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산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바로 척골단축술이라는 수술을 했다. 척골단축술은 뼈를 절골하여 단축한 뒤, 단단한 금속판을 대는 수술이었는데 뼈를 자른다는 말에 손목의 고통을 완화시킨다는 소리는 안중에도 없고 무서움이 앞섰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다. 수술을 하는 동안 가인의 기도가 하늘의 닿았는지 다행히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일주일 동안 입원을 했다. 수술 첫날은 수술부위가 심하게 아파서 진통제를 맞으려 했지만 ‘진통제 너무 많이 맞으면 몸에 안 좋아’라는 가인의 말에 8시간 동안을 고통과 씨름을 해야 했다. 지루 할 것만 같던 병원 생활은 하루에 한 번씩 문안을 오는 가인이 덕분에 꼭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딱히 불편한 것을 찾으라면 병원 밥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는 것 정도인데 그것도 삼시세끼 챙겨 먹다 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나중에는 병원 밥이 참 맛있었다. 일주일에 입원생활을 끝내고 깁스를 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간 일만 한다고 고생했고 수술해서 몸도 불편할 테니까 이번 기회에 아무 생각 말고 쉬워”
가인의 말에 처음 며칠간은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주일이 지나니 좀이 쑤시고 답답했다.
‘하릴없이 빈둥거리지 말고 취업준비나 하자 깁스 풀면 바로 일해야 해!’
나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아 꾸준히 취직자리를 알아봤고 수술을 한 팔을 제외하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하릴없이 보내던 일상과는 달리 여러 준비를 하다 보니 6주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깁스를 처음 풀었을 때는 그간 무거운 것을 들어 단단하고 두꺼웠던 나의 손목은 얇고 볼품이 없었으며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손목을 보며 ‘이게 정녕 나의 팔이란 말인가’라며 절규했다. 또한 육주 동안 씻지 못해 스멀스멀 올라오는 악취는 위까지 내려갔을 음식을 다시 위로 올리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렇게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가족과 더 보낸 후 또다시 대전을 떠났다. 가인과 나는 처음 울산에 갈 때와는 달리 애틋함이 많이 옅어졌고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깁스를 풀고 처음 간 곳은 주물공장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주물이 끝나고 나온 부품을 다듬는 일인 사출이란 작업을 했다. 그곳에서 나이가 지긋한 나의 사수 덕분에 여러 가지 일을 배울 수 있었는데, 지게차 운전부터 용접하는 법, 산소를 이용하여 철판을 자르는 것들 그리고 기계를 다루는 법 등 여러 가지 일을 배울 수 있었다. 나중에 사수와 술을 한잔 하며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런 기술들을 어떻게 아냐고 묻는 말에 사수는 이십여 년 전까지 기계설비 사업을 했었다고 했다.
“나도 말이야 IMF 터지기 전에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단 말이지 크윽”
사수는 말을 하고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IMF라는 소리에 가만히 계산해봤는데 정확히는 십육 년 전이었다. 뭐 굳이 정정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네”
“그렇게 사업 말아먹고 충격 때문에 모든 게 귀찮더라고 그래서 맨날 술만 먹었는데 아 글쎄 이놈의 마누라가 사업 망하자마자 애새끼만 달랑 남겨 놓고 도망간 거야...” 사수는 그때 도망간 아내가 괘씸했는지 술 한잔을 들이켜고 ‘꽝’ 소리를 내며 술잔을 내려놨다. “뭐 도망간 년은 도망간 년이고 하여간 맨날 술만 먹는 내가 무슨 정신이 있었겠어 그런데 그 갓난아기가 자기도 살아보겠다고 빈 병을 쪽쪽 빨고 있는데... 아빠라는 놈이 맨날 술이나 처먹어서 되겠냐는 생각이 들더라고 사업한다고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얻은 하나뿐인 아들놈인데 말이야 그때부터였지”
사수는 그때 기억이 떠오르는지 눈가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그런데 현실이 참 매정하더라고 갓난아기 데리고 일한다고 이곳에서 찔끔 저곳에서 찔끔 그렇게 아들놈이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뭐 하여간 그때까지 계속 그렇게 일했는 데 이제 좀 아들놈 떨어뜨리고 일하려니까 나이 많다고 안 써주네 그렇게 또 돌아다니다가 이곳까지 흘러 들어왔는데 다행히 여기서는 오래 써주더라고”
사수가 말했다. 나는 가만히 사수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의 얼굴은 그간의 고생만큼이나 주름이 많았고 그가 지금 까지 겪은 인생만큼이나 깊었다.
“참 힘들게 사셨네요”
나는 위로하듯 말했다.
“뭐 지금은 좋은 상사 만나서 회사도 잘 다니고 있고 아들놈은 어미 없는데도 잘 컸고 자네도 만났고 요즘만큼 즐거웠던 적이 없어 하하하”
사수가 웃으며 말했다. 늙고 주름이 가득한 그의 얼굴이 이쁘지는 않지만 그의 웃음은 세상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답고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철호야 내가 왜 기술 가르쳐줬는지 아냐”
사수에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내심 그것이 궁금하던 터였다.
“자네를 처음 봤을 때 무슨 젊은 놈이 이렇게 무뚝뚝한가 싶었는데 가만히 일주일 정도 지켜보니 요즘 젊은이 같지 않더라고 일이 끝나면 바로 숙소로 들어가고 다음날 되면 어김없이 나와서 일하고 다른 젊은 놈들은 일 끝나면 술 쳐 먹고 놀기 바쁜데 자네는 안 그러더라고” 사수가 제법 진중하게 말했다. “그래서 생각했지 무슨 사연이 있는 놈인가 하고 근데 알아보니까 자네도 참 힘들게 사는구나 싶었지”
나는 사수에 말에 술잔만 바라봤다.
“철호 자네를 보면 말이야 꼭 나를 보는 것 같더라고 젊어서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먼 타향에 와서 발버둥 치는 모습이 말이야 기술 하나 없이 이일 저일 마다 하지 않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서 알려줬어 열심히 살라고 하하하”
사수가 말을 하고 크게 웃었다. 우리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체격이 좋은 한 청년이 나타나 사수를 업고 감으로서 우리의 술자리는 끝이 났다.
술집에서 나온 나는 이제는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움츠리며, 사수가 마지막에 한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철호야 기술 배우고 나면 가족 곁으로 돌아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즐기면서 살아’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
나는 사수의 말을 되뇌며 숙소로 들어갔다.
사수와 술자리를 가진 후에도 나의 일상은 변화 없이 반복의 연속이었다. 일과시간에는 사출 일을 하고 일과가 끝나면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술 연마를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정확히는 회사가 부도가 나서 폐업을 해버렸기에 일할 곳이 사라졌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사수 말로는
“반년 전에 대표가 본부장이라고 사람 한 명을 데려왔는데, 그 본부장과 대표가 무리하게 회사를 운영하다가 종국에는 쫄딱 망해버렸지. 듣기로는 본부장이라는 놈이 사기치고 날랐다는 것 같던데 이래서 집안에 사람을 잘 들여야 한다니까”
“개새끼들!”
나는 사수에 말에 본부장과 대표를 싸잡아 욕했다. 사기 치는 놈이나 사기당하는 놈이나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했다. 졸지에 오십여 명에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는데 욕이라도 안 하면 울화통이 터져 미쳐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후우... 그나저나 철호 자네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별수 있겠습니까 또 일자리 찾아봐야죠”
나는 씩씩 거리며 말했다.
“선배님은요?”
“나야 뭐 자식 놈도 이제 일할 나이 됐고 자기가 알아서 한다니까 나야 나만 챙기면 돼지 뭐 내 걱정 말고 너나 신경 써 그리고 회사도 없어졌는데 선배는 무슨 앞으로 봉덕이 형이라고 불러!”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나이와 나의 나이가 20살 이상 차이가 났지만 그는 그런 것은 신경안 쓴다는 듯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이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개뿔 몇 살 차이 안 나니까 형이라고 해 알겠냐? 아우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요전에 말한 거 있잖아 이번 기회에 가족과 함께 살아 이거 형으로서 충고야”
나는 그의 마지막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다. 졸지에 숙소까지 잃은 나는 그의 집에서 이 주일간을 지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나는 그렇게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었고 삼 년 전 딸을 낳았다는 것 외에 가인과 나는 특별한 것 없이 각자의 삶을 살았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것은 이미 당연해졌고 이제는 같이 있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잊혀가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
그날은 늦게 까지 일을 해서 피곤했었다. 그래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너무 피곤해서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봉덕이 형님’이라는 이름이 떠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온 전화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받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봉덕이 형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철호 아저씨 저... 만수예요. 조... 만수...”
“봉덕이 형님 아들? 네가 어쩐 일이냐?”
나는 봉덕 형님의 전화로 그의 아들이 받았기에 의아 한 듯 물었다.
“그게... 흑흑흑”
만수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잇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분명 무슨 일이 터진 것이다.
“만수야 무슨 일이야!”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리고 만수의 입에서 나온 말에 차마 입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 이따가 보자”
나는 슬픈 어조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저씨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흑흑’ 나는 옷을 입으면서도 나갈 채비를 하면서도 만수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이미 사위가 어두워져 한 치 앞도 구분하기 힘든 시간에 이미 수명이 다해 켜지지 않는 자동차 라이트를 뒤로하고 양 끝에 늘어서 있는 옅은 흰색의 불빛을 내뿜는 가로등들에 의지 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간간이 보이는 자동차들을 지나치고 두 시간가량 운전한 끝에 만수가 보내준 주소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한마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례식장이었다. 나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한마음 장례식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건물로 걸어갔다. 유리문으로 이루어진 입구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상복 차림의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여느 장례식장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천장 가까이 설치되어있는 브라운관이 보였다. 그곳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과 빈소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었는데 ‘故 조봉덕’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만수에게 비보를 듣고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실제로 봉덕이 형님의 이름이 뜨자 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봉덕이 형님의 빈소를 찾아 지하로 발길을 옮겼다. 형님의 빈소에 도착한 나는 부의록에 이름을 작성하고 부의금을 부의함에 넣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상주인 만수가 서있었다. 그의 눈가는 퉁퉁 부어있었고 꽉 다문 입은 밑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나는 상주 인 만수에게 목례를 한 후 영정 앞에 무릎을 끊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향 하나를 집어 들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쳤다. 향의 불을 붙이고 가볍게 흔들어 불을 껐다. 향에 불이 꺼지고 하얀색의 연기가 위로 올라가 나의 눈을 스치고 지나갔고 눈앞이 뿌옇게 보였다. 나는 향을 향로에 꼽고 일어나 영정을 향해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나는 두 번째 절을 하며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뿌옇던 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흐느꼈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 목례를 하고 만수와 맞절을 하고 목례를 했다. 그리고 만수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줬다. 만수는 나를 안고 울었다. 나도 만수를 안고 울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줬다. 흐느낌이 잦아들고 만수는 그간의 사정에 대해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긴 시간 동안 못 다했던 말들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나는 만수에게 회사에 말도 못 했고 나를 대처할 사람이 없다는 것 때문에 나는 일터로 돌아야 가야 한다고 말했다. 만수는 어서 가보라고 했고 나는 만수에게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괜찮아요 아저씨 조심히 가세요 또 연락드릴게요”
“그래 형님 잘 보내드리고 아저씨가 또 연락할게”
나는 장례식을 갈 때 서둘렀던 것과 달리 자동차를 천천히 몰았다. 수면을 취하지 못해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봉덕이 형님이 돌아가신 경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속도가 나지 않았다.
만수는 내가 떠나고 일 년 후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그동안 고생하신 아버지를 위해 보답하는 것은 돈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생각하고 만수는 열심히 공부를 했고 결국에는 대기업에 합격했다. 하지만 봉덕이 형님은 자식이 대기업에 취직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을 했고 만수가 벌어다 주는 돈을 일체 받지 않았다. 그렇게 일만 하던 형님은 일을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심근경색이었다. 처음 쓰러질 당시 형님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뒤늦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미 한참 늦은 후였다. 만수는 그렇게 일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는데도 계속 일을 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평생을 쉬지도 않고 일 만하다가 누구 하나 봐주는 사람 없이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만수는 아버지가 자신 몰래 생명보험을 들어뒀고 그것의 수령인을 만수의 이름으로 적어둔 서류를 확인하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만수는 아버지에게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했는데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한 순간까지 만수를 돌보았던 것이다.
“만수야 부모란 자식에게 주고 또 줘도 주고 싶은 게 많단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이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만으로 행복하단다.”
만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일전에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을 갔다 온 후 나의 일상은 여느 때와 같았다. 일하고 숙소에서 쉬고 일하고 숙소에서 쉬고 여전히 반복적인 생활이 이어졌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만수에게 전화가 왔다. 장례식을 마쳤을 때 통화하고 첫 통화였다.
“잘 지내셨어요 아저씨”
처음에는 만수와 나이 차가 몇 살 나지 않아 서로 어색했는데 어느덧 만수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말이 익숙해졌다. 2주일간 봉덕이 형님 집에서 지내면서 봉덕이 형님이 ‘철호와 나는 형, 동생 하기로 했으니까 만수 너는 앞으로 철호를 아저씨라고 불러라’ 라며 엄포를 놓은 것도 한 몫했지만 단 일주일이지만 반복되는 호칭이 결국에는 입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형님이 돌아가시고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만수는 ‘아저씨’가 편하다며 여전히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나를 부르고 있다.
“어 그래 너는 잘 지냈고?”
“네”
“그래 우리 만수가 어쩐 일로 전화를 했나?”
나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말씀 못 드린 게 있어서요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아저씨 걱정하시면서 입버릇처럼 하셨던 말인데 꼭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뭔데?”
나는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철호 그 녀석 가족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행복이 뭔데요?라고 묻자 ‘알아서 찾아봐’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입버릇처럼 말씀하셔서 아저씨한테 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래... 고맙다”
나는 만수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가족과 살아라. 행복하게 살아라’ 나는 만수가 전해준 말을 중얼거리며, 오늘은 왠지 오래도록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주일간의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비록 회사에서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퇴사하는 것을 만류했지만 이미 결정한 것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지체 없이 회사에서 나왔다. 그렇게 나는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타지 생활을 청산하고 가인과 나의 두 아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처음 말없이 회사를 퇴사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인과 크게 다투었다.
“도대체 왜 말도 없이 회사를 그만둔 거야! 뭐 먹고살려고!”
사정도 들어 보지 않고 화부터 내는 가인에 말에 나도 같이 대응했고 종국에는 크게 다투는 결과를 가져왔다. 떨어져 있던 5년이라는 시간은 이미 서로에게 가졌던 애틋한 마음은 사라졌고 그녀는 나를 돈만 벌어오는 사람, 나는 그녀를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으로 인식을 했던 것이다. 길어질 것만 같던 냉전의 시기는 의에로 빨리 끝났다. 그것의 한몫한 것은 두 아이들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 제발 싸우지 마요”
“우에엥”
둘째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첫째 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싸우지 말라고 했다. 그날 가인과 나는 화해를 했고 그간 못 다했던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오랜만에 서로를 부둥켜 앉으며 그동안 잊고 있던 서로의 췌취를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제는 가족이랑 떨어져 살지 않으려고 우리 영원히 함께 하자”
여전히 애틋한 마음은 사라졌지만 어느새 우리의 시간은 서로가 처음 만났던 시절로 돌아가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새싹을 돋우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줬다.
그리고 마침내 꽃을 피우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평생 가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까
나는 그 후로 집에서 삼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비록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했지만 가족과 함께 하기에 나는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째 그 회사를 다니고 있고 팔 년이 되던 해에 드디어 장사를 하며 얻게 된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고 며칠이 지나 그녀와 결혼식을 했다.
어느덧 커튼 사이로 비친 어두운 빛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짙은 회색빛이 나의 얼굴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다가 점점 옅어지더니 회색빛은 조금씩 밝은 색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조용한 코골이와 숨소리를 내뱉으며 커다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지어 보이고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눈이 감겼다가 떴다가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가는 것을 그대로 놔두웠다.
솜사탕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뭉게구름이 푸르른 하늘을 수놓고 있다. 주홍빛의 태양은 밝은 빛을 내뿜으며 온 세상을 밝히고 온갖 작고 큰 건물들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은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여기저기 피워있는 달콤하고 향긋한 꽃 향기를 싣고 저기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곱게 뻗은 커다란 나무는 나와 가인에게 그늘을 선사하고 우리는 나무의 기대 챈 하늘을 바라봤다. 다시 돌아온 바람은 나의 귀를 스치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저 멀리 떠나갔다.
“철호야 행복이 별거냐? 내 옆에 가족이 있다면 그것이 행복 인 거지 철호야 너는 행복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