었고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배고프지? 어서 밥 먹자”

 그녀가 이미 식탁에 차려놓은 음식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온기를 간직하고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몇 가지 밑반찬, 그리고 김치찌개가 있었다. 나는 자리 앉아 수저를 들었다. 밥 한 수저를 뜨고 입 안으로 넣었다. 나는 김치찌개에 국물을 떴다. 그녀가 그 위에 한입 크기의 김치와 고기를 얹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녀도 웃었다. 

 “캬아 바로 이 맛이야!”

 김치찌개의 맛은 한 달 전에 먹었던 그것과 같았다. 나는 허겁지겁 세 그릇의 밥을 해치웠다.

 그날 나는 늦은 밤 모든 불빛이 꺼지고 어둠이 자욱하게 깔려 사방이 고요해질 때까지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이등병이 4박 5일에 휴가가 짧게 느껴지듯 나의 이틀간의 휴가는 더욱 빨리 지나갔다. 시간이 짧은 만큼 아쉬움은 길게 남았고 그만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나는 또다시 가인과 우진을 대전에 남겨놓고 다시 울산으로 돌아와야 했다. 몸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이틀간의 휴가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더욱 강해졌고 그만큼 사랑이 깊어갔다. 울산에서 나의 일상은 반복의 연속이었다. 일, 기숙사, 일, 기숙사 여전히 남들보다 오래 일하고 쉬지 않고 일했으며 연말에는 최우수 사원으로 뽑혔다. 나의 인생은 탄탄대로이고 조만간 가족들을 불러들여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쪽에서 불어오는 추운 겨울날에 날카로운 바람이 지나고 따뜻하고 푸근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나는 회사를 퇴사했다. 

 일 년간의 회사생활은 나에게 삼각 섬유연골 복합체 손상을 안겨줬다. 담당 의사가 말하기를 보통 손목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인데 나는 선천적으로 뼈가 길었고 무거운 것을 자주 나르다 보니 삼각 섬유연골 복합체 손상이 빨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수술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했다. 일 년간 구조물을 뼈에 달고 다녀야 하며 일 년 후 구조물을 빼고서도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을 삼가라고 했다. 하는 수없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고 동료들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줬다. 

 나는 그렇게 꽃밭에 꽃이 피고 꽃내음이 진동하는 봄날에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대전으로 왔다.     

이전 07화 아이의 미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