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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나 Apr 02. 2022

단약(斷藥)을 목전에 두고

우울증 약을 끊어가는 마음

며칠 전 우울증 약을 더 처방받기 위해 병원에 다녀오게 되었다.


한 달간 내 이야기를 내놓지 못했다. 갑자기 조금 바빠진 탓도 있고, 글을 썼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발행하지 못한 글들이 있는 탓이기도 하다. 우울증과 함께한 3년의 시간을 시간 순서대로 써보고 있는데 이번에 약을 새로 받아오며 든 마음과 생각들은 남겨놓고 싶어서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써본다.


회사를 그만 둔지 벌써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방금 오른손으로 2021년 8월부터 한 달 한 달을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어서 8이라는 숫자를 모니터에 입력시키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살짝 올라온다. 홍콩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처음으로 쉼을 마주하며, 불안하지만 해외에서의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타지 생활을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세 달을 보냈었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가족의 코로나 투병과 급한 이사로 인해 몇 달의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다. 인생의 짬바 덕분인지, 나의 마음의 병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기 때문인지, 그 불안정한 시간도 결국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는 걸 알았고, 예전만큼 마음이 불안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 불안정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한국에 정착한 후의 한 달 반 정도는 매우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올해 1월 중순부터였던 것 같다. 일주일 간격으로 느꼈던 감정의 다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한 달 간격으로 방문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의 의사 선생님과 약을 줄여보자는 데에 합의했다. 그렇게 약 용량은 점점 5mg, 2.5mg으로 줄어갔고 줄일 때마다 약간의 변화를 느끼긴 했지만 다행히도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다. 마음이 놓여서 그런지 복약순응도가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전공 덕택에 꾸준한 약 복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지난 2년간 거의 95% 이상의 복약순응도를 보였다고 생각하는데, 약을 줄이면서는 80% 정도로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아침에 약을 먹는 일을 가끔 잊었고, 잠시 여행을 다녀올 때도 약을 챙기는 것을 잊었다.


강릉으로 이사 간 동생네 가족을 만나러 부모님과 함께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약을 챙기는 것을 잊었다. 육아로 힘든 동생을 보며 이틀 더 머물러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에도 이틀 동안 약을 안 먹고 괜찮았으니 4일째 밤에 집에 돌아가서 먹으면 괜찮지 않으려나 살짝 불안한 마음을 눌러보았다. 그러나 삼일 째엔 새벽 6시부터 깨서 투정을 부리는 조카와 이틀 째 함께 하려니 오후쯤부터 마음이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이틀간 부모님과 같은 방에서 자며 잠자리에 예민한 나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3월의 뒤늦은 폭설에 강릉 내 이동에 피곤함은 배가 되었으며, 동생네에서 자고 일어난 아침부터 싱크대 수도관이 파열되어 부엌이 물바다가 되어 가는 등 여러 자극이 있긴 했었다. 부쩍 투정이 많아진 조카를 제부의 출장 때문에 하루 종일 혼자 봐야 하는 동생의 마음에 버릇처럼 과공감을 해버렸다. 동생네 침실의 불투명한 창문 앞에 걸려있는 오렌지색 커튼을 보는데 전에 도쿄의 호텔에서 겪었던 폐쇄공포증의 순한 맛 버전의 답답함이 몰려왔다. 여기서 하루 더 잘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결국 버스 막차를 예약하고 자기 아들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여 미안해하는 동생을 뒤로 한채 밤늦게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약을 줄인 탓일까, 고민을 했었다. 집에 돌아와서 답답한 마음을 날려보려고 거실 커튼과 창문을 활짝 열었다. 상담에서 배운 대로 과공감을 끊어내고 자극을 피한 덕에 다행히 잠은 잘 잘 수 있었다. 다음 날에도 마음엔 답답함의 찌꺼기가 남아있었다. 갑자기 더러운 베란다가 눈에 거슬렸고, 락스를 풀어 베란다 바닥을 박박 밀어 청소했다. 깨끗하게 마른 베란다 바닥을 보고 나니 마음이 살짝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평소 루틴에 없는 청소들을 하루 이틀 더 하고 나니 답답함은 사라졌다.


약의 용량을 줄여가는 와중에 느낀 이 폐소공포증 때문에 투약기간이 또 늘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었다. 그런 마음을 안고 낮아진 복약순응도 때문에 정신과 방문을 일주일 정도 미뤄 며칠 전 다시 병원에 방문했다.


"한 달 동안 잘 지냈어요?"


늘 시작하는 선생님의 질문.


"네 대체로 잘 지냈어요. 그런데.."


강릉에서 느꼈던 그 답답함에 대해서 얘기했다. 이번에도 같은 처방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선생님은 다른 처방을 내놓았다.


"이번엔 약을 격일로 먹어보죠."


그래도 되나? 싶었다. 맘 속 떠오른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나는 다른 말을 뱉었다.


"격일로 먹은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죠?"


"그다음엔 끊는 거죠!"


선생님은 싱긋 웃었다. 나의 기쁜 표정을 기대했을까.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네, 감사합니다.' 하고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왔다. 처방전을 받고 상가 지하의 약국으로 향했다.


처방전을 내밀자 약사님은 도레미파'솔'보다도 훨씬 높은 도의 피치로 활짝 웃으며 외쳤다.


"약 끊으시나 봐요! 축하드려요!!!"


병원을 나와 약국으로 가는 길까지 전혀 축하받을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격일로 약을 먹어야 하면 짝수 일에 먹어야 하나 홀수 일에 먹어야 하나 정도를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를 탔을 뿐이었다. 조제를 마친 약사님은 다시 한번 축하한다며 반 알로 쪼개 놓은 2.5mg 렉사프로를 담음 약통에 '격일'을 적어 내밀었다.


높은 피치와 축하한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의료계 종사자의 정서적 지지의 한 마디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생각해보며, 약을 받아 주차장의 차를 찾아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건 후 받아온 약을 보니 눈물이 왈칵 났다. 드디어 3년간의 여정에 종지부를 찍어가는구나. 처음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던 일, 몇 번의 폐쇄 공포증, 찬란하게 핀 꽃들 사이를 딱딱하게 막힌 마음과 함께 걸어 다녔던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2년 전의 봄, 엄마 아빠 눈앞에 던져버렸던 좌절스러웠던 MMPI 결과지, 홍콩에서 만났던 정신과 선생님, 곁에서 나를 지지해준 친구들, 우울증을 알렸지만 벽과 같았던 상사와의 대화, 약의 부작용들, 나를 스쳐간 수많은 노란색과 파란색의 렉사프로 패키지. 3년간의 일이 진부하게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만 아는 나의 세세한 시간들을 되새기니 마음이 울컥했다.


나의 유튜브 레커는 나를 종종 정신질환 관련 클립으로 이끈다. 그동안 많은 정신과 의사와 심리상담가의 영상을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아침 알고리즘에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송민호 편을 보면서,  몰랐던  사람의 어두운 표정과 낮은 곳을 보는 눈빛,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하며 느리게 이어나가는 그의 말투를 보며, 나의  어둡고 괴롭고 답답한 마음을 되새기며 그의 마음을 짐작해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지금의 나는 우울증의  터널을 뚫고 나와  터널 넘어 햇빛이 비치는  확인한 느낌이다. 조금만   속도를 유지하면 터널 밖으로 나갈  있을  같은. 희망이 있지만, 이른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불안함이 있다. 터널  비쳐 들어오는 햇빛을 확인했다가 다시  어두운 곳으로 끌려간다면 다시 나올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만 같다.  자신이 나의 단약(斷藥) 마음 편히 축하해   있는 그날을 조심스레 상상하며, 남은  세알의 반쪽자리 렉사프로 2.5mg을, 홀수일마다 먹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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