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운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얼마 전 우리 팀은 여름 시즌 리뷰를 끝냈다.
이번 리뷰 자료를 준비할 때는 실적만 분석하지 않고 인턴 수지님의 도움을 받아 여성의류 GMV 상위 100개 상품의 고객 후기를 함께 분석했다. 분석해 보니까 상위 상품 중에 “입어보니까 좋아서 또 샀다”는 고객들이 의외로 많았다.
속옷도 아니고 일반 의류는 재구매를 잘 안 할 것 같았는데, 같은 상품을 다시 사는 고객이 있었던 것이다. 똑같은 상품을 재구매했다는 건 그만큼 상품이 정말로 마음에 들고 만족스럽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 요새는 맛집도 한 번만 가본 곳은 맛집이 아니고 두 번은 가서 먹은 맛집이라야 ‘진짜 맛집’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재구매율이 높은 상품들만 모아 그걸 셀링포인트로 삼아서 기획전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또는 이 상품들을 구매한 이력이 있는 고객들에게 시크릿쿠폰(특정 기준을 충족하는 고객에게만 별도로 발급되는 쿠폰) 형태로 '재구매 시 할인쿠폰'을 발급하는 것도 구매전환을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리뷰 때 분석했던 상위 100개 상품 외에 여성의류 전체 상품을 대상으로 재구매율이 높은 상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 상품들에 특별히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지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재구매 데이터를 조회해 볼 수 있나 하고 이리저리 회사 시스템을 뒤져보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상품 단위의 재구매 데이터까지 볼 수 있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 패션, 식품, 리빙 등 각 카테고리의 전체 재구매 데이터 정도만 있었다.
이렇게 실무에 필요한 데이터가 있는데 조회할 수 있는 대시보드가 없으면 데이터팀에 데이터 추출을 할 수 있는 쿼리를 생성해 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뚝딱 바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최소 이틀의 시간이 지나야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틀 뒤까지 생성해 달라고 데이터팀 슬랙 채널에 남겨 놓았다.
안녕하세요! 쿼리 생성 요청드립니다. 수요일까지 가능할까요?
1) 목적: 여성의류 상품 구매고객 재구매 성향 분석 통한 연계 프로모션 진행
2) 쿼리내용: 여성의류 카테고리 상품별 기간별 GMV, Unitsold, 구매고객수, 재구매고객수, 재구매율, 평균구매주기
넵. 수요일까지 쿼리 생성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2.
기본 티셔츠나 니트, 셔츠와 같이 상의 위주로 재구매율이 높았다. 혹시 그중에서도 가격이 저렴한 상품이 재구매율이 더 높을까? 판매가격과의 연관성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가 처음 데이터팀에 요청했던 재구매 쿼리 내용에 가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이 데이터에는 각 상품별 가격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격 하나 추가해 달라고 이거 만들어준 담당자한테 또 요청하기는 민망하고.. 간단한 작업일 것 같은데 괜히 또 요청하고 기다리느라 시간만 더 걸릴 것 같고.. 내가 쿼리 만드는 걸 할 수만 있다면 바로 만들어서 조회해 볼 수 있을 텐데. 머릿속에 떠오른 궁금증을 빨리 해결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근데 유현님 덕분에 저희 필요했던 쿼리 금방금방 만들었잖아요. 원래 할 줄 아셨어요?
아.. 아뇨.. 저도 할 수 있게 된 건 얼마 안 됐어요. 책으로 독학 좀 하고 비슷한 쿼리들 좀 베끼고 하면서 간단한 것들만 할 수 있는 정도예요.
이게 독학이 가능해요? 전공자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네네, 그럼요. 지수님도 좀만 찾아보면 단순히 추출하고 하는 건 바로 만들 수 있을 걸요?
두 달 동안 매주 모였던 집토끼 TF가 지난주 부로 끝이 났다. TF원들끼리 마지막 점심 회식을 할 날짜를 조율하다가 정해진 날이 때마침 오늘이다. 프로젝트 때 유현님이 쿼리를 잘 다루셨던 기억이 나서 딴 얘기를 하다 말고 다짜고짜 물어봤다.
쿼리에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SQL인데, 이 SQL이라는 걸 공부하면 된다고 한다. 결심했다. 나도 유현님처럼 궁금한 걸 바로바로 추출해서 분석해 볼 수 있게 공부를 해보기로.
유현님 저 오늘 점심 먹으면서 자극받았어요! 저도 유현님처럼 SQL 독학해 보려고요.
오오 지수님 역시 멋지십니당. 혼자 SQL 공부하는 용도로 나온 책이 있어요. 저도 이걸로 공부했는데 기초부터 꼭 필요한 내용만 다루고 실습도 할 수 있고 괜찮아요.
유현님이 추천해 준 교재를 바로 주문했다. 오늘 밤에 도착한다고 한다. 내일부터 자기 전에 한 시간씩 공부하고 자야겠다.
3.
야근하지 않는 날이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난 뒤에 교재와 노트북을 펼쳤다. 며칠 공부하고 나니 SQL의 기본적인 문법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나처럼 그냥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하는 용도로 쓰는 게 대부분이라면 SELECT로 시작하는 기초 구문만 알고 있어도 충분했다.
집에서 교재에서 제공해 주는 예제 파일로 실습하는 것뿐 아니라 회사에서 실제 데이터와 쿼리를 활용해 보기로 했다. 데이터가 필요할 때, 원래 만들어져 있던 쿼리를 쓰지 않고 내가 직접 새 쿼리를 만들어서 데이터를 추출해 보는 연습을 했다. 새로 만든 쿼리는 실행할 때마다 자꾸만 오류 메시지가 떴는데, 친절하게도 어느 위치의 코드 실수 때문에 오류가 났는지를 알려준다. 그럼 원래 쿼리의 코드를 보고 내가 뭘 틀렸는지 확인해서 수정한다.
재구매율 쿼리에 가격 항목을 추가하는 것도 자주 사용했던 [상품별 가격정보] 쿼리를 참고해서 코드를 편집해 봤다. 쿼리 실행 버튼을 누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원했던 대로 해당 기간의 평균판매가격(asp)이 결과 테이블에 추가되어서 나왔다.
데이터팀의 도움 없이 내가 직접 보고 싶은 데이터를 추출하는 쿼리를 완성한 순간이었다. 개발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완전한 미지의 영역 SQL에 도전해서 느낀 첫 성취감이다.
지금까지 [일별 노출/클릭/구매 실적]과 [상품 세부정보]를 추출하는 두 개의 쿼리를 실행한 다음, 조회된 테이블을 각각 다운로드하여서 엑셀에서 xlookup 함수를 이용해 상품 ID를 기준으로 하나의 테이블로 합치는 작업을 매번 하고 있었다. 이렇게 추가로 작업하고 분석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딱히 불편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데이터팀에 내 용도에 맞게 쿼리를 새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다.
이 쿼리들을 엑셀에서 함수로 테이블을 합치듯, JOIN 구문을 사용해서 하나의 쿼리로 만들었다. 이제 엑셀로 추가 작업을 하지 않아도 내가 필요한 정보가 모두 담긴 하나의 테이블로 바로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별문제 없이 살 수 있지만, 더 쉽고 빠르게 하는 방법을 알고 나면 이걸 모르고 어떻게 지냈지? 싶어진다. 당연히 매일 아침 전환율 분석 자료를 만드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었다.
+.
지수님 안녕하세요. SQL 공부는 잘하고 계세요?
원님이다. TF를 같이 하면서 부쩍 가까워졌다. 가끔 열받을 때 회사 욕도 같이 하고 답답할 때 고민 상담을 받기도 한다 – 소라님이 떠난 자리를 원님이 채워주고 있는 것 같다. 뭐 그래봤자 업무시간에 회사 메신저로만 대화할 뿐이다. 음? 아니 그렇다고 아쉽다는 건 아니다.
네네, 진작 공부할 걸 그랬어요. 데이터팀에 부탁하던 거 제가 직접 할 수 있으니까 훨씬 빠르고 편해요.
오, 금방 배우셨네요. 그럼 혹시 SQL 자격증 준비하실 생각 없어요? 사실 저는 지난번에 공부를 거의 못 해서 떨어졌는데, 이번에 다시 준비해보려고 하거든요. 지수님도 관심 있으시면 저랑 퇴근하고 스터디 어때요? 혼자 하는 것보다 공부가 잘 될 것 같아서요 ㅎㅎ
SQL도 자격증이 있어요? 몰랐어요! 저 근데 select 밖에 모르는 바보인데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자격증을 목표 삼아서 공부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