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집 구하기, 그 첫 번째
단위당 부동산값이 전 세계 부동의 1위인 홍콩. 홍콩으로 터전을 옮기려 마음먹었을 때 가장 걱정된 것은 홍콩의 살인적인 월세였다. 집에서의 편안한 휴식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남주혁이 반응하였던 조명, 온도, 습도에 모두 예민한 나이기에 예민함을 남들에게 전가하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은 옵션에서 쉽게 지워졌다. 게다가 일본 호텔의 좁은 1인실에서 겪은 폐쇄공포증의 트라우마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의 홍콩살이는 월 이백오십에서 삼백만원의 월세는 각오해야 할 일이었다. 내 몸과 마음, 정말 돈이 많이 든다 싶었다. 유튜브에서 새장 같이 좁은 침대 하나를 집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더욱 마음이 착잡해질 뿐이었다.
되돌아보면 홍콩에서 첫 집을 구하는 과정은 여지없이 나의 성격을 드러낸 일련의 과정이었다. 내가 홍콩으로 옮겨갔던 2019년 말은 홍콩에서 송환법에 대한 시위가 제일 과격할 시기였다. 9월 즈음해서 비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예측할 수 없이 일어나는 시위들 때문에 나의 입국일을 차일피일 미뤘고 당장 언제 떠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이었다. 시위 상황에 따라 비행기 티켓을 예약을 했다가 취소하고를 몇 번씩 반복했다. 그러다 회사에서도 더 이상은 미안했던지 일단 들어와서 집을 구하고 돌아가라고 했고, 나는 그동안 연락해왔던 부동산 직원과의 약속을 입국 다음 날로 잡고, 그동안 불안한 마음에 부동산 앱으로 알아보았던 오피스 근처의 아파트의 몇 개 호실을 구경한 후 그다음 날 바로 계약을 해 버렸다. 나라를 옮겨서 살아보는 일은 대학생 때 세 달간의 어학연수 이후에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매우 컸고, 집을 구하는 것 이외에 챙겨야 할 일이 수십 가지가 리스팅 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의 효율로 인터넷으로 미리 보아둔 신축 아파트의 한 건물을 이미 마음속에 정해놓고 몇 개 호실만 둘러본 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삶의 터전을 정해버렸던 것이다. 높은 불안이 좁은 시야로 빠른 결정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와 비슷하게 홍콩으로 이주한 미국인 동료의 경우에는 서비스 아파트에 두 달 정도 살면서 홍콩의 여러 동네들을 둘러본 후, 가장 마음에 드는 동네인 셩완으로 이사를 했다고 했다. 나도 이런 여유로운 과정을 거쳤다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해서 들어가게 된 첫 집은 전형적인 홍콩의 신축 아파트로, 매우 좁았고(한국으로 치면 약 8평), 좁은 면적에 답답함을 줄이기 위해 천장은 높았으며, 그 좁은 집을 굳이 굳이 나누어 방도 하나 분리되어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방이라고 하기엔 좁은 창고에 가까운 크기인데, 한국에서 독립할 때 큰맘 먹고 산 퀸 사이즈 매트리스를 들고 왔으면 방에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로 매우 작은 방이었다. 그리고 홍콩의 아파트들의 특징은 거실과 방 구분 없이 바닥이 대부분 타일로 되어 있고, 벽지 없이 새 하얀 페인트가 발려져 있는 게 대부분이다. 이는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나무로 바닥을 마감할 경우 나무가 썩거나 벌레가 먹을 가능성이 높고, 벽지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콩의 집은 바닥과 벽이 매우 차서 겨울에 실내가 생각보다 매우 춥다. 또한 홍콩섬의 경우 북쪽이 바다를 향하는 오션뷰이기 때문에 북향집을 선호하는데, 이 경우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다. 겨울에 홍콩에 입성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기장판을 가져온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며 밤마다 외풍을 시원하게 맞으며 전기장판과 한 몸이 되어 생활하게 되었다.
온돌방을 만들어낸 한반도의 선조들의 지혜에 매번 감사하게 만드는 홍콩 아파트들의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클럽하우스 시설이다. 아무래도 홍콩의 아파트들은 좁기 때문에 사람이 집안에 오랫동안 머물기에 힘들기 때문에 입주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클럽하우스를 운영한다. 모든 아파트들이 클럽하우스가 있는 것은 아니고, 신축 아파트들이 주로 있는 것 같다. 내가 살던 건물의 클럽하우스에는 gym, 수영장, 사우나, 당구대, 부엌, coffee table, bar table 등이 있었고, 건물 관리가 철저히 되어 매우 깨끗하게 유지가 되고 있었다. 다만 나는 코로나 창궐이라는 악재가 겹쳐 클럽하우스가 계속 문 닫아 수영장 한 번, gym 몇 번을 이용한 것이 다 였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매일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식탁 겸 책상인 이케아 테이블에 앉아 좁은 집에서 똑같은 창문 밖 풍경을 보며 사는 것은 꽤나 고역이었다. 그리고 아파트의 바로 앞에는 홍콩의 명물이지만 그 이름만큼 댕댕거리며 새벽부터 시끄러운 트램 길이 지나고 있었다(홍콩인들은 트램을 '댕댕'이라고 부른다). 새벽 6시부터 트램이 지나가는 소리에 잠이 깨며, 매일매일 같은 생각을 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속담이 과학적으로 맞는 소리라고 배웠는데 새벽 말도 새가 듣는 것인가. 왜 22층에서도 트램 소리가 바로 건너편에서 지나가는 것 같이 들리는가..'
홍콩의 월세 계약은 보통 12+1의 총 13개월의 계약을 하는데, 결국 나는 16개월 정도를 채우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굳이 오피스 근처에 살 이유가 없어졌고, 살면서 마음에 드는 동네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너무 시끄럽지도 않고,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가깝고, 산책하기 좋으며, 동네 분위기가 만음에 드는 곳. 최종 후보지는 해피밸리와 케네디 타운이었다.
보통 해외에서 홍콩으로 근무를 하러 온 expat들은 Squarefoot나 Spacious와 같은 부동산 어플을 통해서 월세 시세를 알아보는데 여기에 올라온 가격에서 얼마나 깎을 수 있는지는 집주인의 관대함과 구하는 사람의 협상력, 부동산의 성사 의지 등이 관여한다. 그런데 알아보는 사람이 홍콩에 처음 이주하는 외국인인 경우에는 협상력이 약화되는 경우가 많다. 홍콩에 오래 거주한 expat들의 경우 집을 구하는 노하우가 축적되는데, 나 역시 홍콩에서 오래 거주한 프랑스 친구를 통해서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부동산을 끼지 않고 집주인과 직접 계약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 경우 부동산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어서 보통 1개월치 월세 정도 되는 부동산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부동산 어플과 페이스북 그룹에 올라온 집들을 거의 30여 개 정도 발품을 팔아 집을 보러 다닌 후 결국 나는 약 두배 정도 넓고, 구축이지만 레노베이션이 되어있으며, 창문 너머 탁 트인 바다를 매일 볼 수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연희동 정도 되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케네디타운에 두번째 집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아침마다 바다의 색이 바뀐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이 집 거실 창밖의 풍경은 아직도 그립다. 가끔은 분홍색, 또 가끔은 보라색인 석양이 있는 하늘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케네디타운의 새로운 집에 얽힌 이야기들은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